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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신고전]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최문규 연세대
  • 승인 2001.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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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2 16:06:19
최문규(연세대 독문학)

60년대에 그 일부가 번역되었고 1974-1981년까지 지속적으로 번역, 출간되었던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새로운 교열작업을 거쳐 산뜻하게 다시 출간되었다. 필자가 그 책을 대했던 시절은 70년대 말이었고 당시 하우저의 책은 필독서였다. 1974년에 나온 {현대편} 말미에는 "서양문화의 거의 모든 분야를 철저한 사회사적 관점에서 총 정리한 것은 하우저의 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처음인 동시에 아직까지도 독보적인 업적으로 되어 있다"는 역자의 해설이 담겨 있었고, 최근 개정판에는 "한 예술작품의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을 감싸고 있는 사회·경제적 요인들의 반짝거리는 화석무늬를 밝혀낸 것", "기념비적인 저서"라는 어느 시인의 평가가 실려 있다.

"거의 모든 분야를 철저한 사회사적 관점에서", "독보적인 업적", "기념비적인 저서" 같은 언어는 그 책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는 듯이 보이며 그보다 더 이상 함축적으로 표현해 낼 수도 없을 듯 싶다. 문학과 예술에 발을 들여놓은 모든 독자의 공통된 목소리겠지만 하우저의 책은 거의 "경전"과도 같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아마도 "창작과 비평사"를 대표하는 얼굴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고전 서평란을 그러한 경탄과 찬사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울 것이며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하우저의 책을 포함한 모든 일반적인 문학사 작업을 비판적으로 성찰해 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 나을 듯 싶다.

우선 위에서 인용한 경탄과 찬사는 사실 그 책의 단점을 말해주고 있으며 그 단점은 다시금 예술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려는 문학사(예술사) 작업의 문제점과도 직결한다. 첫번째 문제점으로는 문학사 작업이란 일종의 마약 같은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전개된 현상과 흐름에 관해 보편적인 안목과 통찰을 가져다줌으로써 독자를 "마치 전체를 내다보는 듯한 기분 좋은" 상태로 몰고 가지만, 다른 한편 그것에 지나치게 맹목적으로 의존할 경우 독자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통찰과 맹목성"이라는 이중적 측면과 관련하여 하우저의 저서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두번째로 방대함은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라는 점이다. 예술은 그 어떤 특정한 동일성이나 통일성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데 근본적인 특성을 두고 있다. 그러한 예술의 다양한 현상을 보편적이고 전체적인 차원에서 규정할 경우, 거기에는 특정 가치관의 관철, 특정 작품의 선별화와 경전화, 자의적인 시대구분 같은 억압 기제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이를 통해 특정한 사조 내의 다양한 예술적 현상, 또한 사조와 사조 간의 중첩과 유사성 같은 난해한 문제점들은 단순한 차원으로 환원되고 만다. 물론 문학사란 수많은 개별 현상의 독자성이나 복잡성을 가능한 한 줄이는 데서 출발하는, 다시 말하면 "복잡성의 축소" 작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문학사를 대하는 독자가 바로 그러한 측면을 인식하고 거리를 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독자는 문학사에 내재한 복잡성의 축소를 다시금 복잡성의 확대로 치환시켜야만 한다.

세번째 문제점은 "사회사적"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문학사를 기술하는 작업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예컨대 작품을 중심으로, 연대를 중심으로 기술하거나 혹은 가나다순으로 작가와 작품을 나열하는 방식이 가능하며, 또한 독자가 동시대에 어떤 작품에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주목하면서 문학사를 기술하는 수용미학적 방식도 있다. 이 밖에도 최근에는 문화사적, 심성사적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이 가운데 사회사적 방식은 "단선적인 역사"의 흐름에 기초하며, 또한 사회, 경제적 맥락 내에서 예술이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자주 제기된 문제이지만, 예술작품의 고유함과 독자성이 과연 사회사적 접근 방식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는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아직까지도 독보적인 업적"이라는 찬사와 관련하여 문학사 기술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독보적인"이라는 말은 한편으로 다른 이들이 넘볼 수 없는 탁월한 일회성을 말해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 그것은 하우저가 취한 작업 형태의 현재적 가치와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요컨대, "아직까지도"라는 말은 국내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가치판단일 뿐, 문학사 작업에 대한 서구의 반성적 사유와 관련해서는 시대착오적인 의미를 지닌다. 지난 20년 동안 서구에서는 문학사 기술 방식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전개된 바 있으며, 그 결과 "일인" 작업의 모델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 대신 7-80년대에는 수용미학적 방식이 제안된 바 있고, 9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관점과 가치평가가 작동하는 "팀 아르바이트"(Arbeit eines Teams)의 모델이 관철되고 있다. "일인"에 의한 체계적인 집짓기에서 탈피하여 많은 이들이 다양한 관점과 구체적인 분석을 제시함으로써 지난 예술의 양상이 더욱 세밀하게 조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사 기술 작업에도 일종의 "복수주의"가 들어선 것이다.

이런 비판적 단상에도 불구하고 하우저의 저서는 어쨌든 한번쯤은 읽어야만 하는 "고전"임이 틀립없다. 그렇지만 "고전"이란 그 의미가 퇴색하지 않은 채 영구히 보존되는 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고전"은 오히려 비판적 지평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획득해야 하며 그 비판적 지평을 열어야 하는 몫은 수용자에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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