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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로 되돌아본 2006년
사자성어로 되돌아본 2006년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6.12.18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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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기 만한 密雲不雨의 해 … “폭발 직전의 위기감”

 2006년 한국 사회의 풍경을 넉자로 함축한다면 과연 어떤 말이 가장 적합할까. 연말마다 사자성어로 한국사회를 정리하는 교수신문은 올해 역시 ‘사자성어로 풀어보는 2006년’을 준비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4일까지 김교빈 호서대 교수(철학), 김승룡 부산대 교수(한문학),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 송천호 명지대 명예교수(중문학), 신용호 공주대 명예교수(한문학), 심경호 고려대 교수(국문학), 이인호 한양대 교수(중문학)로부터 모두 10개의 사자성어를 추천받고, 교수신문에서 자체적으로 추천한 사자성어 3개를 포함해, 최종적으로 6개의 사자성어를 제시했다.

기본적으로 제시된 사자성어를 선택하도록 했지만, 따로 사자성어를 제시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했다. 본격적인 설문조사는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됐고 설문대상자는 2백8명이었다.

답답하기 만한 密雲不雨의 해 … “폭발 직전의 위기감”

한국號에 보내는 마지막 경고인 것인가. 2003년 ‘右往左往’, 2004년 ‘黨同伐異’, 2005년 ‘上火下澤’으로 방향을 잃은 채 갈등을 반복하는 한국사회를 지적해왔던 교수사회가, 2006년에는 ‘密雲不雨’로 무거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 상태라면 자칫 한국號가 좌초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교수신문이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교수신문 필진과 주요 일간지의 칼럼니스트 교수 2백8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006년 한국 사회를 정리할 수 있는 사자성어로 ‘密雲不雨’(48.6%)가 선정됐다. ‘구름만 가득하고 비가 오지 않는 상태’처럼 국가 공동체 전체가 ‘체증’에 걸려 답답함과 짜증 섞인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희망은 어디에 있나?

무엇보다 명치끝이 무거운 이유는 정치와 경제에서 희망과 비전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서민들이 좌절을 넘어 분노까지 느끼게 된 계기다.

 지난 11월에도 참여정부의 여덟 번째 부동산 안정화대책이 제시됐지만 시장에서는 정부 정책이 성공할 것이라 내다보는 이는 거의 없다. 대증요법으로 일관해온 까닭에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제 ‘양치기 소년’이 됐고, 앞으로 어떠한 부동산 정책이 나와도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야당 측에서 뾰족한 대안을 내놓았던 것도 아니었다. 최근 한나라당이 ‘반값 아파트’ 공급을 당론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지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분위기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사이 서민들의 삶은 더욱 뻑뻑해졌다. 서민들에게 주택보급율 102.2%, 자가점유율 54.2% 사이의 간극은 넘을 수 없는 ‘절망의 강’이 됐다. 김윤상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경제는 총량지표는 나쁘지 않으나 부동산 문제와 양극화로 일반 국민의 생활은 불안”해졌다고 지적했다.

청년실업이 21년 만에 최고라는 반갑지 않은 소식도 2006년의 암울한 단면이다. 지난 9월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청년실업률은 7.2%로 전체 실업률 3.2%의 두 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효과에 대해 찬반논쟁이 여전히 치열한 상황에서도 숨가쁘게 추진되는 한미 FTA는 한국號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최태룡 경상대 교수(사회학)는 “FTA를 통해 얻는 것이 있다고 해도 많은 국민적 합의를 통해야 한다”고 전제하며, “투자자 정부 제소와 같은 독극물이 있는 한미 FTA는 결코 체결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상철 성공회대 교수(경제학)도 “졸속으로 추진되는 한미 FTA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號에 분명한 길을 제시하길 바랐던 한국 정치는 늘 그렇듯 희망보다는 좌절을 심어줬다. 지난 14일 발표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정기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은 ‘대통령 임기 중 사퇴 논란’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리더십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치공학적 발언이었다 하더라도 부동산 광풍, 실업문제, 한미 FTA 졸속추진 등으로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는 정치적 불안감만 가중시켰다는 것.

교수들은 ‘열린우리당의 정계개편 논란’도 마뜩치 않아 했다. 고세훈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정치인·정당의 이합집산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정계개편 구상이야말로 문제의 소재에 대한 진단, 즉 한국정치의 바로메타 기능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파동’에 이르러서는 청와대와 여당은 물론이고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까지도 비판의 화살에서 빗겨가지 못한다. 노 대통령과 여권의 정치적 편법과 무능력, 한나라당의 물리력을 동원한 정치 공세로 인해 사상 첫 여성 헌법재판소장의 등장을 볼 수 없게 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한반도 뒤덮은 ‘핵구름’

한반도 상공을 뒤덮은 ‘핵 구름’은 또 하나의 密雲이다. 힘의 우위를 앞세운 미국의 대북전략과 그에 대응해 임계점을 넘어서버린 북한의 핵무기 실험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은 더욱 어렵게 됐다.

고명철 광운대 교수(국문학)는 “북핵실험은 남한 사회의 반북주의를 더욱 조장시켜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는 진보적 노력들의 가치를 폄하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정성일 광주여대 교수(경제학)는 “핵실험이 일본의 군비증강과 우경화가 더욱 가속화되는 상황을 초래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더욱 혼미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2006년의 사자성어로 密雲不雨를 선택한 고인석 이화여대 교수(과학철학)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노아의 홍수나 홍수 끝의 참담한 땅에 뜨는 무지개는 결코 바라지 않지만, 이제는 저 구름이 과연 비를 내릴 힘은 있는 구름인지 조금씩 의심스럽다”며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이민선 기자 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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