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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21세기의 세계 언어전쟁』펴낸 정시호 교수
[저자 인터뷰]『21세기의 세계 언어전쟁』펴낸 정시호 교수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0.11.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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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도 좋지만 모국어는 지켜야죠”
지금은 한국어의 수난시대이며 영어의 전성시대이다. 2~3년 전부터는 급기야 영어공용어론까지 등장했다. 핫바지 동여매고 바깥에 나섰더니 모두들 청바지 입고 달리는데, 따라서 달리자니 체형이라도 바꿔 청바지 걸치는 시늉이나마 내야겠더라는 식이다. 국민 모두가 일없이 나라 바깥으로 나갈 리 없으니 영어공용어론은 진중권의 말처럼 ‘고약한 농담’으로 여긴다 치자. 그러나 하루가 달리 압박해 들어오는 현실은 농담을 불허한다.

농담 불허하는 현실 앞에 선 우리

이에 ‘쌍칼’(이것은 수사가 아니다) 들고 나선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정시호 경북대 교수(독어학)다. 일제시대를 살았던 60대 정교수는 30대의 진중권과 달리 사뭇 진지하다. “내 어릴 때 공공장소에서 우리말을 썼다간 혼쭐이 났습니다. 그 덕(탓?)에 일본말을 우리말보다 쉽게 구사할 수 있었지요. 만일 지금 영어공용어화가 된다면 우리말을 잊게 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독일어를 가르치는 정교수가 영어공용어화라는 주제에 주목하게 된 것은 지난 98년 8월. 조선일보가 주도한 영어공용어화 논쟁을 보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정교수에게는 영어공용어론이 제기된다는 것 자체가 “비상한 충격을 주었다.” 책제목을 다시 보자. ‘21세기의 세계 언어전쟁:영어를 공용어로 할 것인가.’ 들떴던 논쟁의 세부까지 공들여 기록하고 이론적으로 천착한 이 책의 제목을 위해, 정교수가 ‘전쟁’이라는 단어의 선정성을 무릅쓴 이유를 알 것 같다.
정교수의 논의가 원초적인 충격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닫힌 민족주의자’가 아니다. 정교수의 책 3장을 다시 훑어보면 세계어주의자들에게 유쾌함을 선사할만한 무수한 예들이 등장한다. 영어로만 글썼던 폴란드 출신 소설가 콘라드와 러시아 출신 소설가 나보코프, 영어로 ‘하얀 전쟁’ 등을 썼던 작가 안정효, 체코어와 불가리아어 대신 프랑스어로 글을 쓴 밀란 쿤데라와 줄리아 크리스테바 등등. 이는 독일 작가 헤르더의 “참다운 시인은 모국어로 써야한다”는 명제에 대한 반증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 정교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세계어가 되어버린 영어나, 소수민족 언어 대신 프랑스어로 소설이나 학술서를 썼을 때의 효율에 대한 욕심이 언어선택에 전략적으로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의심이 그것.
정교수는 다시 한번 헤르더를 인용한다. “학문의 체계는 모국어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헤르더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그친다면 닫힌 민족주의자란 얘기를 듣지요. 학문의 지평과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는 외국어를 함께 해야 합니다.” 여기서 예의 그 ‘쌍칼법(二刀流)’이 나온다. “우리는 검술에서의 ‘쌍칼법’을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모국어도 지키면서 필요할 때는 영어를 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어를 하면서도 모국어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
혹 정시호 교수는 언어도구론자가 아닐까, 언어가 필요한 생각과 하고싶은 말을 담아서 전달하고 소통시키는 단순한 ‘그릇’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볼 단계이다. 그러나 이는 기우다. 그는 언어가 도구이면서 ‘동시에’ 정신구조에 영향을 미치며, 언어도구론은 언어기능의 일면만 강조해서 언어의 역사성을 무시하는 주장이라고 말한다. 다만 정교수가 이 책의 4장, ‘언어상대성 이론’에서 인용한 훔볼트의 모국어에 대한 언급은 그가 열린 ‘민족주의자’들의 논의를 대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언어는 말하자면 민족 정신의 외적 구현이며 그 민족의 언어는 그 민족의 정신이며 그 정신이 바로 언어이다. 우리는 이 양자가 하나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민족주의 아닌 현실주의의 입장

그러나 정교수가 민족주의자라서 영어공용어론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모국어와 이별한다는 것은 당장은 쓰라린 일이지만 ‘큰마음 먹고’ 후손을 위해서 한국어를 버리자”고 했던 복거일 만큼이나 현실주의자일 뿐이다. 98년 이후 언론의 여론몰이나 정부와 연구기관의 변화를 보면 분명히 영어공용어화에 상응할 만한 어떤 움직임이 보인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장사하려고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국학을 하는 사람에게도 영어구사력을 테스트하려는 연구기관들, 모든 논문을 영어로 쓰라고 종용하는 대학들을 보면 10년도 채 안 가서 우리말은 적어도 학문을 하는데 쓸모 없는 언어가 될지도 모릅니다.”
월간 ‘신동아’에서 복거일과 지상논쟁할 때 정교수의 글 원제가 ‘모국어도 지켜야한다’였다 한다. ‘를’이 아닌, ‘도’에 주목한다면, 얼마나 소박하고도 완곡한 주장인지. 다만 잡지사에서 임의로 그 글의 제목을 ‘영어참배자들에게 엄중 경고함’이라고 고쳐버려 졸지에 완고한 모국어 숭배자처럼 비쳐졌을 뿐. 그의 잠정적인 결론은 ‘함께’, 바로 그것이다. “어차피 앞으로 2~30년간 미국이 학문적인 우위를 점한다면 학자들도 영어로 글을 써야합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말과 ‘함께’ 글쓰기 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또 영어 뿐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의 외국어도 ‘같이’ 해야할 것입니다. 영어사용자들의 사고방식과 사상만을 익히게 된다면 학문적인 창조에 이르지 못할 것은 정해진 이치이기 때문이지요.”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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