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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한국 문학의 맨 얼굴 … ‘젊은’ 문학 다뤄
2000년대 한국 문학의 맨 얼굴 … ‘젊은’ 문학 다뤄
  • 고명철 광운대
  • 승인 2006.11.27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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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계간지 겨울호 _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수첩, 실천문학

‘근대문학의 종언’을 둘러싼 담론이 횡행하는 가운데 잇따라 출간된 겨울호 문예지들은 각기 비중을 두는 점에 따라 최근 문학의 동향을 점검하고, 이후 향방에 대해 나름대로의 입장을 모색하고 있다.

내게 주어진 이 짧은 지면에서 문예지들의 다양한 기획을 세밀히 읽어낼 수는 없다. 때문에 한정된 지면에서 나의 글쓰기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그 대상 범주를 한정시킬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이번 겨울호에서 주목되는 것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인 양 2000년대의 한국문학을 대상으로 한 집중적 점검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작과비평’의 경우는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2’라는 특집을, ‘실천문학’의 경우는 ‘한국문학과 전복적 상상력’이란 특집을, ‘문학동네’의 경우는 ‘길 위의 인생-이동, 탈출, 유목’이라는 특집을, ‘문학수첩’의 경우는 ‘우리 문학의 공간과 장소’라는 특집을 선보이고 있다.

‘창작과비평’은 지난 여름호에 이어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를 의욕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창간 40주년을 맞이하여 다방면으로 자기쇄신을 진행하고 있는 ‘창작과비평’이 동시대의 문학을 향한 ‘말걸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1990년대를 통과해오면서 ‘창작과비평’을 향해 쏟아진 비판의 핵심이, 분단체제론과 회통론이란 거대담론 일변도로 치중한 나머지 동시대의 문학지평에 활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해볼 때, 최근의 의욕적 기획은 그 자체만으로 ‘창작과비평’의 쇄신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크게 아쉬운 점이 있다. 좌담인 경우 시에서는 이장욱과 박형준을 중심으로 동시대의 시에 관한 첨예한 문제점들이 부각되며 서로 다른 입장들이 부딪치는 가운데 우리 시의 현장을 다각도로 조감하고 있는데 반해, 소설에서는 김영희와 김영찬이 주로 좌담을 하는데, 좌담의 상대자로서 서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찬인 경우 동시대의 문학을 대상으로 한 현장 비평에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어 이번 호의 기획에 걸맞는 좌담자인 반면, 김영희인 경우 좌담에서도 본인 스스로 인정하고 있듯, 동시대의 소설에 대한 폭넓은 독서와 비평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어 김영찬과 대등한 입장에서 좌담을 진행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자주 목도된다.(김영찬이 공세적 입장이라면, 김영희인 경우 다소 수세적 입장에 놓여 있어 2000년대의 소설의 동향에 대한 객관적 검토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말하자면, 좌담을 통해 동시대의 문학 현장의 쟁점을 부각시키고 그에 따른 성찰의 지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좌담자들끼리 서로 치고받을 수 있는 대등한 처지에 있을 때야말로 좌담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데 이번 좌담은 그렇지 못하다.

이러한 점에서 ‘실천문학’은 동시대의 문학을 향한 ‘말걸기’란 차원에서 ‘창작과비평’에 비해 상대적으로 동시대의 문학 현장에 밀착해 있는 비평가들이 2000년대의 한국문학의 현주소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번 호에서 주목할 것은 최근 한국문학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젊은 문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론(발제: 손정수/토론: 고봉준, 서영인), 시(발제: 신형철/토론: 권혁웅, 이성혁), 소설(발제: 심진경/토론: 고명철, 최강민)에서도 파악할 수 있듯,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동시대의 문학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비평가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비평 언어는 서로 격렬히 부딪치고, 서로의 비평 언어에 간섭을 하면서, 동시대의 문학을 상대로 한 쟁점들을 형성시키고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시대의 젊은 비평들의 언어는 동시대의 문학 현장에 밀착하여 한국문학의 맨얼굴과 맞닥뜨리고 있다. 이후 여기서 제기되었던 크고 작은 쟁점들이 논쟁의 불씨가 되어, 한국문학의 생산적인 소란스러움을 기대해봄직하다.

‘창작과비평’과 ‘실천문학’이 2000년대의 한국문학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이후 향방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면, ‘문학동네’와 ‘문학수첩’의 경우는 개별 작가나 작품을 대상으로 한 주제론적 탐색을 하고 있다.

‘문학동네’는 특집의 부제가 간명히 말하고 있듯이, 최근 지식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른바 ‘경계넘기’와 관련한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지구적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특정한 경계로 구획짓는 게 유명무실화되고 있음을 고려해볼 때, 이와 같은 특집을 기획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경계넘기’와 관련한 온갖 담론을 현란하게 구사하는 게 아니라, ‘경계넘기’의 담론이 우리의 현실과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문학동네’의 이번 호 특집에서 보인 비평적 성찰은 귀 기울일 만하다. 탈근대적 분단문학의 가능성, 최근 한국소설에서 보이는 연대적 상상력, 국경을 넘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 등에 대한 논의는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의 주요한 가늠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문학수첩’의 특집은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쟁점 부재의 시대에서 문학의 여러 기원들을 탐색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번 특집은 한국문학의 공간과 장소에 주목함으로써 한국문학에 내장된 문제성을 풍요롭게 탐색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구태의연한 기획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쉽게 떨칠 수 없다.

무엇보다 특집으로 다루기에는 다소 그 범주가 막연한 게 흠결이다. 식민지 시대부터 2000년대의 문학까지 그 대상 범주가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한국문학의 공간과 장소가 마치 박물지처럼 일별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아무리 쟁점이 부재한 시대라고 하지만, 문예지 본연의 역할 중 하나가 쟁점을 새롭게 발견함으로써 그 쟁점적 시각을 통해 동시대의 문학에 어떤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라면, ‘문학수첩’의 이번 호의 특집은 다른 문예지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기획이 평면적이고 안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명철 / 광운대·교양학부

현재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성균관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저서로는 ‘칼날 위에 서다’, ‘순간, 시마에 들리다’, ‘논쟁, 비평의 응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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