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21:35 (수)
학생의 영혼을 파는 일
학생의 영혼을 파는 일
  • 독고윤 아주대
  • 승인 2006.11.21 15:3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교수논평

▲ 독고윤 아주대/경영학
저작권의 침해여부와 관계없이 표절은 남의 것을 훔치는 행위로써 부도덕하며 위법하다. 자기표절 역시 훔치거나 남을 속이는 위법행위이다. 캘거리 대학의 헥삼(Hexam) 교수에 의하면 학자가 과거의 논문을 새로운 논문처럼 꾸미는 행위는 중고차를 파는 사람이 주행기록을 고쳐 새 차처럼 파는 행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학자의 자기표절은 자신의 공적을 부풀리는 부도덕한 행위일 뿐 아니라 학문공동체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우리네 대학사회에서 교수들의 표절행위는 당장에 근절되어야 한다. 여태껏 관행이었다 또는 아직 명확한 기준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표절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아니 된다. 학생들의 부정행위가 용납되지 않는다면, 교수들의 부정행위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1999년 12월 8일자 보스턴 글로브 기사에 실린 보스턴 대학의 사례와 국내 한 사립대학에서 일어난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두 대학의 윤리 기준의 차이를 통해 대학이 가져야 할 정직이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보스턴 대학 미디어 학과의 학과장인 슐츠(Schulz) 교수는 400명의 신입생 앞에서 행한 강연을 마치면서 주간지에 있는 글의 한 문장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한 이유로 학과장직을 사임했다. 슐츠 교수는 강의노트에 그 출처를 밝히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할당된 강의시간을 몇 분 초과한 것에 당황한 나머지 이 문장을 언급할 때는 미처 그 출처를 밝히지 못했다. 그런데 이 강의를 들은 한 학생이 슐츠 교수의 강연 내용과 같은 글을 어느 잡지에서 읽었다고 학장에게 제보하였다. 학장은 즉시 슐츠 교수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였고, 슐츠 교수는 그제야 자신이 출처를 밝히는 것을 잊어버렸음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학과장 직을 사임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교수들은 그러한 경우를 표절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지 의구심을 나타내며 슐츠 교수의 사임을 반대하였지만, 슐츠 교수는 “윤리적인 과실은 그것이 아무리 작거나 고의가 아니더라도 벌을 받아야 하고, 대학에서 자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행위는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학장은 슐츠 교수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교수진은 슐츠 교수의 사임에 관해 찬반 양쪽으로 나뉘어있지만, 교수들 모두가 표절 의혹을 제기한 학생의 용기에 커다란 경의를 표시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에게 이중 잣대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어느 사립대학은 지난 10여 년 동안 표절은 범죄행위라는 점을 학생들에게 강조해 왔다. 2004년 이맘때 이 대학의 학생들은 총장이 학술지, 잡지, 신문, 저서 등에 발표한 동일한 내용의 글이 남들의 글을 송두리째 베낀 글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총장에게 표절행위에 관한 해명을 요청하였다. 총장이 이런저런 궤변과 거짓으로 표절혐의를 부인하자, 학생들은 총장에게 반론을 제시하였다. 예컨대 총장이 영리를 목적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표절혐의를 부인하면, 학생들은 표절한 글을 발표한 저서는 총장의 경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표절은 총장으로서의 경력을 부풀린 행위라고 맞섰다. 총장이 강연내용을 저서로 옮겼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고 우기면, 학생들은 이 세상에 ‘표절세탁’이란 것은 없다면서 맞섰다. 표절총장이 끝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자 학생들은 재단이사회와 교육부에 총장이 표절을 범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재단이사회와 교육부도 표절총장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학생들은 총장의 표절행각은 학습권에 피해를 끼치며, 학생들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행위라는 이유를 들어 총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결국 표절을 범한 총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게 되었고, 그 당시 부총장이 새로운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前총장의 표절에 대해 침묵했던 신임총장과 보직교수들은 학생들로부터 “前총장의 표절이 발견되었을 당시 어떻게 하셨습니까? 반지성적 행태를 거부하셨습니까? 前총장의 표절을 은폐 또는 묵과한 총장님과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사익을 취하겠다는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신 것입니다”라는 따끔한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우리 교수들이 대학 내의 표절행위를 방관한다면 그것은 “학생들의 영혼을 팔아서 사익을 취하는” 행위이다. 우리 교수들이 스스로 표절행위에 대해 단호해야 한다. 슐츠 교수처럼 동료 교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윤리기준을 적용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 교수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경화 2006-11-22 09:58:37
교수들이 지켜야 할 최소의 윤리관을 지적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에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학자는 독창적이고 창의적 주장을 펴는 사람입니다. 그런 능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교수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표절은 최악의 범죄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대학 내 표절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