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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etoric과 修辭學
rhetoric과 修辭學
  • 최장순
  • 승인 2006.11.18 0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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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국내 최초로 ‘비교수사학’ 국제학술대회 열려

▲ 지난 10일에서 12일까지 개최된‘비교수사학’ 국제학술대회에는 한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중국의 주요 수사학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 사진 최장순 기자
 

또다시 ‘말(言)’이 화두인가. 지난 10일에서 12일까지 고려대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수사학 전통을 비교하는 최초의 ‘비교수사학’ 국제학술대회 개최됐다. 국내 수사학자들을 포함,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중국의 주요 수사학 연구자 12명이 비교수사학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자리였다.

학계는 ‘언어학적 전회’에 이은 ‘수사학적 전회’를 준비하고 있는 걸까. 로랑 페르노 세계수사학사학회장은 “고대의 수사학은 말의 문제에 관한 매우 정교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며 “그러한 자료들을 아시아의 것들과 만나게 하는 일이 남아있다”고 운을 뗐다(‘서구 전통 속에 나타난 말의 힘과 한계’).

동서양 수사학을 비교하는 자리인지라 발표자들은 동양과 서양 가운데 어느 한 쪽의 전통을 설명하며 토론을 유도하기도 했고, 양쪽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김남두 서울대 교수(‘‘고르기아스’에서 플라톤의 수사술 비판’), 김헌 서울대 강사(‘孔子의 ‘論語’와 이소크라테스의 ‘소피스테스 반박’의 비교’), 전성기 고려대 교수(‘입자(적) 수사학과 파동(적) 수사학’)가 눈길을 끌었다.

김남두 교수(철학)는 플라톤이 고르기아스의 수사술을 비판하는 지점을 살펴봤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고르기아스의 수사술과 플라톤이 갈라지는 지점보다도 ‘공유의 부분’에 주목하면서 “기원전 5~4세기 로고스의 체계화 작업이 가지는 그리스적 특성의 일단”을 엿보고 있다. 김 교수는 그 공유의 부분에서 양자 “모두 말의 적극적인 힘과 영향력을 긍정하고 출발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정리하면서, 이러한 점은 “언어가 이를 수 없는 도의 세계”를 상정하고 있는 노자의 부정적 관점과 대조적이라며, 이에 대한 연구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헌 서울대 강사(서양고전학)는 “동서양 사이에서 수사학을 비교한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며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의 한자문화권에서 ‘修辭’라는 개념은 있었으나 그에 대한 엄밀한 학문으로 체계화된 수사학은 없었”으며 “더군다나 서구의 레토리케 개념에 비교한다면, 修辭의 개념은 그와는 다른 나름의 독특한 의미구조를 가지고” 있어 과연 비교수사학의 지반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이소크라테스와 공자의 사상을 비교하기로 한다. 그 결과 양자 모두 “말하는 법을 탐구하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정직한 품성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점에서 “동서양의 수사학을 비교할 수 있는 하나의 기초를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결론을 내린다.

한편, 전성기 교수(불문학)는 커뮤니케이션 수사학의 최신 연구동향을 소개했다. 골자는 논증과 일방적 설득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나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수사학으로 전회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는 그러한 주장을 위해 과학과 氣를 조화시키려는 방건웅을 끌어들인다.

방건웅에 따르면, 개체간의 경쟁논리와 적자생존의 논리가 지배하는 입자적 관계가 있는가 하면, 생명체간의 협력관계도 있는데, 협력 덕분에 ‘공-진화’에 이르는 이러한 관계는 파동적 관계이다. 결국, 파동적 관계를 위한 수사(학)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입자적 관계가 강한 일방적 ‘정복’과 ‘바꿈’의 수사학에서 탈피하여 ‘초대의 수사학’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전 교수의 제언이다.

이어 그는 원효의 화쟁사상이 “수사학적으로 매우 심오하게 파동적이며, (…) 이 ‘화쟁 수사학’이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 수사학에 (…) 기여할 바가 클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밖에 루동 첸 북경대 교수가 고대 중국과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적 사유를 비교하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뗐다(‘Rhetorical thought comparison of ancient China and ancient Greece’). 그는 △고대 동양과 서양 모두 인간의 발화행위에 대한 몇 가지 법칙을 발견했다는 것 △연구 방법과 내용과 개념이 달랐어도 그 발견물은 모두 언어를 통한 소통의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는 것 등을 동서양의 공통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언어’가 빠진 수사학은 생각할 수가 없으며, 수사학이 언어를 통한 소통의 기술을 다루고 있는 학문이라는 당연한 사실에 비추어봤을 때, 이러한 설명은 다소 실망스런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발화, 발화자의 도덕성, 중국의 수사적 전통에 대한 역사적 영향 등에 관한 공자의 시각을 독특한 관점으로 보여주고 있어 생산적이었다는 평도 없지 않았다.

최장순 기자 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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