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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로 한미관계 균형추 찾아
민주화로 한미관계 균형추 찾아
  • 박태균/서울대·한국현대사
  • 승인 2006.11.1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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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중 교수의 서평(418호)에 답한다

한국현대사의 흐름을 한미관계 중심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한국현대사에서 단지 외부적인 조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역동성에 개입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미국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한미관계를 통해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우방과 제국’을 통해서 밝혔듯이 미국의 역할이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우방’과 ‘제국’으로서의 역할은 시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한미관계사를 전체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론으로 한미관계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졸고는 실증적인 작업을 통한 역사적 사실의 복원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양국 관계는 점차 진화되어 왔다. 한미관계는 그 태생에서부터 불평등한 관계를 맺어 왔지만, 조금씩 정상적인 관계로 발전해 왔다. 1979년의 정치 위기가 다가왔을 때 미국의 ‘우호적이고 튀지 않는 충고’(351쪽)가 필요하다는 주한미국대사의 권고는 1971년 대통령 선거 직후 ‘우리는 덜 소극적이어야 하며 덜 관용적이어야 한다’는 포터대사의 권고와 비교할 때 변화된 한미관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어떠한 요인들이 이러한 한미관계의 변화를 추동하였는가. ‘우방과 제국’의 결론 중의 하나는 바로 민주주의의 성장이었다. 한국 내 민주주의적 시스템의 결여가 결국 비정상적인 양국관계를 만들어냈지만(371쪽), ‘미국이 더 이상 한국 내정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한국 사회의 성장 때문이었다. ‘1979년의 한국은 헌법을 개정하라고 협박했던 1960년대 초반 박 정권 때의 한국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며(424쪽 미주 1), 한국사회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식의 성장이라는 변화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과거의 한미관계를 오늘의 한미관계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작업이 될 수도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통해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장했던 한국 정부의 입장(6부)과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단지 희생자의 입장이어야만 한다’(311쪽)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현재 양국 정부와의 입장과 비교해 본다면, 桑田碧海를 느낄 수 있다. 김봉중 교수의 비평은 이런 측면에서 분명 중요한 지적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한미관계의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한미관계에 중요한 시사점들을 던져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제3세계에 대한 개입 방식 역시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교훈을 얻어가는 방식을 택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거 한미관계사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현실에서 중요한 기제로 작동한다. 1960년대 중반 미국의 문서들 속에서는 1960년대 초 한국에서의 경험을 베트남에 대비하는 경우 역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68년 안보위기 시 유엔군 사령관은 이승만 정부 시기보다 더 어려운 상황임을 전제했고(315쪽), 1972년 주한미국 대사는 이승만 정부의 정전협정 반대, 1961년의 5·16 쿠데타, 1963년의 민정이양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1968년의 안보위기 시 한미관계의 교훈을 통해 당시의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했다(366쪽). 지금의 미 행정부가 해외미군 재편과 주한미군 감축을 계획하면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유사한 계획을 검토했을 가능성이 크다(3부 3장, 6부 1장). 이것은 결코 ‘부정확한 비약’이 아닐 것이다. 물론 30년이 지난 후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관련 문서들이 공개되면, 이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결국 ‘우방과 제국’을 통해서 제기하고자 했던 문제의식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의 문제였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주로 미국의 ‘무리한 개입’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졸고에서는 한국 자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과거 한미관계로부터 학습효과를 얻지 못했고, 미국의 정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한국측에도 중요한 책임이 있다. 우리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설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추동한 한국 국민들의 힘을 무시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 사회의 성장을 이끈 국민의 힘이 한미관계 진화의 기본적인 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의 기본 전제이다. 그러나 과거 냉전시대 한미관계의 틀을 고수하고자 하는 보수적인 생각은 한미관계의 정상적인 진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 현실임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졸고에 대해 ‘시각과 결론이 상호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하지만, 문제의식과 결론은 초지일관 한국 사회 내적인 힘에 초점을 맞추었다.

마지막으로 ‘책머리’에서 지적한 ‘역사가로서의 과도한 책무와 강박감’을 본문에서 구체적 분석을 통해 녹여내지 못하고 독자들에게 해석을 맡겼던 필자의 어눌함에 대해 비평해주신 김봉중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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