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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學 커넥션과 담론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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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11.14 17: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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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학자의 공모 … 들러리에 중복출연 예사

북핵사태 이후 언론에 지식인들의 중복출현이 더욱 심해졌다. 전문가 풀은 갈수록 넓어지는데 글 쓸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다. 언론의 안이한 필자선정, 학자들의 글쓰기 기피 등 복합적인 문제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쟁점이 발생하면 특정인이 그것을 선점하고 담론을 이끌어가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논의의 확산보다는 반복재생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과연 지식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각종 매체, 필자들을 중심으로 의견을 들어봤다. 또한 글을 많이 쓰는 문제, 글쓰기에 대한 메타적 인식이 글의 내용과 소통, 자기만족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엿보았다.

공중파 방송이나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한미FTA 협상에 따른 문제와 북핵사태 등 이슈가 터져나오면 적지않은 학자들이 등장한다. 아카데미를 넘어 대중에게 전문가로서의 식견을 전달하는 방식은 학자로서 권장할만큼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정 학자들이 필자로 인터뷰 대상으로 이슈가 터질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다.

지난 10월 27일자 ‘미디어오늘’에서는 대북제재론자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의 의견이 SBS 12건, 조선 11건, 중앙 6건 등 모두 84건 게재됐고, 연합뉴스를 제외하면 그 중 절반 이상은 보수언론에서 인용됐음을 지적했다. 포용론자인 백학순 남북관계연구실장은 이보다 약간 적은 57건이었고, 경향신문 6건, 한겨레신문 5건 등 상대적으로 진보진영에서의 접촉이 많았다. 언론의 성향과 칼럼의 결합 문제를 떠나 한 달도 안 돼 50여건이 넘는다는 것은 그만큼 특정 이슈에 대한 해설을 한 전문가가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수도권 지역 대학의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핵에 대해 식견이 있다는 학자들이 원래 갖고 있던 대북정책 기조와 북핵 등에 대한 논의가 섞이면서 정치권의 논의처럼 본질을 흐려놓고 있어 회의감이 든다”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양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인이 집중적으로 나와 모든 문제를 논하는 것은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김연철 고려대 교수도 “정치인의 연설과 학자의 발언은 명백하게 다른데, 학자들이 너무 정치인처럼 발언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서울 주요대학의 한 교수는 “학자들이 어떤 형태든 이념적 배경이 있기 마련인데, 정치세력에 맞는 충실한 논리를 펼치며, 청중의 기대치에 부합하는 글을 쓴다”고 말하며 “학자 스스로 이미지네이션의 폭과 전략적 사고를 제한시키며 사후설명적 접근으로 일관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충청지역의 한 교수는 “촉박한 시간 내 분석을 빨리해야하기 때문에 논리가 약한 측면이 있지만, 학자적 기본 양심과 소양을 토대로 글쓰기 때문에 여론선도층이나 엘리트 역할, 정책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학자들의 가치는 인정돼야 한다”고 반론했다.

특정매체에 특정인의 칼럼이 자주 실리는 것에 대해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다양한 필진을 발굴해야 하는데, 시간에 쫓기면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게 된다”라며 “칼럼 쓰는 학자들이 저널리스트의 글과 구별 안 되거나 그보다 못한 경우가 있는데, 연구분야를 넘어선 발언은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손영준 국민대 교수(언론학)는 “충분한 반론의 공간을 주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한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했다면 사회가 충분히 경청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매체에서 취재원 발굴을 게을리 한 부분이 있다고 전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신문모니터’ 담당 조영수 씨는 “국보법이나 북핵, 부동산 등의 이슈 현안에 대해 각 신문마다 필진 그룹이 정해져 있는데, 논조를 부각시키기 위해 최소한의 양적 균형도 이루지 못하는 점은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문입장에 맞춰 큰따옴표를 사용하는 제목뽑기도, 꼼꼼히 글을 읽지 않는 독자에게 기정사실로 전달되는 것도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슈에 따른 특정인의 잦은 등장과 그 논리가 식상하다는 문제에 대해 동아일보 오피니언팀의 한 관계자는 “여러 신문을 동시에 보는 일부 언론단체나 시민단체와는 달리, 일반인은 한 매체만 보기 때문에 식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라고 구분할 것을 주문했다.

특정매체에 특정인이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현상에 대해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는 “지식인의 매체 글쓰기는 대중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로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결정을 미디어에서 선택하기 때문에 지식인은 들러리로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 일간지 기자로 원고청탁의 경험이 많은 송용회 이화여대 교수(언론학)는 “매체 글쓰기는 학술담론이 아닌 대중담론인데, 매체성격과 전문성을 갖춘 동시에 2백자 원고지 8매 내외의 쉽고 축약된 글을 쓰는 학자를 구하기란 쉽지 않고, 젊은 학자는 지명도가 낮고 학문 글쓰기에 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말한다. 이어 언론의 논조에 학자들을 종속시키는 것에 대해 송 교수는 “언론은 전문성, 학자는 이름을 알리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칼럼니스트 학자들은 대중적 영향력 확보를 위해 언론을 이용한다는 물물교환의 논리다.

물물교환의 논리 팽배

또한 일간지나 대중학술지의 편집자들 역시 송 교수와 의견을 같이 한다.

필자 발굴을 위해 각종 학술대회 논문들을 살핀다는 주요일간지의 한 칼럼청탁 담당자는 “최고급 필자를 동원하고 싶지만, 글과 전문적 안목, 지식을 가진 자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라며 “학술논문을 쓰는 학자와 대중 사이의 간격이 큰데, 어떻게 하면 좁혀나갈 수 있을 지 고민이다”라고 덧붙였다. 오피니언을 담당하고 있는 경향신문 여론독자부의 한 관계자 역시 “각 담당 부국장이나 출입처 기자들에게 정보를 구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나, 신문논조와 매체글쓰기에 적합한 필자가 드물다”라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매체 관계자는 “글쓰기나 성향이 검증하지 않고 청탁하면 데스크를 통과하기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일간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계간지 역시 마찬가지.

‘황해문화’의 한 관계자는 “개성있는 필자를 찾기 위해 여러 학자들에게 추천받지만, 그 주변분들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한정적이긴 해서 벗어나려고 노력중이다”라고 말하며 “여러 매체에 등장하는 분이 기존 논조와 같은 원고를 보내오면 일하는 입장에서 힘이 빠진다”라고 전했다.

정부의 용역과제나 학교 평가제도 등에 쫓겨 청탁거부가 많은 것도 문제가 제기된다.

염종선 ‘창작과비평’ 편집장은 “전문학술지를 제외한 대중종합지나 교양지에 원고를 기고해도 업적평가에 계산되지 않아 원고청탁을 부담스러워하는데, 대중과 고립된 학문활동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는 전통과 권위있는 대중교양서를 평가해 등재(후보)급에 준하는 혜택을 주자는 내부토론을 조심스럽게 열었던 적도 있다.

대중적 설득도 필요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의 저널리즘 발언이 아직은 진보와 보수의 훈육적 태도가 많다고 생각한다는 강명구 서울대 교수(언론학)는 “학진 인증은 차선일 뿐, 연구내용을 학계를 벗어나 말할 수 있는 풍토 조성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질적 평가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반대로 정량평가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강치원 강원대 교수(서양사)는 “일부만 주도하는 협소한 대중담론 소통 문화, 그리고 토론을 기피하고 자기 글만 맞다고 쓰는 지식인도 문제다”라고 비판한다.

사회적 현안이 제기될 때부터 연구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적지 않기 때문에 학자들의 글쓰기는 대중의 관심과 함께 하기란 쉽지 않다. 학문적 글쓰기와 대중적 글쓰기의 간격. 그 사이를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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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006-11-15 15:35:24
공감이 가면서도 보수, 진보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잡힌 기사다.
이런 기사가 자주 나와야 교수신문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