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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비평] 냉전적 시각 고수한 조선일보
[언론비평] 냉전적 시각 고수한 조선일보
  • 교수신문
  • 승인 200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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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9 13:51:27

김동민 / 한일장신대·신문방송학
남북정상회담이 임박한 이후 언론의 보도를 보면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다. 먼저 상업주의 언론의 특징인 흥미 위주의 추측성 보도의 난무로 인해 민족문제에 대한 역사의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신문 방송에서 공히 나타난 문제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북한측에서도 강한 불만을 토로한 바 있는데, 사실은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일부 신문의 반민족적 반통일적 극우적 냉전적 보도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신문들은 기본적으로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 바탕 위에서 흥미 본위의 상업주의 보도도 나왔던 것이므로, 이 점은 시행착오의 과정으로 보면 된다. 정상회담이 북한측의 요구로 하루 연기되었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언론의 무책임한 과열보도가 거론된 바 있다. 이 점에 대해 동아일보와 한국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대한매일 등은 과열 보도경쟁에 대해 자제와 반성의 뜻을 표명하면서 연기 발표를 이해하고 수용하였다. 그런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북한에 대한 불신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정부를 질책하는가 하면 한나라당의 무책임한 논평을 ‘野 “北태도 무책임”’, ‘한나라 “北무책임” 비난’이라는 제목으로 1면 머리기사 바로 밑에 배치해놓았다. 물론 과잉보도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해버렸다. 그야말로 무책임하고 근시안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6월13일 남북 정상들의 역사적인 만남을 보도한 14일자 사설들을 보면 신문들이 민족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신문들의 태도는 감격, 감회, 감동 그것이었다. 조선민족의 일원으로서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 치고 이러한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날의 감동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글썽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단과 대립, 갈등, 긴장 속에서 기득권을 누리려는 사람일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 날부터 그간의 부정 일변도의 시각을 접고 긍정적인 접근으로 선회하였다.

그런데 유독 조선일보는 ‘굳세어라 금순아’였다.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며’라는 사설을 보면, 북한에 대한 여전한 불신을 내비치면서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야비한 내용으로 자극해놓았다. 판을 깨려는 심사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작 변해야 할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변화된 북한의 모습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까.

조선일보의 이러한 속내는 정상간의 합의 사실에 대한 태도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15일자 모든 신문들이 4대 원칙 합의에 대한 사설을 실었다. 여기에서도 전 날의 감동이 이어진다. 동아일보는 “가슴이 찡 울리는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고 했으며, 중앙일보는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한다면 두 정상이 합의한 평화의지를 전 세계에 확인하는 민족적인 행사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두 개의 사설을 실었는데, 하나는 ‘IMT 2000 황금알인가’였고 다른 하나는 ‘兩岸에 훈풍이’였다. 동문서답도 유분수지 세상에 남북정상간의 역사적인 합의가 그래 IMT 2000이나 대만문제보다 못하다는 것일까. 예측하지 못했던, 바라지도 않았던 결과를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해석된다. 역시 변화가 필요한 곳은 조선일보인 셈이다.

사실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의 3월9일 오후 4시30분(한국시간 3월10일 0시30분)의 베를린선언에서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러면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부정 일변도의 ‘재 뿌리기’ 보도로 일관하였다. 조선일보는 11일자 사설 ‘’베를린 제의’의 앞과 뒤’에서 사전교감이 없는 메아리 없는 소리가 아니냐는 비아냥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3월10일자 중앙일보에서는 사전교감의 흔적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상회담이 발표되면서 사전교감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선일보는 이 후로도 각종 사설과 칼럼, 외부기고 등을 통해 남북간의 긴장을 유지 내지는 고조시키려 노력했고 정부의 대북 정책을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평양학생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의 공연도 못마땅해했으며, 심지어는 6월8일자에 ‘’남북’은 냉엄한 비즈니스다’라는 매우 몰상식한 사설을 실었다가 한국일보 강병태 논설위원으로부터 “사회가 지나치게 들뜨는 것을 경계하는 충정으로 보기에는 용어와 논법이 망발에 가깝다”(한국일보 6월9일자 ‘민족문제가 비즈니스라니?’)는 비판을 받았다. 오죽하면 동업자 논설위원으로부터 이렇게 핀잔을 들었겠는가 민족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통일의 길은 이제 첫 발을 내디딘 셈이다. 앞으로도 갈 길은 멀고 험하다. 그 까닭은 다름 아닌, 통일을 원치 않는 냉전세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식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이 냉전세력의 발호를 제어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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