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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盧'의 목소리만 울려퍼진 혁신포럼
[기자수첩] '盧'의 목소리만 울려퍼진 혁신포럼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6.11.13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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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의 ‘공과대학 혁신포럼 2006’ 행사는 한없이 매끄럽게 진행됐다. 짜여진 각본에 따라 손색없이 연출된 한편의 연극과 흡사할 정도였다.

계획대로 ‘공과대학 혁신비전과 전략(이하 공과대학 혁신비전)’이 발표되고, 이에 대해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장, 대한상공회의소장, 산업자원부 장관 등 포럼 패널들은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원고들을 읽는 것으로 의견을 대신했다. 토론자의 난상토론도 없었고, 플로어의 토론도 없었다. 청중이었던 5백여 명의 대학·산업계 주요 인사들은 발언 기회도 없이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만이 “이대로 가면 효율적으로 될 것 같다. 그러나 예전에도 맞춤식 교육, 가족회사제도 등을 들어왔는데, 잘 안 되니 또 이런 자리에서 보고하는 것 아니냐. 조금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는 등의 의견을 말했다.

행사가 블랙코미디처럼 여겨졌던 것은 대통령만이 자유롭게 발언하는 포럼이 ‘혁신포럼’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렇게 조심스럽게 진행된 포럼을 통해 교육부와 산자부가 얻고자 한 것은 ‘공과대학 혁신비전’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이었던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공과대학 혁신비전’에 힘이 실리고 안 실리고 한다면, 참여정부 내내 공론화돼 왔던 ‘자발적인 지역 혁신’은 또 무엇인가. 5백여명의 핵심 인사들은 대통령의 말에 힘을 얻어 ‘혁신’을 퍼트린단 말인가. 아니면 내로나 하는 인사들이 자리를 채워주면서 ‘공과대학 혁신비전’이 발표되는 것을 구경하러 왔단 말인가.

“대학이 과연 산업인가”에 대해 장시간 토론은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혁신’의 현실화를 기대하고 있다면, 포럼 패널들의 냉철한 지적이나 그것이 아니라면 객석에서의 의견 제시가 가능했어야 했다.

대학 교수들이 기업의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면서 기업이 당장 요구하는 대로의 맞춤형·일회용 인재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울 것인가, 기업의 재교육 비용이 든다고 해서 대학이 기업의 산하 교육기관으로서 기능해야 하는가 등의 쟁점들은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공학교육에 대한 기업과 대학의 인식차가 매우 큰 것이 사실인데, 어떻게 그 자리에서는 서로 아무 이견이 없단 말인가.

각 공과대학의 자체적인 ‘교육 혁신’을 공론화하는 자리인데, 포럼 자체부터 형식적이고 마냥 ‘중앙’ 중심적이었던 상황은 아이러니컬할 뿐이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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