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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식공유 실천하는 ‘가우리 학문공동체’ 운영자 박선호 씨
[인터뷰] 지식공유 실천하는 ‘가우리 학문공동체’ 운영자 박선호 씨
  • 최장순 기자
  • 승인 2006.11.11 13:3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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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공유될 때 아름다운 법입니다"

어떠한 유형의 정보 독점도 거부하는 한 사이버 공동체가 있다. 지난 2005년 2월에 네이버 카페에서 살림을 차린 ‘가우리 학문공동체’는 1주년을 앞둔 지금 벌써 1만9천여명의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카페를 찾는 것일까.

“지식은 평등과 나눔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문의 가치는 실천과 공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우리 학문공동체를 처음부터 구상하고 현재 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박선호 씨의(37세) 말이다. ‘가우리’. 학문공동체의 이름이자 카페 운영자의 닉네임이기도 한 명칭은 ‘고구려’를 ‘가우리’라고 읽기도 한다는 몇몇 역사학자들의 ‘설’이 반영된 단어다. 고구려의 영토 확장처럼, 정보 공유의 지평을 확장해 보겠다는 운영자의 취지가 깃든 표현이기도 하다.

▲ '가우리 학문공동체'의 운영자 박선호 씨
“어릴 적부터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금속을 다루는 직종에 종사하면서도 그런 꿈을 버리지 못했지요. 별도의 돈을 들이거나 대학에 가지 않고서는 공부하기 힘든 현실이 슬펐어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논문을 모아 읽다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논문을 공개하기 시작했지요.”

박 씨는 ‘지식에 대한 갈증’으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고, 이 자료들을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차곡차곡 게재하기 시작했다. 자료가 축적됨에 따라 이 블로그는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으며, 네티즌들 사이에서 ‘가우리’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 간의 소통이 필요해 인터넷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 박 씨의 설명이다. 현재 이 카페에는 법률, 철학, 사회과학, 기초과학, 의학, 상식, 교육 등 각 분야별로 방대한 자료가 축적돼 있으며 그렇게 구분된 카테고리는 이미 2백개를 웃돈다.

박 씨가 논문을 수집하고 게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된 문제가 있다. 바로 저작권의 문제다. “가끔씩 몇몇 교수들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내 논문을 왜 허락도 없이 올려놨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대화로 공동체의 취지를 설명하다 보면 그런 사람들도 오히려 ‘도와 줄 일은 없느냐’고 되묻곤 합니다.”

한번은 자기 논문이 올려져있는 걸 알게 된 어느 교수가 그 논문에 자신의 이름이 빠져있었다며 좋은 공간에 자신의 논문을 올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박 씨는 얼마 전까지 공장에서 밀링머신을 다루던 노동자였다. 지식이 곧 권력이 돼버린 정보독점사회 속에서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힘들어, 이젠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카페 운영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어서 생활고를 겪는 것이 사실이예요. 가끔씩 회원들이 보내주는 소정의 후원으로 최소생활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 길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포기하고 싶은 생각에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습니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지식의 공유를 위해 그는 오늘도 자료를 수집하고, 토론 주제를 던지고 있다. 그의 화두는 언제나 ‘학문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지식인들은 개별적 성과물을 보며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식 공동체 안에서 지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식 습득 가능성에 있어서 모든 이는 평등해야 합니다.”

가우리 학문공동체를 클릭하면 ‘가우리공동체 발기인대회’라는 공지사항이 나온다. 발기인 1백명을 모아 여타 공익성 사업을 추진하고, 회원들의 동의하에 가우리 학문공동체를 사단법인화하겠다는 것. “보다 탄탄한 조직화를 거쳐 공동연구도 하고, 그 성과물들은 책으로 출판해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박 씨는 “용기와 신뢰가 있는 보통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상업적 목적으로 가입해 공동체를 자기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려는 회원들이라면 거절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지 못한 자의 슬픔에서 시작된 그의 노력을 보다가, ‘밥그릇 싸움’에 연연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최장순 기자 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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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근 2006-11-16 17:35:12
항상 가우리카페의 어마어마한 양질의 자료를 보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1만9천의 가우리회원분들이 있으니 힘내세요~

박 선호 2006-11-15 03:07:35
이렇게 훌륭한 공간에 제 사진이 올라와 있으니 왠지 낯선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