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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 통권 60권 앞둔 ‘책세상문고·고전의 세계’ 시리즈
■ 화제: 통권 60권 앞둔 ‘책세상문고·고전의 세계’ 시리즈
  • 최장순 기자
  • 승인 2006.11.11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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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번역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책세상의 '고전의 세계' 문고시리즈가 60권째를 앞두고 있다. 단행본 출판사가 지원없이 비교적 신속하게 쌓은 권수인지라 그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현재 ‘고전의 세계’ 각권의 평균 판매량은 4천~5천부. 그 중에서 ‘인간불평등기원론’이 1만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학술 단행본이 1천부 전후를 오가는 수준을 감안할 때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책세상 측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고전은, 여전히 ‘낡고 두껍고 읽기 어려운’ 책들에 대한 통칭”이라며 “과연 고전은 학문 연구자들에게만 필요한 걸까”라는 문제의식에서 ‘고전의 세계’가 기획되었다고 한다.

고전을 들고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먼저 분량이 가뿐해야만 했다. 문선휘 편집장은 “2~3백쪽의 고전 텍스트를 가지고 대중들에게 다가서는 건 한계가 있다”며 “우리 문고의 미덕은 원고지 6백~8백매 정도로 전체적인 호흡이 짧으며, 글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책세상 문고판은 1백50여쪽 정도인데, 손바닥만한 크기의 조그만 판형을 고려한다면 그다지 많지 않은 분량이다.

이처럼 ‘고전의 세계’는 제한된 분량으로 동서양 사상가들의 저작, 논문, 편지, 팸플릿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을 발췌 번역해왔다. 가령 △ 역사를 움직인 세계사적 선언이나 핵심 문건 및 연설문 등의 번역(‘공산당 선언’), △ 한 사상의 전체적 윤곽을 그려보이는 논문들의 선별 및 번역(‘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 일반 독자들이 거의 읽을 수 없는 대작의 주요부분 발췌 번역(‘순수이성비판 서문’) 등을 통해 완역된 고전으로 관심을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 책세상의 전략이다.

갓 박사를 마친 신진 학자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점도 주목된다. 문 편집장은 “소장학자들이 문고라는 형식을 빌어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진학자들이 저마다의 참신한 언어로 번역하고, 그에 대한 자기만의 해제를 비중있게 덧붙임으로써, 출판 활동의 디딤돌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고지 6백~8백매 가량의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 소장학자들의 참신한 해석과 표현들, 3~4천원대의 저렴한 가격 등이 ‘고전의 세계’ 기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요인이다.

심재관 편집위원(금강대·불교학)은 “다른 출판사에서 많이 다루지 않았거나, 아예 다뤄지지 않은 것들을 번역 대상으로 삼지만 그럼에도 겹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페르시아어, 라틴어, 희랍어, 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 등 고대어 전문가가 없다 보니 현대 서양어나 한문으로 된 고전들을 위주로 선정해 다른 고전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감각적인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경우 동일한 고전이라 하더라도 책세상의 고전 시리즈에 눈독을 들인다”는 것이 신행선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의 말이다. “고전을 간단하게 발췌 번역하고 그와 관련한 역자의 해제를 덧붙여 옮긴이와 독자 모두 상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그러나 비판도 없지는 않다. 한 출판평론가는 “이 시리즈 같은 경우 어떤 책들은 번역문보다 옮긴이의 해제가 더 길어 차라리 안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며 “고전을 발췌 번역하는 것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만, 완역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고전을 읽으려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완역된 것을 구매할 것”이라며 “과연 요점 독서로 대가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잘못된 발췌 번역은 오히려 원전에 대한 잘못된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책세상의 한 관계자는 “적당한 분량의 발췌번역이 독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며 “읽고 싶은 고전이 두텁고 비싼 책밖에 없어 발췌 번역해달라고 요구하는 독자들이 종종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책세상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묵자를 읽고 싶은데 전부 굵고 비싼 책이 많습니다”라며 발췌 번역을 부탁하는 독자의 글도 있었다.

역자 해제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고봉만 충북대 교수(불문학)와 함께 ‘언어기원에 관한 시론’을 완역한 주경복 건국대 교수(언어학)는 “이 책은 상당한 분량의 해제를 담고 있다”며 “원전에 대한 오해를 풀어줄 수 있어 역자해제를 보려고 책을 구입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전했다.

또 주 교수는 “발췌 번역은 그 책에서 중요하거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부분들을 선별한 것이므로, 원전에 다가서기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고 그 의의를 평가했다.

최장순 기자 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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