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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知美의 성과
비판적 知美의 성과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11.06 2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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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미국을 발가벗기는 두권의 책

국내 미국학자 두 명이 연달아 저서를 펴냈다. 이현송 한국외대 교수(사회학)의 ‘미국 문화의 기초’(한울)와 박진빈 광운대 교수(미국사)의 ‘백색국가 건설사’(앨피)가 그것이다.

미국 관련 번역서들의 홍수 속에서 이들 국내서가 눈에 띄는 이유는 정치부터 문화까지 모두 다루는 개설서의 성격을 벗어나 ‘비판적 각론’의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또 음모론에 가까운 정치외교적 쟁점들에서 벗어나 문화론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두 책은 거대한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아니라, 갓 태어난 신생아 미국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로버트 영의 ‘백색 신화’(White Mythology)를 연상케 하는 박진빈 교수의 책은 19세기말~20세기초에 걸친 미국 혁신주의 운동(Progressivism)이 어떤 식으로 향후 미국의 정체성을 이루었는지를, 혁신주의를 주도했던 정치·사회·경제·도시설계 등의 리더들을 통해 살피고 있다. 박 교수의 눈은 ‘혁신주의’의 계급적·종족주의적 한계를 치열하게 응시한다. 슬럼개선운동, 세틀먼트하우스 운동, 뉴욕 공동주택법, 정원도시운동, 만국박람회, 서부개척, 사회진화론, 중국인 이민금지법, 우생학으로 이어지는 개혁의 흐름은 백인 엘리트의 사회적 사명의 실현이었다는 시각이다.

슬럼개선운동을 이끌어낸 제이콥 리스의 사진집 ‘다른 절반은 어떻게 사는가’를 다루면서 저자는 슬럼가의 아이들, 쪽방들, 오물들을 찍는 이 포토저널리즘의 효시에서 가난과 나태와 부도덕을 ‘추방’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단정적 시선’을 읽어내고 있다. 시카고의 ‘도시 미화사업’ 또한 공장을 공원 뒤로 감추는 식의 겉치장이면서 동시에 다운타운의 땅값을 올리려는 의도도 내포되었던 것이라고 분석한다. 때문에 이 책의 논조는 반복되는 감이 있고 저자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짐작이 된다. 하지만 독특한 문학적 묘사와 독자를 앞에 둔 듯한 글쓰기가 지루함을 사전에 예방하고 있다.

이 책은 최근 혁신주의가 범대서양을 아우르는 지적·문화적·정책적 교류의 산물이었다는 다니엘 로저스의 ‘대서양 건너기’(Atlantic Crossings),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이 혁신주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 그것의 급진적인 측면을 복원하려고 한 마이클 맥거의 ‘맹렬한 불만’(A Fierce Discontent) 같은 미국 내부의 저서들이 혁신주의와 제국주의의 근본적 친연성에 애써 눈을 감고 있다는 지적을 위해 집필된 측면도 있다. 그런 점에서 외부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조명된 혁신주의 평가서라 할 만하다.

위의 책이 신진학자의 패기가 묻어난다면 이현송 교수의 책은 학문적 경륜이 녹아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미국인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는 서문에서의 고백이 문맥마다 스며있고, 해박한 이론과 끈질긴 반론을 통해 미국 사회·문화의 토대를 체계적으로 파헤친다. 그 과정은 미국적 보편성을 해체함으로써, 마치 서부의 정복자들이 원주민들을 내쫓고 ‘개척자’의 명성을 누린 것에 대한 한편의 복수극을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이 책은 미국사회의 모순적 구조를 역사적으로 훑어내려오는 역사사회학 방식으로 되어 있다. 첫장에서는 미국 예외주의의 모순을 짚는데, 청교도적 기원은 과장된 것이며 경제적 이득을 위한 초기 정착자들의 행동들이 선교·교화 같은 종교적 행위와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이 이념적 목표보다는 일부 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반역이 운좋게 성공을 거둔 사건이며, 인권보장의 명문화과정도 영국에서 상공인 계급과 왕 사이에 밀고당기며 만들어진 제도를 빌려온 것이라며 탈신화화 작업을 한다.

저자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별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 압력이나 비종교적 목적 때문에 대외적으로 신앙을 말하는 것이지, 실제 미국인들의 종교적 믿음은 매우 약하다”라거나, “미국에 사회주의가 발붙이지 못하는 것도, 정도의 문제일 뿐”이지 그 사회의 본질적 특징은 아니라고 계속 강조한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이 이러한 것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이미 심성 속에 확고하게 새겨놓았음을 강조한다. 여기엔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미국을 부정하는 것으로 치달아서는 안된다는 우려가 묻어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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