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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性에 대한 철학...꿈같은 서술 매력
感性에 대한 철학...꿈같은 서술 매력
  • 문재은 한국외대
  • 승인 2006.11.05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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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달랑베르의 꿈』(드니 디드로 지음, 김계영 옮김, 한길사)

중세 신의 품안에서 아직 미지각의 상태로 잠들어 있는 인간들에게 이성의 빛을 던져주고, 구질서의 편견이나 미망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계몽주의의 완결판인 ‘백과사전’의 편찬을 주도적으로 총괄했던 디드로. 기존의 사고체계를 혁신하고 새로운 질서를 기획했던 이 백과사전파 학자는 또 개인적으로 생물과 화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간파하고, 특히 유물론자로서 현상의 총체적 이해, 현상들의 내적 연관성,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새로운 우주관을 완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저작물을 생산했는데, 그 가장 중요한 결실이 바로 ‘달랑베르의 꿈’(1769)이다.

이 책은 선적인 명확한 구성을 갖춘 3부작(1부 달랑베르와 디드로의 대담, 2부 달랑베르의 꿈, 3부 대담후기)으로 이뤄진, 생명의 기원과 우주 생성론을 다룬 철학 텍스트다. 디드로는 이 텍스트에서 물질의 보편적 속성을 감성으로 보고, 동양학의 氣論이 그런 것처럼, 그 감성의 聚散을 통해 우주만물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독자들은 텍스트를 읽으면 마치 최한기의 ‘神氣通’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육체와 영혼의 분리나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가치를 부여하길 거부함으로써 디드로는 관념론적 철학의 논제를 극복하고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배제하며, 우주에 대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그런데 ‘달랑베르의 꿈’은 동일한 주제를 다룬 당대의 다른 철학 텍스트와 비교해보면, 아주 특이한 형식으로 서술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특이함은 대화, 꿈, 은유와 같은 문학적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대화라는 문학적 형식은, 디드로가 생산한 작품들의 전매특허이듯이, 이 텍스트 속에서도 철저히 라이트모티프(leitmotif) 역할을 하고 있다. 텍스트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대화는, 모든 대화자들이 하나의 주장을 이뤄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소크라테스적 대화다. 이처럼 대화는, 자칫 단조롭고 따분하며 현학적이 쉬운 철학적 담론에 일상 언어가 갖는 생동감과 현실감과 자연스러움을 불어넣어, 力說이 逆說이 되지 않도록 하는 문학적 형식이 된다. 그리고 텍스트 속에 꿈의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디드로는 일상적인 담론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할 사실들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꿈이라는 것 자체가 단순한 인식과 이성적 분석을 넘어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랑베르의 꿈’에서 은유는, 다소 역설적이긴 하나, 철학적 개념을 전달하는 가장 문학적인 형식이 된다. 한 단어나 이미지, 개념의 형태가 원래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로 이동할 때마다 유사성에 근거한 은유가 등장한다. 무수히 많은 작은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벌 송이나 인간의 사고 작용과 현의 공명 현상을 비유하는 클라브생, 감각과 의식의 문제를 다루는 거미의 이미지는 추상적인 것을 물질화하고,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며, 불투명한 것을 자명한 것으로 만드는 효과를 자아낸다. ‘달랑베르의 꿈’은 이처럼 철학적 내용과 문학적 형식이 어우러지는 행복한 만남의 공간이다.

문재은 / 한국외대·불문학

필자는 한국외대에서 ‘셀린느의 열린 글쓰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노동’ 등의 역서가 있다.

‘달랑베르의 꿈’은 이번에 처음 번역됐다. 이 책의 번역작업은 생명의 기원이나 감각작용, 사고작용 등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던 18세기의 사고방식과 표현을 현대적으로 옮겨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텍스트에서 장황하게 우회적으로 설명된 사실들을 21세기의 독자들은 이미 알고, 그래서 그들은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소위 ‘옛날’의 표현들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事象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을 문학적 우회를 통해 표현한 작품의 번역은 특히 용어의 정확성과 표현의 매끄러움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또한 생물학적 유물론을 대화의 틀 속에 담아낸 이 작품의 경우, 개별적인 대화의 분위기와 개념적 이해가 어우러진 특징을 살려내야 하고, 당시 학계와 문단을 풍미하던 이론들과 사교계의 에피소드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중의 어려움이 있다. 더불어 디드로 특유의 문체, 즉 확장 지향적이고 즉흥적인, 수다스런 분위기를 살려내야 하는 부담이 가중된다. 이런 컨텍스트의 특징들을 옮긴이가 충분히 살려 내려 노력했지만 아주 만족스럽진 않다. 하지만 현재 출판계의 번역상황을 감안한다면 18세기 작품이 출판됐다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 더욱이 소위 장르혼합이 이뤄진 ‘생경하고 어려운’ 작품의 경우에는 그 의미가 배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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