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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의 현상학과 현대철학』 이남인 지음|풀빛미디어 刊|2006|480쪽
『후설의 현상학과 현대철학』 이남인 지음|풀빛미디어 刊|2006|480쪽
  • 최장순 기자
  • 승인 2006.10.31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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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적인 것과 아닌 것

후설의 침묵이 지속된 지 68년이 지났다. 그간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철학자들의 많은 비판들이 쏟아졌다. 저자는 후설 현상학에 대한 철학자들의 오해와 부당한 비판들을 검토하고, 극단적 ‘의사소통의 한계’에 봉착한 철학계에 ‘현상학적 해석학 논쟁’을 자신있는 어조로 제안하고 있다.

논쟁 참여자들의 서로 다른 철학적 배경 때문에 소통의 실패로 귀결된 그간의 해석학 논쟁에서 벗어나 후설-하이데거-가다머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현상학적 해석학 논쟁’이 필요하다는 것. 어쩌면 후설의 현상학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제기된, 이러한 문제의식이 연장되어 ‘후설’의 현대적 의의를 조망하고자 하는 지난 14년간의 노력이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저자는 현상학적 철학이 존재론적 현상학에서 출발하여 구성적 현상학(혹은 초월론적 현상학)으로 이행하며, 마지막으로 현상학적 형이상학으로 펼쳐져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존재론적 현상학은 영역존재론과 형식존재론으로 나뉘며, 구성적 현상학은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으로, 현상학적 형이상학은 초월론적 모나드론, 초월론적 자연철학, 초월론적 신학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103쪽).

이처럼 복잡다단하게 전개되는 “다양한 유형의 현상학이 어디에 위치하며,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현상학적 철학의 지형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러한 지표가 없을 경우 “서로 다른 철학적 문제들이 뒤섞이게 되어 구체적인 주제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이 커다란 혼동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104쪽).

이러한 연유로 이 책은 후설의 현상학을 ‘기분의 현상학’, ‘상호주관성의 현상학’, ‘발생적 현상학’, ‘세대간적 현상학’, ‘실천철학으로서의 현상학’, ‘초월론적 현상학’ 등으로 구분하여 각 영역에서 제기된 비판을 소개하고, 그러한 비판들을 逆비판하여 후설 현상학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키고 있다.

일례로, 하버마스는 후설의 명증이론에 대해, ‘언어학적 전회(linguistic turn)’의 문제를 단초로 삼아, “후설의 명증적 진리론은 유아론의 틀 안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진리물음의 상호 주관적 차원 혹은 의사소통적 차원의 문제를 철저하게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을 가한 적이 있다(203쪽). 후설의 명증적인 직관이 상호주관적 타당성을 결여한 채 ‘주관적 확실성’만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하버마스의 오해’를 바로잡는다. “후설은 내가 경험하는 세계 및 대상들이 나의 사적인 구성물이 아니라 언제나 상호주관적인 세계 및 대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것(204쪽). 그 증거로 “나는 타인들을 포함하고 있는 세계를 (…) 나의 사적인 종합물로서가 아니라, (…) 상호주관적인 세계, 모든 사람들에 대해 존재하는 세계 (…)로 경험한다”는 ‘데카르트적 성찰’의 한 구절이 제시된다(204쪽).

이러한 비판-역비판의 과정을 통해 후설의 현상학이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등의 현상학 뿐 아니라 철학적 해석학, 생철학, 비판 이론, ‘포스트-’ 철학, 분석 철학 등 다양한 현대 철학 사조의 전개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이 책의 골자다.

다양한 현대철학과의 활발한 대화를 시도하는 이러한 작업을 위해, 후설 텍스트의 미세한 부분들을 포함하여 발간되지 않은 유고 등에 시선을 돌리는 저자의 세심한 노력은 분명, 이 책의 미덕일 것이다.

최장순 기자 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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