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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산행 같은 홀가분함”…보편적 본질의 허망함!
“주말산행 같은 홀가분함”…보편적 본질의 허망함!
  •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 승인 2006.10.30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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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비평]베스트셀러를 점검한다 (5) 류시화, 그 모순의 전략
맨 왼쪽이 류시화.

한국 독서계에 명상서적 류를 소개하고 키운 장본인인 류시화는 그동안 히트친 책이 십수권이요 합이 1천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제조자다. 시인이면서 직접 기획해서 번역도 하는 그는 소재선정, 문체, 감성 등에서 대중들의 심리를 절묘하게 파고들어왔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씨가 이런 류시화의 성공비결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분석·해체해보았다. 

 류시화는 자연인이 아니다. 시인 안재찬의 필명이 류시화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게 아니라 우리 도서시장에서 하나의 브랜드 네임이기 때문에 그렇다. 류시화가 기획, 번역, 저술한 책들은 지금까지 1천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 거론하는 류시화는 자연인이 아니다.

류시화라는 브랜드는 몇 가지 하위 브랜드 네임 혹은 키워드를 보유한다. 류시화를 ‘구성하는 것들’이라고 할까. 아메리카 인디언을 포함한 원주민, 틱낫한, 달라이 라마, 법정, 오쇼 라즈니쉬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가령 다음의 책들이다. ‘인디언의 영혼’(오래된미래, 2004),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김영사, 2003), ‘구르는 천둥’(김영사, 2002). (그의 역서류는 사실 원문에 대한 충실도 면에서는 낙제점에 가깝지만, 원문의 메시지를 원문보다 더 극적으로 전달한다는 면에서 최우수에 가깝다. 이를 두고 일종의 형용 모순인 ‘의도된 창조적 오역’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류시화가 소개하는 원주민은 일종의 대안적 삶의 태도 혹은 방식으로서의 원주민이다. 그 태도(방식)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영적 힘을 존중하는 태도, 단순하고 소박한 삶, 대지에 대한 사랑, 평화를 애호하는 태도 등이다. 근대적 삶에서 찾기 힘든, 혹은 잃어버린 삶의 방식(태도)이라 하겠다. 근대적 삶이란 도시에서의 삶이라 할 수 있으니, 류시화가 소개하는 원주민 관련 책들은 근대적 도시인에게 전근대적(시대 구분 차원의 전근대) 삶을 회복하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시인 이갑수의 ‘신은 망했다’를 떠올려 봄직하다. ‘神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 神은 망했다.’ 어떤 의미에서 류시화는 신이 망하기 이전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좀 더 크게 보면 근대적 삶은 자본주의와 민족(국가)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그렇다면 류시화가 소개하는 원주민의 삶의 방식은 자본주의와 민족(국가)주의 ‘이전’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약하면, 류시화는 도시, 자본주의, 민족(국가)주의, 근대성 등속의 이념, 태도, 삶의 방식, 시대 속에서 사는 사람이 겪는 문제의 극복 대안으로 원주민을 제시한다. 바로 여기에 류시화의 맹점 혹은 한계가 있다.

인도를 ‘말하지’ 않고 ‘써먹다’

그가 제시하는 원주민은 근대의 ‘극복 대안’이 아니라 지친 도시인들이 떠나는 주말 산행에 가깝다. 모처럼 떠난 주말 산행에서 산 정상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라. 가슴이 탁 트이고 홀가분해진다. 하지만 산에 올랐으면 다시 도시 한가운데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부대낌에 지친 도시인들의 심성을 잠깐이나마 달래주는 구실, 그것이 류시화가 원하는 원주민 이야기이며, 그 구실은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해줄만 하다. 하지만 극복과 대안은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할 때 가능하다. 류시화의 대안은 회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에는 하나의 공식이 있다. 모두가 평화롭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던 일종의 원형적 낙원이 있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 서양인들이 그 낙원을 망쳐 놓고 낙원에 살던 사람들을 내쫓았다. 실락원이다. 류시화는 바로 잃어버린 원형적 낙원을 얘기한다. ‘좋았던 옛날’에 관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 어떤 면에선 그런 원형적 낙원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한다.

이 점에서 류시화는 매우 영리하다. 만일 그가 ‘아메리카 인디언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공동체’ 같은 것을 만들고자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해보자. 그 순간 류시화라는 브랜드 네임은 무너진다. 그는 회복불가능한 원형성에 대한 사람들의 선망을 정확히 건드릴 줄 알았던 것이다.

류시화의 인도는 어떤 인도인가. 인도여행 산문집 ‘지구별 여행자’(김영사, 2002)에서 그는 여인숙 주인, 릭샤 운전사, 기차검표원, 망고가게 주인 등과 만난 얘길 들려준다. 말하자면 ‘변두리 인생’들인데, 류시화는 이들을 깨달음을 주는 영혼의 스승으로 설정(?)한다.

형편없이 낡은 여인숙 주인 시타람은 숙박비를 깎아달라는 류시화에게 말한다. “숙박비를 깎는다고 방이 새것이 되는 것은 아니잖소. 당신이 이 방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방값을 깎아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오. 난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 여인숙을 운영해 왔지만, 늘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소. 한쪽은 언제나 불평을 해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늘 즐겁게 지내는 사람들이오. 당신이 어떤 부류에 속하고 싶은가는 당신 스스로 선택할 일이오.”

세상을 바꾸지 못하겠거든 세상은 그냥 두고 마음자세를 바꾸라는 메시지, 행복을 욕망이 ‘분모’이고 지금 가진 것이 ‘분자’인 분수라 할 때, 분모를 줄이는 게 행복을 크게 만드는 길이라는 메시지다. 시설 개선을 통해 숙박비를 더 올려받아 자본을 축적할 마음이 없어보이는 지극히 비자본주의적인 여인숙 주인이 과연 오늘날의 인도를 말해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까. 류시화의 초점은 오늘날의 인도를 말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인도라는 표상을 자기 식으로 써먹는 데 있다.

틱낫한, 달라이 라마, 법정, 세 스님이 류시화의 중요한 키워드란 점은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 틱낫한은 ‘마음을 멈추고 다만 바라보라’(꿈꾸는돌, 2002) 등을, 달라이 라마는 ‘용서’(오래된미래, 2004) 등을, ‘법정-류시화’라는 환상의 복식조는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조화로운삶, 2006) 등의 책을 내놓았다.

이 스님들이 우리 사회에서 ‘먹히는’ 까닭은 매우 복합적이겠지만, 우리 사회가 진정한 원로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과 관련있다. 일제강점, 좌우 이념대립, 동족상잔, 민족 분단, 군사독재정권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질곡은 누구라도 존경할 만한 ‘어르신’이 나오지 못하게 했다. 틱낫한과 달라이 라마는 우리 사회나 역사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법정은 우리 현대사의 질곡에서 늘 한 발자국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그런 그들이 우리에게 (류시화를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 역사·사회의 구체적인 문제와 동떨어져 있다. 역설적일지 모르나, 바로 그렇기에 그들은 지혜를 전해주는 우리의 ‘어르신’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류시화는 역시 영리하다. 그는 ‘어르신’ 공백의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인물을 ‘어르신’으로 표상하는 게 장사가 되는지 안다. 이를 두고 류시화가 ‘지혜의 말을 전하는 어르신 소개 브로커’ 구실에 충실하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류시화는 문화일보(2001년 5월 9일자)와 가진 ‘비공식’ 인터뷰에서 “인간이 뭔가,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명상서적이 다루기 때문에 항상 이 분야의 책은 대중의 관심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인간과 삶의 본질 문제가 가장 현실적인 문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의 메시지에 反하는 전략 사용

그러나 그 현실적인 문제를 류시화가 다루는 방식은 과연 현실적인가. 이 대목에서 그에게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요구하고 싶지도 않고, 사회과학이 현실적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루는 최선의 방식이라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가장 비현실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명상서적이 대중의 관심을 받아온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인간과 삶의 특수성을 전제로 하지 않은 보편적 본질의 허망함! 그 허망함이 류시화의 묘한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와 사회가 빠진 공허한 사색의 심각한 포장, 고도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에서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게 마련인 독자층의 심성과 욕망을 읽어내고 절묘하게 자극해 지갑을 열게 하는 상략, 근대의 전략으로 근대 이전을 시장에 내놓아 팔 줄 아는 능력. 류시화가 보여주는 어떤 지혜가 있다면 그런 포장의 기술과 상략과 능력, 商人의 지혜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인기상품을 만들어낼 줄 아는 상략의 귀재 류시화는, 자신이 번역자, 기획자, 저자로 관여한 책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 反하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할 줄 아는 일종의 모순 그 자체다. 

표정훈 / 출판평론가

필자는 서강대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출판평론가, 번역가, 작가로 활동중이다. ‘하룻밤에 읽는 삼국지’,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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