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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신화와 학문의 경계
[學而思]신화와 학문의 경계
  • 조흥윤 한양대
  • 승인 2001.08.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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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8 16:19:44
어쩌다 보니 중 되었다고 한 성철스님의 말이 생각을 키운다. 무슨 큰 불법을 깨우치겠다거나 고해에 빠진 중생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는 이야기와는 크게 다르다. 나는 어쩌다 보니 샤머니즘(巫)을 연구하게 되었다. 어떤 대단한 이상을 품고 이 방면 연구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어떤 인연이 있는 듯 싶다.

30여 년 전 어느 더운 여름 미국인 종교학자 2명을 대동하고 문상희 교수와 함께 계룡산에서 신흥종교에 관한 현지조사를 했던 것이 내 이 방면 연구의 계기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어 혼자 부산 등지로 다니며 조사하느라 내 까만 혁띠가 땀에 절어 허옇게 된 것이 기억난다. 샤머니즘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한국 신흥종교의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나는 그때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며 처음에 나는 민중사에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종교학·사회학·민속학 방면의 책을 읽고 관련 강의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 접근방법과 이해의 틀을 잡지 못하고 뒷날의 과제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계에 사회경제사 연구가 있었더라면, 민중사 연구에 매달렸을지 모른다. 민중사에 대한 그때의 관심이 후일 나의 샤머니즘 연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0 년 전 쯤인가 고등학교 동창생을 우연히 만났다. 대뜸 그는 대학 초년에 내가 신령연구를 하겠다 했는데 그 연구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무언지 모를 어떤 힘이 그동안 나를 부단히 샤머니즘 연구로 이끌어 왔음을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독일서 인류학(민족학)을 공부하면서 샤머니즘 관계의 고전 논저를 구해 보던 즐거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샤머니즘은 인류학에서도 가장 어려운 연구분야로 거론된다. 우선 논저를 읽고 해당 민족의 언어를 알아야 하기에 다양한 언어와 언어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샤머니즘 연구가 인류학·고고학·미술사·종교학·정신의학·심리학·민족학·민족지학·역사학 등에 걸쳐 있기에 폭넓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런 공부가 힘들어 중도에 전공 바꿀 일을 몇 번이고 심각하게 고려했었다.

지구촌에서 샤먼은 이제 거의 사라져 버렸으나 한국에는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무당이 무업에 종사하고 있다. 저들은 고조선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전통신앙을 면면히 지켜온다. 한국은 샤머니즘 연구의 보고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능화는 1920년대 ‘朝鮮巫俗考’를 쓰면서 한국 고대 神敎의 염원이나 민족신앙사상 및 사회 변천 등을 알려고 하는 자는 무에 착안하여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였다. 춘원은 ‘조선문학의 개념’이란 글에서 무당의 사설이 대부분 한국 고대의 시가임을 역설하였다. 그렇건만 우리나라에서 샤머니즘을 연구하기란 매우 힘든다. 교수나 친지들이 공공연히 나를 조롱하며 무당박사라 부른다. 그런 편견과 선입견은 견뎌내면 그만이지만, 이번엔 무당들이 신령을 빙자하며 연구자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니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무당이 6백년 넘도록 사회적 천대와 억압을 받아온 사실을 헤아리면 저들에게 따뜻한 이해의 눈길을 보내야 한다.

내연구 초반의 관심은 한국종교와 문화의 기반으로서의 巫를 밝히는 일이었다. 아울러 무당을 천민이자 귀신숭배자 내지 미신업자로 치부하는 사회적 편견에 대하여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무가 우리네 전통 종교이고 무당은 그 사제이자 전통 문화예술의 전승자임을 한동안 역설하였다. 한국 종교·문화의 신명과 조화 정신의 근원이 무임을 밝히기도 하였다.

근년 내 연구는 무의 신화와 상상계에 치중하여 여러 편의 논저를 냈다. 한국 무는 다른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수의 원형적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 상상계는 한민족의 원형적인 것인 바, 무당은 망자를 꽃으로써 재생시켜 우리네 뒷동산 꽃밭의 本鄕으로 천도한다. 한국의 사회문화적 地形으로 보자면 무의 원형신화는 사회의 주변에 엄연히 살아 우리 사회에 신명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나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변, 신화의 세계에 머물며 분노를 잊은 채 평안히 연구를 즐긴다. 조흥윤 /한양대·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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