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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386세대의 빛과 그늘
[문화비평]386세대의 빛과 그늘
  • 류동민 충남대
  • 승인 2006.10.2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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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시절에 썼던 사회학개론 리포트의 복사본을 실로 십 오년 만에 받아본 적이 있다. 열아홉 살 나던 해 가을의 시점에서 자서전 비슷한 걸 써놓은 것이었는데, 짝사랑 실패담을 적은 낯 뜨거운 내용이었지만 볼펜으로 꾹꾹 눌러가면서 쓴 리포트를 보았을 때의 감동이란!

그렇게 리포트를 받은 사람들의 숫자가 몇 백 명이 넘는다는 사실, 다시 말해 그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담당교수가 이미 이십여 년 전부터 미래의 연구를 위해 리포트를 모아 두었다는 사실, 그리고 리포트 받은 고마움에 프라이버시 노출가지 감수해야하는 설문조사에 선뜻 응했다는 점, 그 결과가 다시‘386세대, 그 빛과 그늘’ 정도의 제목으로 출판되고 앞으로 인생이 꽤 지난 후에 다시 설문조사에 응함으로서 인생을 종단하는 연구대상으로 되리라는 점 등도 함께 알게 되었지만, 실상 그 모든 놀라움도 감동을 앞서지는 못했던 듯하다.

그 리포트를 받아보던 시점에서 386세대라는 말은 적어도 내게는, 예컨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번이 없는 사람은 배제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불쾌함 따위의 거부감을 주는 용어였다. 그 뒤 386세대라는 말은 여러 가지 부침을 겪다가 지금은 ‘죽은 개’ 취급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를 공포에 짓눌려 그 흔한 화염병 한번 못 던져 보고 지낸 나로서는 그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구를 되뇌이며, 386세대의 정신이란 어느 특정 개인이나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해방의 근대성을 추구했던 시대정신이어야 한다는 지극히 교수틱한 입장을 정리해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예의 설문조사의 문항들을 떠올린다.

아마도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다음 중 옆집에 함께 살아도 괜찮은 사람은?” 정도의 물음이었는데, 그 보기로 제시된 주사파나 공산주의자 앞에서는 전혀 갈등을 느끼지 않았건만(?), 막상 동성연애자라는 항목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서였다. 공적 담론의 영역에서야 당연히 ‘괜찮아’가 정답이겠지만, 마음 속 깊이 은밀한 사적 담론의 영역에서는 다른 대답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처음 외국에 나가본 것이 언젠가라는 물음. 대학졸업 때까지도 외국여행 자체가 특별한 허가를 받아야 했던 시절에 재벌2세 출신 동급생은 지중해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뜬소문, 그때 느꼈던 절망감이 이제는 영어도 못하고 외국경험도 없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밖의 비판이 되어 목덜미를 겨누고 있다.

어려서는 공산주의는 바로 친북을 의미하며 그 반대는 ‘한국적 민주주의’라 배웠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스무 살의 오월에 꽃향기를 음미하기보다는 지랄탄에 눈물을 흘리면서 자본주의란 모조리 야만적인 군사정권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였던 많은 386세대들처럼, 나는 ‘현실적인 것이 결코 이성적일 수 없던’ 시절을 보내며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 되는’ 세상을 막연하게 꿈꾸고 있었다.

그 많은 연탄들이 재가 되어 굴러다닐 때, 한편에서 다른 연탄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바깥세상을 바라본 충격만으로도 급속하게 현실에 투항해갔고, 이제는 오른쪽과 왼쪽, 앞과 뒤조차 구별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옛날 적으로 규정했던 이들과 비슷해져버린 자신을 발견하면서 다시금 발로 차이는 연탄재 신세가 되고 있다. 북한하고 미국이 축구하면 누구를 응원해야지 따위의 부질없는 이분법적 질문으로 고민하던 그 시절이 지나고, 남은 것은 막상 동성연애자와 이웃하기조차 두려워하는 허접한 감성뿐이라면? ‘Vocabulary 22,000’만 들고 다녀도 의식 없는 날라리로 치부하던 극단의 시절을 지나 글로벌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며 아이를 영어유치원으로 내모는 이율배반.

이제는 결코 이성적일 수 없었던 그 옛날의 현실을 이성적인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황당한 공세 앞에서조차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는 역설적인 현실이야말로, 그러나 진정한 해방의 근대성을 위해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나름대로 비장한 각오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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