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1 00:40 (일)
[학이사] 저 교수 게이야?
[학이사] 저 교수 게이야?
  • 백승진 경상대
  • 승인 2006.10.21 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승진 / 경상대·영문학

“교수님 아들이 동성애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번 학기 안식년으로 강의가 없으신 선생님의 학부과목인 영미문학비평을 대신하게 됐는데, 레즈비언/게이 이론과 퀴어 이론을 공부하는 도중에 한 여학생이 내게 던진 질문이다. 누구나 묻고 싶은 질문일 것이다.

이론적으로 동성애자들을 대변해주는 내용이기에 나의 반응이 몹시 궁금했을 것이다. 이런 질문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사실 대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었다.  

영미희곡을 강의하면서 연구 분야를 넓히기 위해 대학원에서 동성애자를 주제로 한 희곡작품과 이론을 몇 학기 째 학생들과 읽고 있다. 1996년으로 기억되는데 미국에서 비평 교과목 시간에 처음 ‘레즈비언/게이 이론’과 ‘퀴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됐다.

미국의 학생들이라고 동성애 문화에 너그럽지만은 않지만 한국 문화에선 터부시되던, 그래서 막연히 들어서 알고 있던 이론이기에 강의실에서 공개적으로 공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용이 쉽던 어렵던 충분히 흥분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학기 처음인가 도중에 담당 교수가 레즈비언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서 호기심이 더욱 강해졌었기도 했는데, 그 교수가 기말 페이퍼로 게이 극작가 토니 쿠쉬너(Tony Kushner)의 ‘미국의 천사들’(Angels in America)을 분석해 보라고 해서 힘겹게 읽었던 추억이 있었다.

그 후로 다른 교과목 시간에 테렌스 맥낼리(Terrence McNally)를 읽을 기회도 있어서 언젠가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제대로 연구를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몇 년 전까지 쿠쉬너와 맥낼리는 기억의 저편에 있었다. 사실 한국 대학에서 직장을 잡으려면 동성애를 주제로 하는 연구는 되도록 피하라는 선배의 충고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처음 학생들과 읽은 이론 책은 야고세(Annamarie Jagose)의 ‘퀴어 이론’(Queer Theory)이었으며 주제에 관련된 몇 편의 영화도 학생들에게 추천해 주었다.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었는데 대부분 학생들이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흥미롭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나 자신 성에 관련된 민감한 단어나 내용을 학생들과 이야기하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일단 학생들의 반응이 고마웠다.

계속되는 두 학기를 통해 맥낼리 작품을 읽고 에이즈를 주제로 한 여러 편의 미국 극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흥미롭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던 학생들이 다음 학기쯤 되니까 ‘저 교수 혹시?’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종교적인 이유로 작품을 읽기가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학문의 한 분야로 공부해두면 언젠가 도움이 되리라는 말을 힘겹게 해야만 했는데 내심 언젠가는 ‘저 교수 게이야’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것 같았다. 두려운 순간이었다.

아직 이렇다 할 논문은 쓰지 못했지만 나중에 자식들이 왜 이런 분야를 연구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이 분야에 연구 업적이 혁혁해서 야외 집회 연설과 원고 청탁을 받으면 어쩌나. 사회에서 나를 분명히 게이로 알게 아닌가. 교회에 계속 나가도 되는 건지. 사실 두렵다. 제자들이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 분야로 석/박사 논문을 써보라고 추천하지도 못했다.  

처음부터 이런 염려를 생각하지 않고 연구를 시작한 것은 아니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현실로 다가오는 두려움은 생각보다 컸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데 나 혼자 느끼는 두려움일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려움이나 막연한 개인적 불이익을 생각했던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스스로의 딜레마에 빠져버린 모습. 학문을 한다는 것은 기존의 틀을 계속 깨나가는 작업 아닌가.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