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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문제는 계산이다
[대학정론] 문제는 계산이다
  • 김인환 논설위원
  • 승인 2006.10.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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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환 / 논설위원·고려대, 국문학

성장이냐 복지냐 하는 때 지난 논쟁이 한창이다. 60년대에 남덕우와 변형윤 사이에서 전개되었던 논쟁이 서투르게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그 무렵에는 변형윤도 계량경제학을 가르치던 학자였기 때문에 이윤율과 복지기금의 관계를 지금처럼 유치한 흑백논리로 재단하지 않았다. 역시 60년대에 밀튼 프리드만이 제안한 마이너스 소득세 같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의 비개입을 주장하는 사람의 제안도 복지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변덕을 막을 수 있는 일관된 원칙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시장에 맡기면 된다고 하는 방임주의자들의 논리이다. 20세기 초에 체임벌린은 완전경쟁이 소멸하고 불완전경쟁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대기업은 제품을 생산하기 이전에 일정한 이윤을 포함하는 가격을 결정하여 선언한다. 대기업의 제품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지배되지 않는다. 대기업은 평균임금 수준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평균이윤율 수준보다 높은 이윤을 얻는다. 이것은 생산능률과 기술수준의 발달에 의한 소득이 아니라 환경제약에 의한 소득이다.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전개되는 무역제약도 한 나라 안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나타나는 환경제약과 완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무역제약을 뚫고나가는 길은 기술혁신밖에 없다. 기술혁신에 약소국의 생존이 달려 있다면 기술혁신을 방해하는 투기는 악이다. 시장은 무조건 선이라고 외치는 방임주의자들은 투기조차도 시장에 맡기자고 아우성칠지 모르지만, 적법적인 투자와 위법적인 투기를 구별하는 척도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시장이란 새삼스럽게 맡기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경제행위의 기본조건이다. 경제행위 전부가 시장 안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더 시장에 맡기자는 것인가? 시장이 전능하다는 그릇된 믿음은 경제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노동비율과 노동생산능률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분석능력이 일반시민의 경제상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국가의 낭비와 기업의 투기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경제원론의 기본도 모르는 시대착오적 방임주의에 반응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기업이나 신문에 잘못 보이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기 때문일까.

성장이니 이윤이니 하는 것은 누가 마음먹는 대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계산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건 국가 예산표를 내놓고 항목별로 줄여야 할 것과 늘여야 할 것을 계산하는 분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나 신문기자들 중에 국가 예산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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