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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화에 모든 罪를 씌워서야
법인화에 모든 罪를 씌워서야
  • 이향철 광운대
  • 승인 2006.10.21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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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법인화, 세계적 흐름
이향철 광운대 교수

한국의 대학이 길거리에 뛰쳐나가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하고 학내 정치지배의 축배를 들고 있을 무렵 세계의 대학은 그 장구한 역사에서 몇 세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거대한 세계사적 도전을 경험한다.

1960년대에 학생반란을 촉발시킨 대학의 대중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가운데 1980년대에 들어 교육내용이나 관리운영조직의 근본적인 변혁을 강요하는 세계화, 시장화, 지식정보화의 너울이 한꺼번에 닥쳤기 때문이다.

대학자치의 성장과 하강의 곡선

기존의 교수회 단위로 분절된 대학자치 및 이에 규정된 교육연구와 관리운영방식은 변화에 저항하고 조직 전체 차원의 대응을 가로막는 대학 보수성의 원천을 이루게 되자 여기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 고등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실험에 착수했던 것이다.

대학은 연구와 그 성과의 교수·전달을 본질적 기능으로 하는 조직이다. 이를 위해 ‘학문의 자유’와 ‘대학자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교육연구활동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조직체로서의 대학 그 자체의 자유·자치를 필연적 계기로 내포한다. 근대 대학의 본고장인 서구에서 사립대학은 물론 국공립대학까지 법인격을 가진 독립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학이 법인격을 가진다고 해서 국가권력을 초월한 완전한 독립성과 재정적 자율성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학문의 자유’와 ‘대학자치’의 이념을 구현하고 스스로 권리의무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법인격을 갖는 것이 당연한 조건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아가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새로운 사회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영국의 대학에서는 관리운영체제의 중앙집권화와 하위조직의 책임경영방식(종합적 품질관리시스템)을 광범위하게 도입한다.

심지어 전통적인 대학자치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독일에서조차 기존의 국립대학을 ‘재단형 대학’이라는 새로운 설치형태로 전환하여 비국유화를 시도하는 등 대학의 지배구조 및 관리운영조직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동아시아지역 국가에서는 역사적으로 고등교육의 상당부문을 사학섹터에 의존하며 소수의 국립대학에 국가주도의 산업화에 이바지할 관료 등을 길러내는 역할을 부여하고 제한된 공적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불균등발전을 추진해 왔다.

국립대학은 국가의 필요에 부응하는 정부기관으로 규정되어 독립된 법인격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대신에 관행적으로 총장공선제, 교수의 임용 및 신분보장 등 인사권을 중심으로 하는 교수회 자치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의 급격한 환경변화로 대학과 사회의 관계를 독점적으로 매개해온 국가의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면서 이들 지역의 국가시설형 대학은 심각한 기능부전에 빠진다.

신흥공업국가로 부상하는 중국과 말레이시아가 1998년 관련법을 정비해 국립대학의 전면적 혹은 점진적 법인화를 단행한 데 이어 2004년에는 많은 논란 끝에 일본이 모든 국립대학을 특별법인으로 전환했다.

현실적 대학 지배구조 및 운영모델 시급

이들이 목표관리에 입각한 관리운영의 효율화와 교육연구활동의 사후점검 및 제3자평가를 강화하는 ‘압축된 대학개혁’에 나선 것도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한 정책적 처방전이었다.

지식정보의 경제적 가치가 극단적으로 커지면서 대학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복잡다양해지자 대학의 설립자인 정부가 이를 집약해 정합적인 정책으로 편성하여 개별 대학의 운영지도 및 예산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국립대학은 세계적인 대학개혁의 사각지대에 놓여 ‘외딴 섬’처럼 떠 있는 형국이다. 국립대학 법인화의 의미를 대학자치의 말살, 재정책임의 방기, 기초학문의 붕괴 등 일견 모순되고 사회적 논거와 설득력이 약한 주장으로 호도할 것이 아니라 논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한국적 현실에 맞은 지배구조와 관리운영모델을 서둘러 찾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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