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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대의 특수법인화 정책을 즉각 철회"
"국공립대의 특수법인화 정책을 즉각 철회"
  • 교수신문
  • 승인 2006.10.1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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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자 민교협 성명서 전문
정부는 국립대 법인화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그간 많은 대학구성원의 반발에 부딪쳐 그 본격적인 추진을 유보해온 국립대 특수법인화 정책을 다시 본격적으로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립대에서 국립대로 전환하는 인천 시립대와 신설되는 울산 국립대를 2009년 3월 법인화하고 오는 2010년까지 서울대를 포함한 5개 국립대를 법인으로 전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 가을 국회에 ‘국립대학 법인의 설립,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제출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9월 29일 ‘자율선택에 따른 국립대학 법인화’라는 제목으로 공청회를 개최하려 했다. 이 공청회는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정책 강행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그런데 교육인적자원부는 개최 장소에서 공청회 개최에 항의한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 공청회다운 공청회 개최를 약속하기는커녕 공무 집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정경 투입을 요청, 이들을 전원 연행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런 만행은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정책을 이제는 어떤 반발이 있을지라도 강력히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왜 우리는 국립대 법인화에 반대하는가?

정부의 국립대 법인화 정책은 대학 자율성의 제고, 대학 경쟁력과 대학운영의 효율성의 강화 등을 명분으로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학재정을 ‘독립채산제’로 전환시키고, 국립대들도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자율적 경쟁체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완결시키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국립대 법인화 정책을 단호히 반대하며,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지금이라도 당장 철회하고 대학개혁 방향을 발본적으로 쇄신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나아가 정부가 이런 우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립대 법인화 정책을 계속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신자유주의 대학개혁에 반대하는 모든 학내외 사람들과 함께 그 철회를 위한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다. 우리가 국립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대학 중 국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도 안 될 정도로 사립대학 비중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고,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경우 대학재정 중 정부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78%인 데에 비해 지난 해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 재정 약 20조원 가운데 정부 지원이 23%에 불과할 정도로 정부는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는 것은 대학운영의 자율성 부여를 명분으로 대학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그나마 떠맡아왔던 정부의 공공적 책무조차 방기하는 일이다.

둘째, 국립대 법인화는, 법인화 이후 일본에서 대학등록금이 2~3년 사이 약 5배 인상된 사례가 보여주다시피, 국립대학 등록금을 대폭 인상시킬 것이고, 이는 다시 사립대학 등록금의 더 한 층의 인상을 부추길 것이다. 이런 과정은 수업료 지불능력이 있는 상위 계층과 지불능력이 없는 하위계층 간에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확대-심화시키고, 권력과 부의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가난한 다수에게도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사회통합을 위한 최소조건이다. 또 국립대 법인화는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에 진출한 후 교육비용을 많이 들인 만큼 그 보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당연시 여기도록 만듦으로써 이들의 사회활동이 공익 추구가 아니라 사익의 극대화를 위한 것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불균등한 교육기회의 수혜자들이 사익 추구의 극대화를 위해 활동하면 할수록 가난한 대중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공동체의 분열 역시 한층 더 촉진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재정 확충을 위한 대학 간의 돈벌이 경쟁을 촉진시켜 대학운영의 기업화를 재촉하지 않을 수 없다. 수익사업이 대학재정 확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대학 간 돈벌이 경쟁이 치열해지지 않을 수 없고, 그 결과 대학의 연구-교육 수행 능력마저도 돈벌이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것만 강조할 공산이 크다. 이런 식의 경쟁은 대학의 학문-교육체제를 대학재정 확충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심으로 재편하도록 강제할 것이며, 국립대학에서도 기초학문-기초과학이 갈수록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초학문-기초과학과 실용학문-용용과학 간의 공생과 균형적 발전만이 학문 발전만이 아니라 사회 발전에도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전체 대학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이미 개성화, 특성화 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실용학문-응용학문 중심으로 재편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국립대학의 연구-교육마저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심으로 재편된다면, 기초학문-기초과학은 국립대학에서도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며, 이는 다시 한국 대학의 연구-교육체제를 실용학문-응용과학만이 비대해진 매우 기형적인 체제로 만들고 말 것이다. 또 이런 과정은 대학교육이 인문적-사회과학적 상상력을 지닌 비판적 지성을 양성하는 역할을 더 이상 떠맡지 못하고, 기능적-실용적 지식인들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상황은 이공계의 경우 더욱 심각해진다. 과학기술은 크게 보아 ‘개별기업의 수익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특수적 과학기술’과, ‘개별기업 모두의 발전에 기여하는 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범용적 과학기술’로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경제 발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전자의 발전만이 아니라 후자의 발전 역시 중요해진다. 그런데 전자의 연구는 기업 자체에 의해서나, 아니면 이른바 ‘산학협동’ 등을 통해 확보될 수 있지만, 후자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정부 투자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 그러나 국립대학 법인화는 대학으로 하여금 ‘산학협동’, 연구 성과의 특허, 벤처기업의 운용 등을 통해 개별기업이나 대학 차제의 수익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응용과학기술 분야의 연구만을 중시하도록 만들고, 개별기업 모두의 발전에 기여하는 범용적 기초과학기술의 연구는 등한시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처럼 국립대 법인화는 국립대학마저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심으로, 거기서 더 나아가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에서도 개별기업이나 대학 차제의 수익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분야의 연구만을 중시하도록 만듦으로써 국립대학의 연구-교육체제를 결정적으로 왜곡할 것이다. 최근 민간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최우량 신용등급인 AAA를 받아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일본 도쿄(東京)대가 술을 만들어 파는 정도로 수익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대학, 특히 국립대학은 기업과 달라야 한다. 그 신용등급을 기업이 받았다면 그 기업이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임을 알리는 지표가 될 수 있지만, 그 등급을 일본 최고 국립대학인 도쿄대학이 받았다는 것은 도쿄대학이 얼마만큼 원래 자신이 맡아야 역할에서 벗어나는 연구 등에 골몰하고 있는가를 알리는 지표일 따름이다.

넷째,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 간 격차와 서열화를 한층 더 촉진시키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체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 간에, 서울 소재의 일류대학들과 다른 대학들 간의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고, 이것이 다시 대학서열화 및 다수 대학에서의 교육 붕괴 과정을 한층 더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국립대학 법인화는 월등한 인적-물적 자원을 지닌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들 간의 격차 및 소수 일류 대학과 다른 대학들 간의 격차를 한층 더 확대시키고, 대학서열화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게다가 법인화가 이루어질 경우 정부는 대학에 대한 예산 지원을 매년 조금씩 줄이는 동시에 6년마다 경영을 평가해 예산을 차등 지원한다고 한다. 정부의 대학 지원예산의 축소와 차등 지원은 ‘지방대학 고사(枯死)’가 빈말이 아닐 정도로 대학 간 격차와 대학 서열화를 결정적으로 촉진시키는 기제가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인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도 한층 더 심화시킬 것이다.

다섯째, 국립대학 법인화를 추진하면서 정부는 법인화가 대학 자율성의 증대를 가져온다는 점을 법인화 추진의 주요 명분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과거 군부독재 시절 대학구성원들이 대학 자율성을 요구한 것은 대학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권위주의적-관료주의적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오늘날 대학에서 나오는 자율성 요구의 목소리는 대체로 공익 보장을 위한 민주적-사회적 통제조차 대학 자율성에 대한 침해라는 대학의 이기주의적 목소리이다. ‘대학입시안 마련을 정부가 간섭하지 말고 대학에게 맡기라’는 목소리나, 개정된 사학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정부가 “대학들이 이전에는 그토록 대학 자율성 보장을 주장해 놓고서도 법인화를 통해 대학에게 자율성을 주겠다는 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전혀 옳게 반영하지 못하는 주장이다. 대학 자율성 보장의 목소리가 오늘날에는 사학재단이 가장 크게 주장하고 있는 목소리임을, 사학재단의 목소리가 대학구성원의 진정한 요구를 대변하는 것과는 동 떨어지는 주장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정부 측의 그런 주장은 서울대 입시안이 고교교육 정상화를 헤친다는 이유로 입시안 재검토를 서울대에게 요구한 적이 있고, 사학법 개정을 통해 사학재단에 의한 대학의 자율적 운영을 규제하려 하는 것이 현재의 정부정책이라는 사실에도 반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간의 민주화의 덕분으로 많이 약화되긴 했으되 그래도 강고하게 남아 있는 권력의 부당한 권위주의적-관료주의적 통제는 없어져야 하지만, 공익 보장을 위한 대학 운영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는 대학이기주의가 극심해지고, 사학재단의 전횡이 큰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오늘날 사립대학의 경우 이사회가 대학운영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대학민주화를 방해하는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학 자율성이란 어디까지나 공익이 보장되고 대학민주주의를 확대시키는 가운데 추구되어야 할 가치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런데 국립대 법인화는 국가의 재정적 통제 수단에 의한 대학통제를 강화하면서 대학 외 인사들도 참여하는 이사회에게 대학경영의 책임을 맡겨 대학을 시장경쟁 논리에 따라 운영토록 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국립대 법인화는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이사회를 통한 간접 통제체제’로 바꾸면서 재정 수단을 통한 대학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통제체제의 수립은 동시에 공공성을 훼손시키는 대학운영의 시장화를 촉진하고, 대학 내부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섯째, 대학법인화는 이른바 ‘비공무원형의 탄력적 인사제도’의 도입을 가져와 경비절감을 위한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를 대학사회에 정착시킬 것이다. 이러한 상시적 구조조정체제 하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사립대학에서 나타나다시피, 이런 저런 형태의 비정규직 교수들이 양산되고, 정리해고와 정규직 직원의 비정규직화 등을 촉진시켜 고용불안정이 증대하고 노동 강도가 강화될 것이며, 대학당국과 교직원 간의 민주적인 협력적 동반자 관계 형성에 기초한 대학 발전이 불가능해 질 것이다.

정부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대학정책의 기본방향은 무엇인가?

국립대 법인화 정책은 공공재여야 할 학문과 교육의 전당인 대학을 기업화하고, 기업화된 대학들 간에 약육강식의 경쟁관계를 도입시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동시에 승자에게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집중해 승자를 더 승자로 만드는 정책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국립대 법인화 정책은 이사회라는 비민주적 기구로의 권한 이임을 대학 자율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하는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대공세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에 대한 정부지원의 축소를 목표로 하는 것인 만큼 경쟁의 승자에 대한 정부의 인센티브 제공이 대학의 재정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란 큰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사회가 시장경제체제에 기반을 둔 사회이긴 하지만, 사회적 관계 전체를 시장적 관계로 재편하거나 시장적 관계에 종속시키게 되면, 사회의 파괴와 황폐화가 초래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다시 파괴되고 황폐화된 사회의 자기 회복을 위한 운동, ‘시장에 대한 사회의 복수’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시장적 관계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해서도 시장화․상품화의 파괴적 효과를 상쇄하는 비시장 영역의 창출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데, 바로 그런 비시장적 영역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가 바로 학문과 교육이다. 이와는 달리, 국립대 법인화는 비시장 영역이어야 할 학문과 교육의 상품화와 대학의 시장화를 전면적으로 관철시키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원하는 대학만 법인화를 하면 되는데 왜 일부 대학교수들이 법인화 법안 상정 자체까지 반대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유인하려 하는 정책을 강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정부가 그런 유인 정책을 포기하고, 그와는 전혀 다른 유인 정책을 강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공립대학 구성원들 일부를 빼놓고 다 찬성이고, 매스컴도 사립대학도 찬성하는 만큼, (법인화를) 당연히 해야 한다”는 곽창신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추진단장의 발언에서는 강도 높은 유인전략을 구사해 국립대 법인화를 기필코 관철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묻어난다. 그러나 이미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대학정책을 발본적으로 쇄신해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높이고 대학과 학문의 균형적 발전에 적극 기여하는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대학정책의 기본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첫째, 일차적으로 정부는 대학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증대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확장된 재정은 무엇보다도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고, 교수노조를 비롯한 여러 교수단체들이 요구하고 있는 ‘등록금후불제’를 도입해 대학을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대학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또 정부는 지나치게 높은 사립대학의 비중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 오늘날 사립대학이 자기 생존을 위해서도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는 반면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투자에 의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 때문에 사립대학과 국립대학 간에 공존-공생 및 협력적 분업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국립대학이 응용학문-실용학문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는 오늘의 추세에 급제동을 걸고 국립대를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 중심대학으로 확고하게 재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와 관련, ‘산학협동’, 벤처기업 활동 등은 원칙적으로 사립대학이 담당하도록 만드는 한편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국립대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장해야 할 것이다.

셋째, 정부는 국립대들 간의 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립대학들 간의 협동연구와, 교수 및 학생들의 교류 등을 확대시켜 궁극적으로 국립대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구-교육 단위로 통합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넷째, 현재 그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법률전문대학원 등은 조건을 갖춘 개별 대학들에 설립해서는 안 된다. 개별 대학에 설립할 경우 대학서열화를 크게 촉진시킬 그런 대학원들은 국공립 대학원으로 설립하되 특정 대학 소속이 아니라 권역별로 설립하고 그 권역에 속하는 모든 대학들에게 개방하는 독립된 대학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 구성원들, 특히 서울대 교수들께 호소한다

교육의 공공성 확보와, 학문과 대학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것 외에도 다른 방책들이 다각적으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국립대 법인화 추진에 있어 관건적인 중요성을 지닌 것은 과연 서울대 법인화가 이뤄질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서울대가 국립대학들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춰 볼 때 서울대 법인화가 성공하는 것만으로도 국립대 법인화는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들, 특히 서울대 교수들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아래와 같이 호소하고자 한다.

서울대가 여러 국립대학 중의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 서울대 발전의 장애물이며, 서울대 자체가 지닌 인적-지적인 현실적-잠재적 능력 등에 비춰볼 때 법인화를 통해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면 서울대의 재정도 지금보다 훨씬 풍족해지고, 이에 기반으로 해 서울대가 세계 초일류대학의 하나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교수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은 특히 서울대 이공계 교수들에게 광범위하게 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법인화가 서울대의 재정 확충에 얼마만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정확하게 답변하기가 어렵다. 다만 법인화될 경우 서울대가 다른 대학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위에 서게 될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현재 최우량 신용등급인 AAA를 받은 도쿄대학 수준으로 서울대가 발전할 가능성도 처음부터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체의 합리성이 전체의 합리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대의 그런 발전이 한국의 학문 전체와 한국사회의 바람직한 발전과 직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는커녕 서울대의 그런 발전은 불가피하게 서울대 자체와 한국 학문 전체의 왜곡된 발전 및 타 대학들과 사회의 일반이익의 희생 위에 이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인화할 경우 서울대 재정은 무엇보다도 등록금의 인상, 산학협동, 기업으로부터 수주를 받거나 지원을 받는 연구프로젝트의 수행 등을 통해 확보될 것이다. 이 경우 서울대는 한층 더 실용학문-응용과학 중심 대학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서울대에서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은 실용학문-응용과학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기생해서 존속해야 하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런 사태가 왜 학문 전체의 발전을 왜곡하고, 국립대학이 맡아야 할 역할을 방기하도록 만드는가를, 또 그것이 왜 한국사회 전체의 발전에 해악을 끼치는가를 우리는 앞에서 충분히 지적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울대 구성원들께, 특히 서울대 교수들께 간절히 호소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발전이 타인과 사회 전체의 발전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서울대의 진로를 모색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법인화가 현재보다 서울대의 재정 확충 등에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돈벌이에의 유혹’과 서울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가 서울대 구성원, 특히 서울대 교수들께 거는 기대는 단지 서울대 법인화를 저지해 달라는 수준을 넘어선다. 우리가 보기에, 서울대의 가장 바람직한 발전 방향은 서울대가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의 명실상부한 전국적 연구-교육센터로, 전국의 모든 국립대학들과의 협력을 증진시키는 가운데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 연구를 선도하는 대학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예를 들어 BK21 사업과 같은 국가가 지원하는 연구프로젝트는 물론 ‘산학협동’ 사업 등도 가능한 한 많이 끌어 모으려고 발부등치는, 현재 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무철학의 사업추진 방식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산학협동’과 기업으로부터 수주를 받거나 기업이 지원하는 프로젝트 등을 사립대학에게 넘겨주는 대신 정부에게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투자를 대폭적으로 증대할 것을 요구하는, 자기혁신적인 새로운 내용의 서울대 발전 프로젝트를 제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자신에게도 독약이 될 협소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서울대가 한국 학문 전체와 한국 사회 전체의 발전에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서울대의 발전 진로를 모색할 이성적 판별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들과 서울대 교수들이 우리의 이런 신뢰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우리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고 서울대가 정부 지원을 최대한 끌어내는 선상에서 법인화의 길을 선택한다면, 그 선택이 전사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서울대가 택할 수 있는 여러 선택 중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사립대학에 당부한다

우리는 국립대 법인화를 사립대학들이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립대학이 국립대 법인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사립대학에 대한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현재와 같은 상태가 대학들 간의 공정 경쟁을 해치고 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립대학의 그런 생각은 단견이다. 이는 마치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져 있는 조건 속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립대학은 오히려 정부에게 국립대를 국립대답게 키울 것을,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국립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보다 더 많은 수업료를 내고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는 상태를 시정해 줄 것 등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사립대학은 무엇보다 재단 전입금이 아니라 학생등록금에 압도적으로 의존하는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늘어날수록 사립대학의 사회적 책임 역시 커진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기로에 서 있다

국립대 법인화가 추진된다면, 대학의 공공성 확보와, 대학과 학문의 균형적 발전 등이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가운데에서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늘의 상태는 더 이상 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 점에서 국립대 법인화는 한국의 대학들을 모두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 너머로 건너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된다면 대학의 공공성 확보 등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은 혁명적 방법의 동원 이외에는 없다. 우리 사회의 그간의 신자유주의 개편으로 인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가난한 대중의 불만과 저항은 날로 커지고 높아지고 있다. 국립대 법인화와 대학체제의 전면적인 경쟁체제로의 개편은 신자유주의 개편으로 이미 고통을 받고 있는 가난한 대중에게 다시 한번 비수를 꽂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한국의 대학이 가난한 대중을 따뜻하게 끌어않지 못할지언정 이들의 분노의 표적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국립대 법인화의 저지는 그렇게 되는 것을 막는 첫 걸음으로서도 중대한 사회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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