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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 전돌과의 비교
中·日 전돌과의 비교
  • 김성구 국립경주박물관장
  • 승인 2006.10.15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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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화려한 장식성… 日, 부드러움과 吉祥性

연화문전은 唐의 문양 전돌로 낙양의 수당궁전지에서 출토하였다. 각 변의 지름이 37cm와 36.6cm 가량인 네모난 전돌로, 표면에 연화문이 중심 주제로 배치되고 있다.

백제의 산수문전과 견주어볼 때, 중국에서 비슷한 용도와 주제의 공예품은 드문 편이다. 그러나 산수문전은 중국의 미술품 가운데 용도나 제작시기와 상관없이 畵像石과 畵像塼을 포함한 여러 문양전의 주제나 의장과 비교될 수 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성행한 화상석묘의 화상석과 화상전묘의 화상전 및 후대의 문양전을 통하여 백제산수문전의 장식성과 유사한 의장을 살필 수 있다. 화상석은 대표적인 漢代 미술인데 그 다양한 주제가 건축·공예·회화 등에 응용돼 고분벽화와 문양전 등의 다양한 장식미술로 발달하게 됐다. 외리유적에서 출토한 여러 문양전은 한 대 이후 남북조까지 성행한 중국의 전통적인 상징체계와 초당양식의 국제성이 가미된 백제특유의 복합된 장식미술의 한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연화문전은 唐의 문양 전돌로 낙양의 수당궁전지에서 출토하였다. 각 변의 지름이 37cm와 36.6cm 가량인 네모난 전돌로, 표면에 연화문이 중심 주제로 배치되고 있다. 전돌의 중심부에 배치된 연화문은 圓圈으로 내외측이 구분되어, 각각 8엽의 단판연화문과 복판연화문이 장식되고 있다. 내측의 연화문은 능선이 장식된 채 그 끝이 약간 반전되고 있는데, 자방에는 1+8顆의 蓮子를 놓고 있으며, 외측의 연화문은 瓣形複子葉이 새겨진 복판양식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연화문의 외곽에는 커다란 圓圈을 두고 네 모서리에 인동당초문이 새겨져 화려한 의장을 보이고 있는데 주연부에도 구슬무늬가 밀집되고 있다.

이와 같은 연화문전은 초당양식의 화려한 장식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이 외에도 보상화당초문이나 포도당초문이 배치된 문양전이 기와와 함께 다양하게 제작되어 당의 수준 높은 공예수준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당의 연화문전은 외리유적에서 출토한 백제의 연화문전과 관련되어 백제문화의 국제성을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백제의 산수문전과 비교할 수 있는 일본의 공예품은 거의 없는 편이다. 불교가 백제에서 전래되어 사원이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하는 아스카 초기인 7세기 전반은 일본문화가 전반적으로 크나큰 변화를 겪게 되는 시기다. 일본은 6세기 경부터 대륙의 성숙된 문화와 제도를 받아 들여 아스카를 중심으로 고대국가를 형성하게 되는데, 불교문화가 중심이 되어 일본문화가 전반적으로 크게 발전하게 된다.

일본의 문양전은 비조시대의 연화문전과 백봉시대에 제작된 塼佛, 그리고 岡寺와 南法華寺에서 출토한 天人塼과 봉황문전이 있다. 연화문전은 장방형으로 백제계통의 연화문 2개를 좌우에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7세기후반인 백봉시대에는 불상을 압출하여 제작한 전불이 유행하였는데, 사원의 벽면이나 탑에 부착한 특수한 모습의 전돌류이다.

남법화사에서 출토한 봉황문전은 네모난 전돌에 봉황새 한 마리를 크게 부조시키고 있는데 천인전과 함께 목제틀을 사용하여 제작했다. 봉황은 두 날개를 펼친 비상의 모습인데, 하단에 상서로운 구름이 새겨져 부드러움과 길상성을 잘 나타낸다. 이와 같이 일본의 전불과 전돌에 새겨진 의장이 백제의 산수문전이나 함께 출토한 다른 문양전과 비교해 차이가 있으나, 주제의 상징성이나 장식의장은 서로 유사하여 당시의 문화적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 김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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