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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민주주의 위기론과 경제주의 망딸리떼
[문화비평] 민주주의 위기론과 경제주의 망딸리떼
  • 김학이 동아대
  • 승인 2006.10.15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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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이/동아대·독일사

민주주의가 위기란다. 위기론은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다. 국회, 정당, 언론, 학술지, 토론회, 강의실, 그리고 술집에서도. 위기론은 상상만이 아니다. 위기의 징후는 실제로 역력하다. 민주화 운동의 적자임을 자처하는 정치세력의 지지도는 바닥을 모르는 듯 추락하고 있고, 노동조합의 대의는 대중적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으며, 시민운동 역시 신뢰를 잃고 있다. 태국에서 쿠데타가 터졌을 때, 어느 보수 신문의 인터넷 토론마당은 ‘한국에서도 쿠데타가 일어나야 한다’는 주장으로 도배되었다. 이 풍성한 위기론이야말로 한국의 형식 민주주의가 얼마나 탄탄한지를 역설적으로 반증해주는 것이지만, 민주의 길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 징후들은 암담함을 안겨준다. 그런데 정작 위기론자들이 위기의 원인, 혹은 소위 민주·개혁 세력의 문제점을 논하는 장면에 이르면 기묘한 발상이 목격된다. 대부분의 위기론자들이 빼놓지 않는 문제점은 민주 세력의 ‘무능력’이다. 그 무능력의 다양한 양상이 제시되지만, 결국은 민주 세력의 경제 실적이 도마 위에 오른다. 그것을 성토하는 아우성이 어찌나 큰지, 도대체 민주주의라는 경제정책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우리는 물론 민주주의가 경제성장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는 일반적이다. 왜 이럴까? 이는 민주주의를 경제성장과 하나로 묶는 것이 우리의 의식·무의식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흡착되어 있는 탓이 아닐까? 예컨대 지난 대선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당의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서 외친 제 일성은,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였다. 그러고 보면 1970년대부터 자유주의 야당 지도자는 한결같이 ‘올바른’ 경제성장을 입에 달고 다녔고, 19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는 온통 경제주의였다. 마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경제정책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물론 그 당시, 자유와 계급의 차원은 절실했다. 그러나 그 가치들이 경제성장과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는 한 양자는 어느덧 교환 가능한 듯이 여겨지고, 특정한 계기가 닥치면 경제성장이 그 가치들을 흡수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는 자유가 달성되고 계급론이 국제적 지평에서 설득력을 상실하자,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뉴라이트로 경도된 것에서 입증되는 듯이 보인다.

 최근 필자는, 박정희 시대를 전공하는 역사학자 황병주님의 논문을 읽으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 했다. 그 글이 필자가 체험했던 과거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10월유신 이후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자유주의 야당과 재야 운동에 맞서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그리고 그는 그 한국적 민주주의를 ‘생산적 민주주의’로 규정했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경제였던 것이고, 경제성장을 보장하는 한 독재는 폭력이 아니라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경제주의적 민주주의 담론은 이미 그곳에 그렇게 있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경제로 치환시키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황병주님의 가설에 따르면, 박정희는 가난의 기억도 만들어냈다. 쿠데타 직전 6년간의 연평균 국민소득 증가율이 5.5%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집권 이전의 시기를 경제적 무능력과 부패의 시대로 비난했다. 더 나아가서 그는 ‘반만년의 역사’를 ‘천년이 하루 같은 가난 속에서 지내온’ 세월로 규정했다. 그렇게 박정희 이전의 모든 시대는 무역사의 시공간으로 되었고, 역사는 그에 의해 전유되었다. 그가 5천년의 가난을 해결한 진정한 역사 그 자체로 된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증언한다. 구체적인 역사를 형이상학적 무역사로 치환시킴으로써 역사를 전유하는 것은 전체주의 독재의 단골 수법이다. 히틀러, 스탈린, 김일성 모두 마찬가지였다. 독재자는 그렇다 치고,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경제가 아니다. 프랑스혁명 이래 민주주의는 무엇보다도 공공성과 사회적 연대였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에게도 자기실현을 위한 기회를 보장해주자는 대의였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경제와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약자들의 자기실현이 경제적 창발성으로 표현되는 한에서 일 것이다. 양자 사이의 간극 혹은 지체를 사유하지 않은 채 민주주의를 경제와 직접 결합시킨다면, 그로써 우리 스스로가 민주주의 위기의 주범이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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