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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위 계승자라고?
대한제국 황위 계승자라고?
  • 홍순민 명지대
  • 승인 2006.10.12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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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홍순민 / 명지대·조선시대사

새 대한제국 황제가 즉위하였다고 한다. 대한제국 황실 후손들의 모임인 대한제국황족회에서 9월 29일 낮 서울 힐튼호텔에서 의친왕의 둘째 딸 이해원(李海瑗.88) 옹주를 제 30대 황위 계승자(女皇)로 추대하고 대관식을 거행했다고 도하 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그런데 기사들을 보면 황위 계승자로 추대한 것인지, 황제로 즉위한 것인지가 모호하다. 대관식을 했다고 하고 사진까지 실렸으니 황제, 곧 여성이니 여황(女皇)으로 즉위한 것 같기도 한데, 또 어느 인터뷰 기사를 보니 당사자께서는 "여황(女皇)이라니요?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최연장자로서 몰락한 황실을 일으켜 세우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손사래를 쳤다고 하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또 한편으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는 다른 사람을 후계자로 정해 놓은 바 있어서 이번 일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하였다고 하니 황실이나 전주이씨 문중의 합의에 따른 일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행사가 전주이씨 문중이나 또는 황실 직계 가문에서 영친왕의 아들인 이구씨의 사망으로 비게 된 황실의 대표자를 선정하는 것이라면 굳이 우리가 나서서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다. 그 집안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대한제국 황위의  승계를 표방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대한제국은 일개 가문이 아니라 국가요, 현재 대한민국에 속해 있는 우리 모두,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북한까지 포함한 민족에 관계되는 일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짚어 볼 것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대한제국은 1897년부터 1907년까지 고종황제 재위 기간인 광무(光武) 연간과 1907년부터 1910년 국망까지 순종황제 재위기간인 융희(隆熙) 연간 합하여 13년 존손했던 왕조이다.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합되어 그 일부가 됨으로써 사라졌고, 고종은 덕수궁 전하 이태왕(李太王), 순종은 창덕궁 전하 이왕(李王)이 되어 황제가 아닌 일본 황실의 일원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순종의 후계자 영친왕(英親王)은 일본에서 인질에 가깝게 지내면서 일본 황족인 이방자 여사와 혼인하였고, 해방 뒤에 귀국하였으나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그 아들 이구씨도 후사 없이 일본의 어느 호텔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대한제국과 황실의 이러한 종말은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어찌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1919년 고종 임금이 돌아가시기까지 당시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국권을 회복하는 것, 나라를 되찾는 것은 고종 임금을 다시 황제로 모시는 일, 복벽(復?)을 뜻하였다. 그러나 고종 승하 직후 세워진 상해 임시정부는 공화정을 표방하였고, 그 때부터 황제와 제국은 실제로뿐만 아니라 당대인들의 인식 속에서도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까지만 그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한제국이 우리 역사의 소중한 한 부분임에는 틀림없으나, 법적으로는 계승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우리는 국권을 제국주의 일본에 강탈당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왕정을 정리하지 못하였다. 혁명으로 통하여 황제와 황실의 피를 뿌리며 왕정 또는 황제정을 부정하고 공화정으로 가든, 황제를 상징적으로는 모셔두어 정신적인 구심점으로 삼으면서 실질적인 권력은 수상이 행사하는 입헌군주제로 가든 우리 손으로 정리할 기회를 잃었다. 그 결과 오늘날 왕이나 황제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절대 권력의 소유자로서 무조건적인 복종의 대상으로 보는 신민(臣民) 의식과, 어리석고 무능하여 국권을 잃어버린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보는 냉소적인 부정 의식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한제국을 하나의 시기로 설정하여 그 역사적 실상과 의미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구한말’이라고 부르며 정확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이며 패배주의적 시각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반성과 천착이다. 이미 망해버린 제국에 대한 회복 운동이나 승계자 다툼에서 지금 우리가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회의를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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