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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좌절된 송두율 교수의 귀국
또다시 좌절된 송두율 교수의 귀국
  • 교수신문
  • 승인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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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6 11:41:12

김세균 / 서울대·정치학과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조국방문이 또다시 좌절됐다. 보도에 의하면, ‘통일맞이 늦봄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가 송두율 교수를 제5회 늦봄통일상의 수상자로 선정하고 그의 귀국을 추진했는데, 국정원이 애초에는 간단한 경위조사만을 하겠다고 약속하고서도 나중에 다시 ‘준법서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바람에 송교수가 지난 3일 비행기 출발을 5시간 남기고 서울행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준법서약서를 쓰기로 했다면 96년에 이미 썼을 것입니다. 그땐 부친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준법서약서라도 쓰고 정말 귀국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부친께서 ‘나 때문에 양심에 걸리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셔서 귀국을 하지 못했습니다. 준법서약서는 인간의 양심을 과거-현재-미래까지 한꺼번에 묶어두려는 비인간적인 제도입니다.”(‘한겨레신문’ 지난 7월 5일자) 33년만의 귀국에 마음 설레던 그가 귀국을 다시 포기하면서 토로한 심정의 일단이라고 한다.

학문적 양심바탕, 분단 현실 성찰
송두율 교수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67년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곧바로 독일로 유학 가 위르겐 하버마스(J.Habermas) 밑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주목할만한 논문들과 저서들을 출간해온 재독 한인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송두율교수는 모든 것을 ‘비판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전형적인 ‘비판적 지성인’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는 민주주의와 남북한의 진정한 화해에 기초한 통일을 위해 온몸으로 활동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비판적 성찰’이 그의 ‘학문적-이론적 양심’이라면, 민주주의와 남북한의 진정한 화해에 기초한 통일에의 기여는 그의 ‘실천적-정치적 양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입장에서 그는 특정인물이나 특정세력을 일방적으로 편듦이 없이 그간의 한국민주화과정을 성찰하고 그 과정에 실천적으로 개입해 왔고, 북한체제와 북한주장을 일방적-맹목적으로 지지함이 없이 북한을 ‘내재적’으로 이해하고 북한체제로부터 배워야 할 점과 북한주장의 합리적 핵심을 추출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은 두 개의 계기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계기는 70년대 초에 유신체제의 수립에 항의하여 조국민주화를 위한 해외한인단체를 조직하고 그 단체의 대표로서 활동한 것이고, 두 번째 계기는 그가 (북한의 주체사상 등에 대한 글을 발표한 것과 더불어) 90년대에 들어서서 북한을 몇차례 방문해 그곳에서 강연을 행하고 북한의 정치지도자와 학자들과 더불어 통일문제 등에 대해 논의한 것이다. 송두율교수는 해외에서 반독재민주화투쟁에 참여함으로써 군부정권 하에서 귀국을 포기해야만 했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여전히 ‘불순한 반체제인사’로서 낙인찍힌 것이다. 또한 남북한의 진정한 화해에 기초한 통일을 위한 활동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간 ‘해외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친북인사’ 내지 심지어는 ‘위장한 북한 고위간부당원’-황장엽의 표현을 빌린다면 ‘김철수라는 가명을 쓰는 당서열 23위의 북한 정치국후보위원’ -등으로 낙인찍혀야만 했고, 남북정상회담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그러한 인물로 낙인찍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민정부’ 하에서도 그가 반체제인사로 낙인찍힌 것은 냉전수구세력이 국가기구의 핵심부처를 장악하고, 집권세력이 인정하는 민주화운동 수준을 넘어서는 운동을 불온시하는 가운데 진척된 한국민주화과정의 미흡함과 불철저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한국민주화과정이 보다 온전한 형태로 진척될 수 있었다면, 민주화를 위한 그의 노력은 진작 정당하게 평가받았을 것이고, 그의 귀국은 늦어도 87년 6월 이후에는 이미 이뤄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지금도 여전히 ‘친북인사’ 등으로 낙인찍혀 자유롭게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냉전수구세력에 의해 정부당국이 허용하는 수준이상의 통일노력이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관계를 새로이 정립하려는 정부당국의 노력이 진실한 것이라면, 통일을 위한 그간의 송두율교수의 활동은 적어도 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인 현 시점부터는 남북한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통일의 초석을 놓은 선구적 행위로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통일위한 송교수 노력 정당히 평가해야
그러나 ‘인권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는 현 시점에도, 그 대통령이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높게 외치고 있는 현 시점에도 송두율교수는 여전히 귀국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에게 ‘준법서약서’를 쓸 것을 강요하는 것은 한국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그간의 그의 모든 노력이 사실은 범죄행위였음을 자인할 것을 송교수에게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학문적-정치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 국정원측의 요구를 거절하고 귀국을 포기했다. 그는 ‘양심을 우리에게 저당 맡겨라’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송두율교수는 이산가족이 상봉하게 되는 오는 8·15때 다시 귀국을 시도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민주화과정과 남북한관계개선의 진척이 냉전수구세력과 반북-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여전히 발목잡히고 있는 오늘의 한국현실 속에서 그의 귀국시도는 또다시 좌절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도 민주주의와 남북화해를 이야기하고, 양심의 자유에 대해 논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수치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외로운 싸움에 동참하고, 편향된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지형을 바꾸며, 남북화해시대에 걸맞는 법적-제도적 장치들을 만들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우리는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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