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7:05 (목)
[대학정론]비인문학적 인문학과 비과학적 과학
[대학정론]비인문학적 인문학과 비과학적 과학
  • 강신익 논설위원
  • 승인 2006.10.11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신익 논설위원, 인제대 의철학

고려대에서 시작된 인문학 선언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뒤 이어 인문인들의 ‘실천’을 촉구하는 민교협의 성명과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담은 전국인문대학장단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출판인들도 성명을 내어 21세기형 ‘경쟁력’의 원천인 인문학과 인문서적 회생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인문주간이 선포되고 각종 행사가 치러졌다. 정부는 인문학 진흥을 위한 종합보고서를 마련하고 있으며,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에 나열한 사건들 속에는 미묘한 입장 차이가 들어있음이 감지된다. 인문대학장단과 출판인의 성명에는 주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요구가 담겨있고 정부의 대책이 거기에 화답하는 형식인 반면, 민교협 성명에서는 인문인들의 주체적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언론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첫 번째는 위기상황을 인정하지만 그 극복의 필요성을 ‘경쟁력’으로서의 인문학에서 찾는 것이다. 이것은 성명을 주도한 인문학자들과 정부가 공유하는 입장이다. 그들은 인문학을 미래 한국의 문화‘자본’으로 본다. 투자를 하면 이익이 나온다는 자본주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는 인문학자들의 성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다. 그들은 그 선언 자체를 비인문학적인 것으로 보며 현재의 위기는 인문학의 위기가 아닌 몇몇 인문학자들의 위기일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위기상황은 정부의 지원이나 시장논리의 적용이 아닌 인문정신의 고양을 위한 실천운동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교협의 입장이 여기에 가깝다.

이 두 입장에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다. 인문학은 이미 인문콘텐츠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고 있지만 그것을 반대할 명분도 실리도 없다. 인문학이 시장과 담을 쌓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위기의 인문학이 새롭게 담아야할 내용과 대중과 만날 수 있는 형식에 대한 논의와 노력이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고 두 번째 입장은 이것을 꼬집은 것이다. 우리의 인문학은 시대와의 대화를 게을리 한 채 화석화된 지식 속에 안주했고 그 결과 사람의 삶을 질적으로 변환시켜 행복을 주는 인문학 본연의 임무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미 시대의 정신이 되어버린 과학기술과의 소통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가장 뼈아프다. 우리 학계에는 과학을 이해하는 인문학자나 과학적 성과를 인문학적으로 반성하는 과학자가 무척 드물다. 시대적 삶과 동떨어진 공허한 사유와 가치를 상실한 도구적 과학만이 난무한다. 줄기세포에 대한 환상의 이면에는 이공계 위기 담론이 있었고 반성되지 않은 환상의 결과가 논문조작이라는 가장 비과학적 행위이었음을 기억하자. 황우석 사태는 맹목적 이공계 위기담론과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과학의 결과다. 인문학 위기 담론이 장밋빛 전망과 파격적 지원이라는 비인문학적 해결책보다 철저한 인문학적 반성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