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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近東 지역 지식은 어떻게 버무려졌나
고대 近東 지역 지식은 어떻게 버무려졌나
  • 최장순 기자
  • 승인 2006.09.30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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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윌리엄 슈니더윈드|박정연 옮김|에코리브르|399쪽|2006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예언자들이 작성하고, 처음부터 한 권의 완성된 형태로 존재한걸까.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믿고 있는 이러한 소박한 믿음은 애당초 이 책의 관심 밖에 있다. 전승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다가 기록이 남겨지고, 그러한 파편화된 기록들이 正經(canon)화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 바로 저자의 목표다.

북서부 셈어와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구약 성서에 대한 문헌학적·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다음의 세 가지 쟁점에 접근한다: “성경은 언제 기록되었는가”, “왜 글로 기록되었는가”, “성경은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는가”.

“성경은 역사의 흐름을 반영하며,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면모를 드러낸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입장이기 때문인지, 이 책은 위 세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구약을 중심으로 유대민족의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질문에 다가가면서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이행되던 과도기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글이라는 매체의 보편화 과정을 살피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풍부한 역사적·문헌학적 지식을 엿볼 수도 있다.

애당초 글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었으며, 국력의 과시수단이자 행정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제한적이고 독점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인지, 글은 마술적 의식의 도구이기도 했다. 이후, 기원전 8세기 말 사회는 점차 도시화되면서 경제가 복잡해지고 정부도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고대 이스라엘의 구두전승은 모아져 글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1세기가 지나 글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자, 왕실과 제사장을 중심으로 사용되었던 문자문화의 逆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중 속으로 글이 확산되면서 글은 중앙집권적 국가 권력을 견제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 것이다. 가령, 권력자들은 솔로몬의 황금기를 글로 보존해 권력을 정당화해왔지만, 이후 ‘신명기’에서 솔로몬은 더 이상 위대한 왕이 아니었고 율법을 거역한 왕으로 등장한다는 것. 이처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견제의 수단으로 뒤바뀐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거룩한 글’, 즉 ‘성경’의 권위를 독점하려던 자들과 여전히 구두전승을 고집했던 자들과의 힘겨루기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성경 기록의 핵심 시기는 바로 기원전 7, 8세기 유다의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 시대였다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보인다. 이 책의 핵심적 주장들을 익히는 것보다도 오히려, 고대근동지방의 언어적,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지식들이 어떻게 버무려져서 이야기로 만들어지는지, 즉 “이 책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를 묻는 것이 더 나은 독법이 아닐까.

최장순 기자 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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