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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인문대학장단 성명서 전문
전국인문대학장단 성명서 전문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9.28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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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문학을 위한 우리의 제언

우리는 ‘인문주간’을 맞이하여 전국인문대학장단의 이름으로 인문학의 현실을 진단하고 인문학의 진흥과 활성화를 위해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이 제언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직면한 인문학의 위기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진정성을 황폐화시킬 수 있음을 자각하고 인문학의 의미를 되살려 우리의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고자 한다.

오늘날 세계는 경쟁과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배려와 윤리의식이 실종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의 삶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한 채 폭력적인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인종과 이념 및 종교의 갈등과 생태계 파괴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인문학 경시풍조와 맞물려 있다.

우리는 인문학계 내부의 상황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한다. 연구자들은 인문학이 요구하는 엄정한 자기 성찰적 태도와 적극적인 현실참여로 대안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채, 방어적인 인문학 위기담론 뒤로 몸을 숨겨온 경향이 있다. 아울러 현재의 상황에 대해 용기 있는 비판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제의 근원이 인문학적 정신과 가치들을 경시하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있음을 직시하면서 이런 상황을 주도해온 정부당국과 그 변화에 순응해온 대학에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상황이야말로 변신과 재도약을 이룩할 수 있는 기회임을 상기하고자 한다. 인문학은 늘 인간과 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을 추구해 왔고, 이것은 오늘의 인문학이 재확인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오늘날 매체환경의 발달로 우리 앞에는 미증유의 거대한 대륙, 사이버 공간이 펼쳐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그리고 우리의 후배세대들이 살게 될 21세기의 전경이다. 이런 변화된 조건 속에서 인문학이 어떤 새로운 밑그림을 그릴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의 인문학자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인간의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문학은 경제적 가치나 계량적 수치로만 평가될 수 없다. 인문학의 기초 환경을 제공하는 정부와 사회, 그리고 대학은 근시안적 시장논리에 매몰되지 말고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져야 하며,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조력이야말로 미래의 비젼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인문학의 현실을 진단하고 그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면서 인문학의 진흥을 위한 논의와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첫째, 대학은 소비자 욕구 또는 시장논리에 영합하지 말고 충실한 인문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실시해야 한다. 또한 인문학자들은 다른 학문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모색하고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재인식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인문학의 진흥을 위해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정부와 관계기관은 ‘인문학진흥기금’을 설치하고 그에 따른 법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셋째,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공공부문에서 인문학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기획하고 실천하기 위한 기구로서 교육부총리 산하에 가칭 ‘인문한국위원회’(Humanities Korea)를 설치할 것을 요구한다.

넷째, 국가의 주요 정책위원회에 인문학자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인문적 가치가 국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이상의 사항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주체로서 전국인문대학장단과 교육인적자원부, 그리고 학계와 관계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인문학발전추진위원회’를 즉각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 제언이 오늘의 인문학이 활성화될 수 있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자본과 테크놀로지가 질주하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편적인 기술이나 정보 위주의 지식이 아니다. 우리는 미래사회를 위해서 인문교육으로 다져진 인재를 키우는 것이 절박한 과제임을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

2006년 9월 26일
전국인문대학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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