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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된 역사, 그 길고도 텅빈 거리
재현된 역사, 그 길고도 텅빈 거리
  • 정진국 사진평론가
  • 승인 2006.09.23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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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평] 강홍구의 ‘드라마 세트’ 연작에 대하여

강홍구는 전국에 산재한 텔레비전 드라마 세트장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벽화처럼 기다란 초대형 이미지로 확대해서 보여준다. 크기만 다른 보통 사진들에 비해 커다랄 뿐, 막연한 어느 “가까운 옛날”의 거리 풍경이다. 그 거리에 한 사람씩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은 실제로 거기에 서 있던 사람이 아니다. 작가가 “몽타주”해서 붙여 넣은 인물이다. 그 무대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당이나 의원이나 가게의 간판에서 그 무대가 주로 일제말기나 해방공간의 어느 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 자리 수 전화번호와 격자형 유리창으로 짜인 미닫이문, 목재전봇대, 소위 적산가옥이라 불리던 변형된 일본식 주택 등이 근대화로 접어든 도시의 웬만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 삐딱하게 맞물린 가옥의 쇠시리와 담벼락 선들에서 그럴 듯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온전하게 전해진 것들이 아니라 가짜로 지은 것이라는 사실도 이내 알아차리게 된다. 물론 이런 가건물을 받쳐주는 이면의 골조를 그대로 드러내어, 이 곳이 바로 텔레비전 드라마 촬영장소였다는 것을 숨기려 하지 않기도 한다. 사진기의 원근 속으로 다시 들어온 무대는 드라마의 소란이나 관광객의 발길도 뜸한 채, 그 무대의 전경을 차지하는 텅 빈 도로 위로 우리 관객을 끌어들이려 한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멜로드라마 속에서 한바탕 역사를 쥐어짜면서 시청자의 가슴을 조이고 눈물을 쏟게 했던 주인공들이 떠나고 강렬한 햇살 속에 둔탁한 그림자를 떨구고 있는 그 무대의 고요함이 던지는 기묘한 울림에 귀가 멍해지고 눈을 비벼야 할지 모른다. 그 길 위에서 홀로 서 있는 인물은 세트가 재현한 당대의 인물이 아니라 그 복장으로 미루어 바로 요즘의 보통 아저씨나 아이 또는 여인이다. 이 사람들은 사진을 보는 관객을 대신하는 구경꾼으로 그 무대의 구석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장차 또다른 “드라마”의 촬영을 기다리고 있을 이 적막한 거리... 아니면 아예 “관광” 명소로서 명목을 이어갈지 모를 이 가공의 거리에 야비하게 떨어지는 빛과 그림자는 구경거리를 즐기려는 우리 욕망의 덧없음을 상기시키려 하는 것일까? 상당한 고증에 따라 재현되었다는 이 드라마를 위한 역사의 현장이나마 역사적 증거로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일까? 식민지 근대화와, 전쟁과, 쿠데타와, 개발과 재개발의 광기에서 거의 살아남은 것이 없는 근대 유년기의 자취를 드라마 세트에 기대어 회상함으로써, 우리의 집단적 기억과 자기정체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말일까?


실제로 벌어졌던 전투나 시위현장에서 소요된 자금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으면서, 바로 그 현장을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고, 보고 즐기는 우리의 기묘한 회상법이 급격히 만연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즐거움을 위해 역사에서 상투적 대목을 끌어내고 감상적 성격의 주인공들이나 엉뚱한 건달을 영웅으로 삼는 대중취향의 감성문화가 파렴치하게 역사의식에 호소하는 몸짓을 부리는 것도 치유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괴상하게 뒤틀린 감성문화를 지탱해주는 것은 바로 이미지요, 영상이요, 시청각 문화가 아니던가.


우리 사회가 역사의 진실에 무관심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적 진실에 대한 관심의 실마리를 선정적인 특종의 일간지 머릿기사나, 여기에서 보듯이 멜로드라마의 애틋한 감상주의로부터 끌어내려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일 것이다. 역사의 증거를 수집하는 자료를 보관하고 연구하는 데에 필수적인 공공기관이나 학술단체의 활동에 불가분한 예산 같은 것은 매우 미미하다. 그 전문가들을 키우고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역사적 발굴현장에 뛰어들려는 청년들도 예나 지금이나 극소수일 뿐이다. 수많은 신종 냄비들이 부글대는 지금, - 벤처와 신지식인과 문화상품권 등을 둘러싸고 줄줄이 이어지는 추문을 생각해보자 - 가마솥이 장터와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면 되레 이상할지 모른다.


한쪽에서는 그나마 얼마 남지도 않은 근대의 유산을 마구잡이로 헐어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에 못지 않게,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해서 신나게 그 모형을 지어댄다. 멜로드라마가 부추긴 이상한 “노스탈지아” 산업과 기념촬영을 위한 “명소” 관광은 경쟁적으로 대중감성의 열풍을 맞고 원기를 회복했다는 듯이, 그와 비슷한 열기에 고취된 문화재 복원의 또 다른 재건운동을 부추긴다. 비로소 이미지와 구경거리의 효과에 눈을 뜬 지자체들은 돌연히 각성한 선각자의 자부심으로 신속하게 관중몰이를 할 수 있고 번듯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이 가건물을 짓는 게임에 너도나도 뛰어든다. 예산 규모도 작고 -따라서 떡고물도 얼마 되지 않고 - 생색도 나지 않으며, 전시효과가 부족한 역사적 현장에 대한 발굴조사는 사가와 지식인들의 피곤하고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이요 간섭이자, 그다지 시급하지도 않을뿐더러, 절실하고 화급한 민심과 물정을 모르는 사안이 된다. “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얼마나 즐겁게 기념촬영을 하며, 추억을 새기는지를!”


반종교개혁이 불을 지르고, 절대왕정이 부채질한 바로크 미술을 통해서 화려하게 부활했던 가톨릭 교회처럼, 민중의 감수성을 사로잡는 일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의 위력에 호소할지어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 배경은 그냥 없애기엔 아까운 만큼 관광과 연계하여 지역의 수익도 올리고, 역사도 가르칠 새로운 계몽주의를 내세워 역사를 극화하자면, 백성의 가옥으로 될 일이겠는가... 왕궁을 복원하고, 거대한 절터 위에 새로운 가람을 올리자! 우리의 위대했던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자! 화려하고 찬란한 지역축제의 팡파레는 왕정시대의 장엄한 행렬과 과장된 어릿광대의 기예와 시대와 계급을 초월한 로맨스에 대한 예찬으로 이어진다. 


이런 역사의 복원과 재현을 위한 재건의 숨가쁜 망치소리에 파묻혀 버린 것이 연구에 전념하고 발굴의 현장에서 땅을 파고 증인들의 증언을 채록하는 고고학자와 사가와 인류학자들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 아닐까?
 
다소 냉소적인 시선으로 느껴질 만한 이 드라마 세트장의 이미지, 이 썰렁한 구경거리의 골격과 자취는 긴급하고 치열한 국제간의 이해관계로 얽힌 역사 문제에서 우리가 역사에 대해 접근하는 일정한 세태를 덤덤히 반영한다. 여기에는 관객의 발길을 작가의 발길에 포개어 주고, 그의 시선과 겹쳐지게 하고, 그와 나란히 서서 현장을 바라보고 관찰하게 해주는 사진의 미덕이 가세한다.


민중생활의 고단했던 골목과 거리는 깡패들이 주먹질을 일삼았거나 아무튼 승리를 거두는 여주인공을 내세운 애국주의와 민족주의가 한풀이를 하는 승부세계의 무대로 돌변하고, 쫓고 쫓기는 드라마의 숨바꼭질을 더 실감나게 해주기 위한 장치로서 주목된다. 민중은 또 거리로 쏟아져 나와 관객의 눈에 잘 띄는 방식으로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는 한 무리의 엑스트라로서 이 역사적 무대를 수놓는다. 이런 방식으로 거리가 재현되고 완성된다.

강홍구, ‘드라마 세트 6’, 디지털 사진 및 출력, 2003.


강홍구의 파노라마 사진은 보여주기 위해서 다시 짜 맞춘 역사의 무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미술에서는 원근법이 원래 극장의 무대장치를 묘사하는 데에 근거를 두고 시작했던 만큼, 선명하게 촬영된 이 사진의 원근적 전망은 어느 정도 고전적이며 엄격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사진 이미지 그 자체를 위해서는 말이다. 그러나 그 파노라마가 역사를 재현할 리는 만무하다. 그것은 역사를 소재로 삼아 공상을 펼치는 우리의 쾌감에 호소하는 무대였다. 그 쾌감을 채우고, 그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쉽사리, 그 역사를 부담 없이 망각으로 떠넘기기에 알맞은 무대였다. 그것은 기억을 다시 불러내지만 기억을 간직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망각의 편의를 도와주기도 한다. 거기에 펼쳐지는 것은 재현된 역사의 무상함이다. 이와 같은 무상함은 종종 그토록 쉽게 덧없는 이미지로서 잠시 빛을 발하지만 이야기의 긴 여운을 남기는 사진의 역설적인 어법 속에 깊이 녹아 있는 듯하다.

정진국(영남대학교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연구교수)

 

작가 강홍구(1956~)는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오쇠리 풍경’, ‘풍경과 놀다’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저서로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이야기 1·2’,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등을 펴냈다. 작가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여러 이미지를 합성하고 변형해 ‘현실인데도 도무지 현실 같지 않은 순간들’을 낯설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가 한 공간에 담기는 가짜이자 진짜인 풍경, 드라마 세트 연작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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