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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서평] 印度를 읽는 다섯 가지 코드
[테마서평] 印度를 읽는 다섯 가지 코드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09.23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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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소신화’에서 ‘히즈라’까지… “변화하는 인도”

 

인도는 19세기 막스 뮐러가 “항상 진리를 추구하는 나라”로 찬양했고, 식민지 조선이 ‘희망’과 ‘절망’으로 동질의식을 느꼈던 곳이며, 오늘날 우리에겐 동경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특히 1980년대 봇물을 이룬 인도관련 기행문과 철학서들은 ‘초월’과 ‘명상’의 나라로 인도를 부각시키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인도 사람도 밥을 먹고 돈을 벌며, 남의 것을 빼앗는 등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세속적 삶을 산다. 그렇기에 인도를 알고 싶다면, 편견에서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알고 싶은 인도’(백좌흠 외 지음, 한길사, 1997)는 전문가들이 “왜곡된 지식을 벗겨줄 수 있는” 입문서로 추천한다. 역사학자(이광수), 법학자(백좌흠), 사회과학자(김경학)가 각자 전공을 살려 정치, 경제, 문화적 맥락에서 인도인들의 화합과 반목을 드러냈다.

근대적 의미로서의 인도 연구는 유럽에서 시작됐고, 19세기 막스 뮐러가 “인도언어가 유럽언어와 계보가 같”고, “인도문화가 수동적, 명상적, 사색적이며, 그 본질은 항상 진리만을 추구한다”고 찬양했던 시각은 그대로 계승된다. 물론 공리주의자 밀이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인도를 비판했지만 그 역시 편향되고 단정적인 시각으로 헤겔·마르크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편향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들이 분석한 자료가 브라만 입장만을 대변하는 산스끄리뜨어로 된 것이었으며, 불교·자이나교 등의 폭넓은 자료를 섭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편견을 벗겨내기 위해 저자들은 주요 키워드로 인도를 재조명한다. 이재숙 박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카스트는 모르는 편이 나을 정도로 잘못 알려졌다”라고 말하는데, 이 책은 카스트, 에스닉, 힌두교로 인도를 다시 들여다본다.

가령, 일반인들은 카스트는 브라만(Brahman)-끄샤뜨리야(Kshatrya)-바이샤(Vaisya)-슈드라(Sudra), 불가촉천민으로 구분된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하지만 같은 슈드라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차이가 존재하는가. 뿐더러 정치·경제세력을 장악한 후에 신분적 상승은 빈번히 일어난다. 그렇기에 인도사회를 구분하려면 자띠(jati)들 간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자띠는 내혼관계로 형성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집단이다. 자띠관계를 통해 인도인이 먹고 사는 일상·의례생활을 이해하면서 카스트와의 상호작용을 봐야 인도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인도철학에서 유물론이나 쾌락주의를 주장한 짜르바까(Charvaka) 철학이나 로까야따(Lokayata) 철학도 중요한 줄기라는 것을, 인도는 비폭력 운동의 근거지가 아니라 아쇼까 왕조를 제외한 모든 왕조는 무력통치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내가 알고 싶은 인도’가 영국 식민지 통치시기부터 현재까지의 변화를 담고 있다면,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이옥순 지음, 푸른역사, 1999)는 19세기 말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관점도 다르다. 19세기 인도를 발견하고 그 심리적 고백을 얻어내기 위해 정신분석 이론을 동원했다. ‘동일시’, ‘역행’, ‘좌절감-공격성’, ‘전위’ 이론으로 인도인이 취한 심리적 행적의 동기를 추적했다. 그러면서 이 책은 영국이 기대한 인도 이미지와 그에 대응한 인도인에 의한 인도의 얼굴을 그려냈다.

저자는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이나, 영국을 거부하고 극복하려 했던 인도나 서로 ‘닮은 꼴’이라고 말한다. 19세기 강하고 남성다운 영국의 ‘힘’을 발견한 인도의 심리적 궤적은 오늘날 ‘핵’을 만드는 역사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인도는 약한 나라도, 정신적인 나라도 아니다. 1998년 5월 11일 작전명 ‘샥티(힘)’로 인도 핵실험이 성공했을 때, 전세계 국가 90%가 인도를 비난했지만 인도국민의 90% 는 정부의 ‘역사적 결단’을 지지했다. “드디어 우리는 강대국이 되었다!”며. 이 책은 식민주의에 대한 반대가 내셔널리즘을 태동시켰으며, 그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이야기로 펼쳐낸다. 

‘인도에 대하여’(이지수 지음, 통나무, 2002)는 한 권에 인도의 모든 것을 담았다. 지리, 역사, 언어, 가치관, 사회생활, 음악·무용·건축·조각 등의 예술, 과학과 의학, 종교, 인도의 철학사상, 현대인도사상, 현대인도의 신비가, 인도의 불교 등 다루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어느 하나를 콕 집어 특징을 말하긴 어렵지만 여느 개론서와 달리 “인도의 사상과 문화를 인문학자로서 깊이 있게 터치해준 것이 특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위의 세 책은 말 그대로 입문서다. 전문가들은 인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특정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 책을 볼 것을 권한다. 저명한 인류학자가 쓴 ‘인도 민족주의의 역사 만들기: 성스러운 암소신화’(D. N. 자 지음, 이광수 옮김, 푸른역사, 2004)가 그중 하나다. 이 책은 뒤틀린, 만들어진 인도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그 실천력을 치열한 고증으로 보여준다. 약간의 노력을 들인다면 논증의 힘과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지금 인도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암소신화’다. 암소가 聖物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최근 출간된 ‘암소와 겐지스강’(이광수 외 지음, 산지니, 2006)도 암소신화로 인도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1888년에는 서북부 주에서 암소가 성물이 아니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그후 암소도살은 ‘힌두-무슬림’ 간에 소요를 일으키는 대표적 원인이 됐다. 1839년 아장가르 군에서 발생한 소요에선 1백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이 책은 바로 힌두 근본주의에 의해 가장 성스런 동물로 숭배되는 암소의 ‘신성불가침’(inviolability) 신화를 벗겨내는 작업이다. 특히 암소신화가 정치적 중심 문제로 떠오른 건 1995년 반무슬림·반기독교성향의 힌두민족주의 정당인 인도국민당과 연합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인데, 이들은 역사교과서를 힌두적 색채로 다시 쓰는 복합문화습격행위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때 초기 인도에서 널리 시행되던 쇠고기 육식 관습에 대한 전거들은 모두 삭제됐다. 

“힌두공동체주의는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야요디야에서의 힌두-무슬림간의 충돌은 인도 최고의 비극이다. 암소 숭배는 그것과 궤를 같이 한다”고 고발하는 저자는 암소를 도살하고 먹는 습관이 공동체 정체성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지금도 힌두 브라만을 제외한 모든 신도들이 쇠고기를 먹고 있는데, 어처구니없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이 책이 무엇보다 신뢰가 가는 건 힌두교·불교·자이나교 경전 등 고대문헌의 자료들을 동원했다는 점에서다. 쇠고기 육식에 대해선 인도 最古의 문헌인 베다(Veda)와 그 부록문헌들을 참조했는데, B.C. 1500년~B.C. 600년 사이에 형성된 문헌에서 불교도들의 식사문화와 관련된 많은 정보를 골라내는 등, 非채식에 관한 풍부한 자료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자칫하다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한 사정이 있다. ‘소의 과도한 핏빛이 발견된다’며 출판이 취소됐고, 그는 심지어 사형선고까지 받았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영국의 Verso출판사로 망명해 빛을 볼 수 있었다.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히즈라’(세레나 난다 지음, 김경학 옮김, 한겨레신문사, 1998)는 인도의 특수 집단인 ‘히즈라’를 들여다본다. ‘히즈라’(hijras)란 ‘여장을 하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남성들로 구성된 종교적인 색채를 띤 공동체’를 말한다. 이들 문화는 인도에서 숭배되고 있는 母神의 한 변형인 ‘바후짜라 마따’(Bahuchara mata)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여신을 섬기기 위해 히즈라들은 생식기를 거세하는 수술을 받는다. 수술로 남근과 고환은 제거되지만 거기에 질(vagina)이 이식되진 않는다. 바로 이 같은 ‘없음’ 수술이 그들을 남성도 여성도 아닌 히즈라(거세된 남성)로 만든다. 히즈라는 자신을 모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여성의 창조력을 표현하고 이로써 인도사회에서 ‘제 3의 성역할’을 한다.

이들은 아이의 출생, 혼인의례, 사원축제 등에서 중요한 의례를 수행한다. 다른 한편 동성애 매춘도 주요 일상이다. 이 책의 미덕으로 네 명의 히즈라와 인터뷰한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매춘부로 명예를 실추시켰지만 히즈라 사회의 복합성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 까믈라 데비, 한 가정의 주부·어머니·할머니가 되어 인도 여성의 목표(?)를 성취한 수쉴라, 중간성으로 태어난 ‘진짜 히드라’ 살리마, 그리고 그녀가 겪은 공동체로부터의 추방된 사연과 의례수행자로서의 역할 등이 소개된다.

이 책은 히즈라라는 특정 집단을 조명하고 있지만, 이들의 사회구조는 인도사회 전체의 사회, 경제조직을 반영하고 있어 또 다른 인도세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히즈라들을 통해 우리는 인도의 하위문화를 창출하는 다양하고도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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