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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글 깊은생각<52> 골뱅이와 에이라미
짧은글 깊은생각<52> 골뱅이와 에이라미
  • 교수신문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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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10:53:25
이기성/ 계원조형예술대·출판디자인과

yikisung@yahoo.co.kr을 어떻게 읽는가? 보통은 ‘이기성 골뱅이 야후 쩜 시오 쩜 케이알’이나, ‘이기성 앳 야후 닷 시오 닷 케이알’로 읽는다. 그런데 ‘이기성 에이라미 야후 쩜 코 쩜 케알’이라 읽으면 어떨까. ⓐ는 에이에 동그라미를 했으니 에이라미라는 것이다. 숫자도 마찬가지. ①,②를 동그라미1, 동그라미2 라 읽지 않고 1라미, 2라미로 읽을 수 있다. www도 ‘더블류 더블류 더블류’보다는 ‘따따따’가 편하다.
그러나 외국어나 외래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는 혼란이 생긴다. 그리고 이런 혼란을 최소화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다양한 한글 폰트를 활용하는 것이다. ‘따따따’를 한글로 쓰고 보면 도통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주먹손 나팔은 ‘따따따’로, World Wide Web은 ‘따따따’로 구분하기로 약속하면 문제가 사라진다. 자기네 고유의 언어가 있는 민족이나 국가 중에도, 고유어 표기문자와 외래어 표기문자를 둘 다 갖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본에서는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적절히 사용하여 알파벳(외국어)과 순수 일본어 표기를 구별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만 한국어용 한글 폰트와 외래어용 한글 폰트를 구별해 적는다.
모 방송국에 ‘피자의 아침’이라는 프로가 있다. 이 프로를 보고 시청자의 항의가 많았다 하는데, 이유인즉 프로그램 내내 피자가 한번도 안 나왔다는 것. 방송국의 해명에 따르면, 여기서 ‘피자’는 먹는 피자가 아니라, ‘PD와 기자’의 약자란다. ‘P자’라 해야 할 것을 ‘피자’라 해서 말썽이 난 경우다. 외래어 표기용 한글폰트가 있었으면 여기서 ‘피자’가 외래어 ‘P’와 한국어 ‘자’라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알파벳이나 외래어 전용 폰트가 없다보니 표기의 일관성도 지키기 어렵다. 일간 신문도 마찬가지다. 분명 한국 신문인데 영문자가 섞여 있다. ‘아이엠에프’가 아니라 ‘IMF’라고 쓰고, 미국대통령은 ‘Clinton’이 아니라 ‘클린턴’이라고 쓴다. 이러한 혼란은 문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젠가 정보통신부 서기관이 나오고 출판, 영화, 만화, 게임, 교육, 인터넷 사업, 금융, 전자상거래, 저작권, 수출환경 등 각 분야의 전문가 2명씩이 의견을 발표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멀티미디어콘텐트에는 어떤 것이 들어가나요?” ‘멀티미디어콘텐츠’는 고속통신망에 올라가는 디지털데이터를 나타내는데 적합한 한글 단어가 없다 치자. 하지만, “오늘의 ‘아젠다’는?” “그 분야에 ‘인발브’된 것은?” “‘임플리멘테이션’된다” “오늘은 ‘해피’하네요.” 한국사람만 모인 자리인데 웬 영어 단어들이 나열된다. 전문가 의견이고 뭐고 우선 “한국말을 씁시다”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사실이나 사물, 그리고 주관적인 생각이나 판단을 표현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 표현의 기능을 완전히 만족시키려면 외래어나 외국어 역시 필요할 것이다. ‘나 운이 좋아’를 ‘나 lucky해’라고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다. 백번 양보해서 ‘럭키’가 상황에 꼭 맞는 표현이라 하자. 그럴 땐 최소한 ‘나 러키해’나 ‘나 lucky해’라고 쓰지 말고 ‘나 러키해’라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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