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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국제학술대회 ‘흔적/Traces/迹’
[학술대회] 국제학술대회 ‘흔적/Traces/迹’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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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10:15:38

(‘흔적’편집위원단·한국예술종합합교 영상원 주최)

지식은 언제나 권력의 자장속에서 그 浮沈이 파악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생산·유통 시스템을 거부하고 새로운 지식생산을 실천하려는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근대성의 충격’을 주제로 지난 23, 24일 이화여대에서 개최된 ‘흔적’ 서울 학술대회가 그것이다. 이 행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학술대회가 개최되는 방식과 학술지가 발간되는 구조를 되새겨야만 한다. 학술대회라면 마땅히 하나의 주제 아래 지식인들이 모여 그간 진행된 작업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가 될 것이며, 학술지라면 당연히 완성된 글들을 모은 책자일 것이다. 하지만 97년부터 지금까지 ‘흔적’ 편집위원단이 개최한 3회의 국제학술대회는 ‘흔적’이라는 다중언어 국제학술지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밑그림그리기 작업이었다.

“우리에게 근대란 무엇인가”

학술대회는 6개의 분과로 구분되어 분과의 경계를 넘어선 다양한 주제가 선을 보였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발표문 ‘모더니티의 충격과 잔상-그 공간적 변형의 궤적에 대한 단상’에 의하면, 우리의 근대성을 추적하는 작업은 20세기에 대한 정밀한 회상이며 이는 일종의 정신분석학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 심교수가 보기에 “서구의 근대성은 우리에게 시대적인 외상을 입혔으며 우리는 지금껏 그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채 소화불량의 상태로 지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근대란, 옛것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해방의 시대가 아니라 밀려드는 자본과 기술을 담아내기 위한 하나의 그릇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심교수의 분석대상은 1880년 이후 변화한 서울이라는 도시공간과 미술이다. 식민지와 미국식 근대화 이후 우리 전통의 풍수지리적 공간구성원리가 깡그리 파괴되고 자본유통의 속도에 발맞추는 “추상기계로서의 근대공간”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심교수의 분석이다. 그러한 근대공간에서 미술은 더더욱 뿌리내리지 못했다. 미술관이라는 문맥을 지니지 못한 채 부유하는 미술작품, 서구의 기법을 담아내었던 매개로서의 미술이 우리를 해방시킬 수 없었다는 사실은 해방이 아닌 기술적 근대화로 이입된 한국적 ‘근대성의 충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소화불량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보편이 아닌 개별, 그 ‘의도적인 迷夢’의 시기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심교수의 결론이다. 성급하게 근대에서 탈근대로 미끄러져 나갈 것이 아니라 “한국적 근대화/탈근대화의 다른 궤적”을 찾아내는 것이 당면한 현실임을 또다시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근대를 이야기하는 나오키 사카이 코넬대 교수는 ‘제국적 민족주의와 부정의 역사기술’ 발표문에서 ‘否定’이라는 개념의 유입으로 인해 일본 근대사가 왜곡되었음을 지적한다. 나오키 교수에 따르면 1920년대에서 194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 동아시아 근대성 논의의 중심주제는 바로 ‘부정’이었다. 이에나가 사부로와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 지성사 서술에서도 이 부정의 개념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헤겔적인 설명방식을 따르는 마루야마는 일본사가 자연에서 생성으로 변화하는데 ‘부정’이 개입했으며 그로 인해 역사적 발전을 이루어 냈다고 한다. 마루야마식의 선형적인 발전의 역사를 믿지 않았던 이에나가 역시 부정의 논리가 결여되어있을 때 국가와 개인의 역동성은 줄어들기 마련이라며 일본사에 부정의 개념이 중요한 설명의 틀이 됨을 밝혔다는 것이다. 나오키 교수에 따르면 부정의 개념은 이윽고 “일본의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고, 일본의 제국주의를 전근대에서 근대로 발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거쳐야했던 시기로 정당화하는데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이는 물론 기독교의 교리적 설명과도 유사한 구조를 지녔다는 것이 나오키 교수의 설명이다.

3·4회 수정작업 거쳐 학술지로

피터 오스본 영국 미들섹스대 교수의 ‘추상의 충격: 권태, 비장소들, 그리고 추상의 문화’와 알베르토 모레이라스 미국 듀크대 교수의 ‘그림자의 선-반제국의 형이상학’은 각각 근대의 철학적 의미와 폭압적 서구근대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한국편집위원단의 일원인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는 “기존의 국제학술대회가 서구중심이었으므로 ‘흔적’은 하나의 ‘지적실천’”이라 했다. 학술대회 이후 3, 4회의 수정작업을 거쳐 학술지로 발간되는 ‘흔적’ 고유의 지식생산 구조가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지적실천’이 오랜 기간동안의 성장과 성숙을 겪은 후 어떤 이론으로 활자화될지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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