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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의 쓸쓸한 추억, 그리고 기원
국정감사의 쓸쓸한 추억, 그리고 기원
  • 조동섭 경인교대
  • 승인 2006.09.16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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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국회의원들은 참 못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틈만 나면 쌈질이나 하고 패거리를 이루어 음모를 꾸미고 온갖 비리를 저질러 ‘구린’ 돈을 모은다. 그들 때문에 학교는 수업도 못하고 국정감사 자료를 챙겨야 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불려가 마치 죄인처럼 심한 호통을 들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통념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통념은 적어도 사실과는 관계가 멀었다. 친구인 한 국회의원 덕분에 나는 국회라는 곳을 가까이 들여다 볼 기회를 가졌다. 어느 날 친구는 나에게 국정감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을 소개해 주길 원했다. 그는 국정감사 일정이 아직도 먼 시간이었는데,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사무실은 학자나 연구자들이 쓴 논문과 보고서들로 가득했다. 그는 틈만 나면 그들을 읽고 내용을 요약하고 아이디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자문에 응하면서 나는 가끔씩 그가 전문 학자인 나보다 높은 지식과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특별히 실업계 학생들에 대한 놀라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희망과 그들의 삶이 좌절되는 현실을 괴로워했다. 정부의 대책들이 그 학생들에게 어떤 희망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무척 괴로워했다.

매번 그를 만나면서 들여다본 국회의원들의 삶은 그의 삶과 유사했다. 그래서 의원회관은 일요일도 성황이었다. 그가 그러는 것처럼, 그들도 수많은 보고서들을 읽고 정리하기에 바빴다. 늦은 밤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그들과 그 보좌진들은 국정감사 준비를 위해 일찌감치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고 있었고, 전문가 좌담회나 관계자 간담회 등을 통해 현상과 본질에 접근해 가고 있었다.

아마 이 관찰들도 어쩌면 사실 그 자체와는 관계가 멀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삶은 의미 있는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기 위해 틈이 없는 것처럼 그들 또한 그 의미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 틈이 없었다. 20일의 국정감사를 위해 그들은 200일 이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대상기관의 수만 해도 50개 기관이 넘었고, 그를 위해 업무 현황, 예산과 결산 내역, 주요 정책과 사업, 기타 제반 운영과 관련된 사항 등 수많은 것들을 검토해야 했다.

이제 본격적인 국정감사의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피상적인 보도들은 그들의 그러한 삶을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접하는 그들의 활동은 도대체 국회의원들이 ‘뭐하는 작자’들인가를 반문케 한다. 그래서 세비가 아깝고 염증을 느낀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곤 한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국정감사를 기대하고 있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많은 일들 중에는 정책적 재고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학제 개편, 평준화, 실업고, 사교육비, 방과 후 학교, 업무 경감, 학교 여건 개선, 학교 혁신 등 산적한 문제들이 많고, 대학과 관련해서도 입시개혁, 구조개혁, 개방화, BK사업, 누리사업 등 현안 문제들과 미결의 과제들이 많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정책들이 실제로 문제들을 해결하고 우리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지, 우리 대학들을 얼마나 대학답게 만들고 있는지, 정말 진지하게 검토하고 따져보아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 동안 보아본 국정감사에 대한 씁쓸한 기억 때문에 그 기대들이 포말처럼 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있고, ‘물건’과 ‘껀수’만을 찾는 ‘속빈 강정’ 같은 감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나는 그들 국회의원들을 기대하고 있다. 진정한 ‘정책 감사’를 통해 문제들을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던져주기를 진심으로 고대하고 있다. 우리 교육과 관련된 심각한 정책적 문제들, 그 과정 곳곳에서 일어나는 낭비와 비효율을 고칠 수 있고 올바른 길로 선회할 수 있도록 하는 큰 힘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그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동섭/ 경인교대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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