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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주목한다] 민족은 사라지지않는다』(송두율 지음, 한겨레신문사)
[이책을주목한다] 민족은 사라지지않는다』(송두율 지음, 한겨레신문사)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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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09:50:51

송두율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 책은 주목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송교수는 냉전적 시각이 여전히 횡행하는 우리에게 하나의 ‘뜨거운 상징’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송교수는 60년대 말 한국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지난 7월 ‘늦봄통일상’ 수상을 위해 귀국하려던 차에 ‘준법서약서’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하기까지 30년 이상을 독일지식인인 동시에 한국지식인으로 살아왔다. 그런 그가 자유로운 몸이었다면 오히려 ‘민족’이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도 자유로웠을지 모른다. 송교수의 이러한 개인사는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강고한 외침 이면의 연약한 아픔을 엿보게 한다.

애초에 이 책의 출간은 34년만인 저자의 귀국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서문에서 “머지않아 오랫동안 그리웠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들과 책을 통해서는 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고 했던 그의 귀국은 출발을 몇 시간 앞두고 무산되고 말았다. 따라서 이 책은 기념할 대상을 잃고 어색하게 세상에 선보인 셈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나라에 살고있는 우리에게 민족너머의 보편적인 가치란 때론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일 수 있는가. 그래서 더더욱 저자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 민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경제가 세계를 통합하는 ‘지구화’시대이다. 국제적인 정보망을 갖추고 잽싸게 한국과 미국, 북한과 일본을 오가는 재정자본이나 투기성 자본이 ‘지구촌’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이상 낯설지 않다. 돈의 깃발 아래 우리가 믿어왔던 고귀한 가치들은 모조리 통합, ‘상품가치’로 전환되고 있는 현실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모든 것들이 딱딱하게 변해버린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탈물질적인 삶의 의미’를 말할 수밖에 없음을 송교수는 주장한다.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만 남기는 ‘지구화’한 경제의 전횡에 부르디외와 센같은 사회학자와 경제학자가 ‘사회적 자본’, ‘인간적 자본’ 등의 다소 고전적인 이름표를 달고있는 인간적인 연대를 대항개념으로 내세우듯이 말이다. “인간의 내면에 놓여있는 존재의 무게에 대한 인식”이 ‘지구화’의 시대에 우리에게 한층 더 필요한 덕목임을, 제도가 재촉하는 탈민족국가 전략이 오히려 옛날로 회귀하려는 반동적인 힘을 부추겨 ‘민족국가 중심의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자극할 것임을 그는 믿는다.

‘지구화’의 사회학적 토대인 ‘세계사회’ 이론 역시 지역적이면서 지구적인 ‘이중의 긴장’을 설명해낼 수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민족은 퇴행적인 가치가 아니라 하나의 긍정적인 이데아인 것처럼 보인다. 민족과 민족주의의 역사적 유효성을 강조하는 그의 논리는 세계화담론이 부추기는 탈민족주의 전략을 우회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그의 논리는 ‘국경없는 세계화’, 곧 자본의 세계화라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석할수 있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극단의 길을 걸어온 남북간이 대화하고 통일하기를 열망하는 송두율교수. 그가 보기에 지구화(globalization)에 대한 두 역어는 남북의 차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남한의 ‘세계화’는 미국화의 물결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동참하는 ‘지구화’에 대한 긍정적 해석이고, 북한의 ‘일체화’는 반미의 기치를 접지 않는 국가로서는 거부하고 싶은 대세를 ‘지구화’라 보는 부정적 시선이다. 남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진정한 兩眼의 소유자 송교수에게 이 심연은 얼마나 깊은 절망이었을까. 그의 말대로 한민족을 사이에 두고 그어진 ‘휴전선’이 ‘국경’은 아닐텐데 말이다.

그러므로 송교수가 내내 주장하는 것은 ‘남과 북의 공존과 공생을 보장하는 철학’, ‘緣起로 이해하는 남북’,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다. 그리 오래 숙고하지 않아도 다다를 수 있는 이런 답은, 그가 보낸 30여년 간의 망명 아닌 망명 생활 끝에 나온 것이기에 말 이상의 힘을 준다.

한편,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에서는 우리나라의 지적판도를 먼 독일 땅에서도 세심하게 읽고 있는 저자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귀국이 좌절된 후 이제는 독일어로 저술하는데 더 몰두하리라는 그의 계획은 왠지 그간의 애정을 어느정도 접으려는 의지로 읽혀 안타깝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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