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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44] 영화 '침묵의 소리'의 모티브가 된 클래런스 대로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44] 영화 '침묵의 소리'의 모티브가 된 클래런스 대로
  • 박홍규
  • 승인 2023.06.0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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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런스 대로
클래런스 대로. 1857년~ 1938년. 출처=위키피디아
클래런스 대로. 1857년~ 1938년. 출처=위키피디아

클래런스 대로(Clarence Darrow)는 데브스를 비롯한 아나코-생디칼리스트와 노동조합운동가, 특히 IWW 지도자인 윌리엄 헤이우드, 진화론을 가르친 교사인 존 T. 스코우프, 흑인 등을 변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농촌 사회가 산업화 국가로 전환하면서 부유층과 새로운 노동 빈곤층 사이에 뚜렷한 대조가 나타난 시기에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직면한 상황을 비인간적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해 그들에게 법적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대로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를 정부가 "인간의 생각과 행동, 꿈과 이상, 심지어 가장 멸시받는 인간까지도 구속하지 않는다"는 서면 보증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평생 싸웠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평생을 바치다

대로는 1857년 오하이오 주의 시골인 팜데일에서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인습타파론자이자 종교적 자유사상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앨러게니 대학(Allegheny College)을 1년 만에 중퇴하고 시골 학교에서 3년간 교사로 일하다가 미시간대학교 로스쿨에 들어갔으나 다시 1년 만에 중퇴하고 법률사무소에서 일한 뒤 1878년 변호사가 되었다. 고향에 가까운 앤도버에서 개업한 뒤 농촌 공동체의 일상적인 불만과 문제를 다루면서 경력을 쌓았다. 이어 시카고에서 철도회사의 변호사로 일했으나, 헤이마켓 사건을 비롯하여 17년간 노동자들을 위해 변호활동을 했다. 특히 1894년 풀만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연방 정부에 의해 기소된 데브스를 변호하기 위해 재정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한 재판에서 데브스를 구했지만 다른 재판에서 그가 투옥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폭력, 반역, 음모로 기소된 노동운동가들을 변호하는 사건을 맡아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위해 평생 싸웠다. 그러나 산업화 국가의 법적, 정치적 기구는 신흥 노동조합과 노동자보다 기업과 주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저항에 부딪혔다. 노조의 요구는 개인과 재산에 대한 폭력으로 간주되었으며, 노동운동이 국제 공산주의와 연결되어 무정부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두려워한 새로운 자본가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인지된 위험과 1900년대 초의 ‘적색 공포’ 히스테리에 대응하여 정부는 사실상 기존 질서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아이디어의 옹호를 제한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대로는 그러한 제한이 위헌이라고 믿었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 및 정부 청원에 대한 모든 위협 중에서 가장 사악한 것은 노동 불안 및 기타 형태의 반대에 맞서기 위해 음모법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대로는 생각했다. 그러한 법은 형량의 잠재적인 심각성을 증가시켰고 노동계급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한 정보나 아이디어의 논의 또는 유포를 범죄화했다.

대로는 미국 최고의 노동 변호사 중 한 명이 되고 1895년 민주당원으로 연방의회 선거에 출마했지만 패했고, 1898년 미국의 필리핀 합병에 반대하여 반제국주의 동맹에 가입했다. 그리고 1898년 위스콘신의 목공 노동자를 변호하고 1902년 대규모 무연탄 파업에서 펜실베이니아의 철강노동조합를 변호했다. 1904년에는 미국 정부의 강제 전복을 옹호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영국 아나키스트이자 노조 조직가인 존 터너(John Turner)의 추방을 막기 위해 법원에서 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다시 싸웠다. 1906년부터 1908년까지는 아이다호 주지사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된 노동조합 지도자들인 윌리엄 헤이우드(William Haywood) 등 3인을 변호했다. 1911년 미국노동연맹(AFL)의 요청으로 신문사 폭파 사건으로 기소된 맥나마라 형제를 변호하면서 예비 배심원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고, 대부분의 노동조합에 의해 거부되었다. 그 후 대로는 노동 변호사에서 형사 변호사로 전환했고, 인도주의적 진보와 충돌한다는 이유에서 사형에 반대하는 데 헌신했다. 그가 담당한 100건이 넘는 재판에서 한 명만 처형되었다. 9.11 테러 이전에 미국에서 법집행기관에 대한 테러로 가장 큰 손실로 평가되는 1917년 밀워키 경찰서 폭파사건에서도 대로는 당시 ‘악마보다 더 나쁘다’고 비난받은 아나키스트들을 변호했다.

대로가 변호한 레오폴드-로엡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뮤지컬

 “이 사건에는 편견 외에 아무 것도 없다”

1924년 여름, 대로는 시카고의 부유한 두 가족의 십대 아들인 레오폴드와 로브가 14세 소년 을 납치해 살해한 사건을 맡았다. 시카고로스쿨 학생인 레오폴드는 19세로 하버드 로스쿨로 편입하려고 하고, 로브는 미시간대학교를 가장 어린 나이로 졸업한 18세 청년으로 체포 당시 “흥분에 대한 일종의 순수한 사랑... 스릴에 대한 상상 속의 사랑, 무언가 다른 것을 하는 것... 무언가를 덮어쓰는 만족감과 자아"를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대로는 그들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과 전문가 증인은 두 소년이 "확실히 감정이 부족했다"고 증언했다.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에 감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대로는 금지된 법이나 관습을 어기려고 할 때 인간은 혐오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년들’의 나이(베트남 전쟁 이전에는 성년이 21세였다)를 강조하고 시카고에서 21세 미만의 소년이 사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판사는 종신형과 99년형을 선고해 대중들은 분노했다. 이 재판에서 대로는 심리적, 신체적, 환경적 영향(옳고 그름 사이의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이 인간 행동을 통제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뒤에 일리오이주의 지사가 되어 헤이마켓 사건의 아나키스트들을 사면한 알트겔드(John Peter Altgeld)의 이론에 따른 것이었다. 알트겔드는 범죄가 범죄자의 내면적 범죄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성격과 환경이 범죄행동을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대로는 1925년에 고등학교에서 진화론을 교육한 스코우프(John T. Scopes)를 변호했다. 당시 테네시 주에서는 성경에 따라 진화론 교육을 금지했다. 대로는 성경에 대한 전문가를 증인으로 심문하여 여론을 뒤집었다.

대로: 당신은 성경에 대해 상당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증인: 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물론 소년 시절보다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이 공부했습니다.

대로: 그렇다면 당신은 성경의 모든 것이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까?

증인: 저는 성경의 모든 내용이 거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예를 들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합니다. 저는 사람이 실제로 소금이었다거나 소금의 살을 가졌다고 주장하지 않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소금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판사는 벌금형을 선고했으나 1년 후 테네시 대법원은 대로가 바랐던 것처럼 헌법상의 근거가 아니라 절차상의 전문성에 대한 지방법원의 결정을 뒤집고 사건을 기각했다.

1925년 9월 9일, 디트로이트의 백인 폭도들이 흑인 의사 가족이 백인 동네에서 구입한 집에서 그 가족을 몰아내려고 하다가 백인 1명이 살해되고 11명의 흑인 남성이 체포되어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흑인 가족을 변호한 대로는 “이 사건에는 편견 외에 아무 것도 없다. 거꾸로 11명의 백인 남성이 흑인 폭도들로부터 가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흑인 1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면 아무도 그들이 기소되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신 그들은 메달을 받았을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잘못된 재판에 이어 11명의 피고인이 개별적으로 재판을 받기로 합의했다. 총을 쏜 흑인은 자기 방어를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나머지 10명의 기소도 취하되었다.

대로는 그밖에도 많은 사건에서 변호를 하다가 1938년에 사망했다. 그가 담당한 재판은 여러 차례 연극과 영화 및 TV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스탠리 크레이머가 감독하고 스펜스 트레이시가 주연한 <침묵의 소리>(Inherit the Wind, 1960)이다. 레오폴드 사건은 1959년 리처드 플레이셔가 담독하고 오슨 웰스가 주연한 <강박충동>(Compulsion)을 비롯하여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졌고, 최근에는 <쓰릴 미>(Thrill me)라는 제목의 뮤지컬로도 공연되었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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