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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
  • 김재호
  • 승인 2023.05.30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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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수 지음 | 문학동네 | 572쪽

“정홍수의 문학은 가버릴 것으로 도래하는
가버린 것의 슬픔 앞에 속수무책의 사랑을 주문한다.” _신수정(문학평론가)

매일의 겸허한 노동-쓰기로 포개어지는 시간의 연대

문학평론가 정홍수의 세번째 평론집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제24회 대산문학상을 안겨준 전작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 이후 9년 만의 신작 평론집이다. “구체적인 삶의 지문(指紋)을 과하지 않은 미문(美文)에 담아”낸 “문학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포기하지 않기에 긍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평론”이라는 당시의 심사평은 그의 세번째 평론집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에 더하여 작품과 작가를 향한 신실한 시선은 매일의 겸허한 노동으로서의 쓰기로 이어지고, 종내 ‘안타까움의 미학’이라고 부를 법한 특유의 비평세계를 축성하는 데 이른다.

이번 책의 제목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은 정홍수 미학을 설명하는 결정적 한 문장일 것이다. 구체적 텍스트에서 삶의 구체성을 길어내 독자들의 품에 안겨주는 그의 쓰기 속에서, 이미 ‘가버린 것들’은 현재형으로 되살아나 새롭게 움트기 시작한다.

나아가, 생생한 눈앞의 삶-글에서 ‘가버릴 것들’을 움키듯 읽어내고, 미세한 떨림과 조짐에 반응하며 써내려가는 그의 글은, 과연 “속절없는 시간을 향한 문학의 안간힘이자 마지막 표정이라고 할 만하다”.(신수정) 그 시간-들의 중첩과 연대 속에서 문학은, 삶은, 사랑은 잇대어지고 또 순환하는 것이리라.

‘가버린 것들’만이 아니라 ‘가버릴 것들’이 있는 시간. 그 사이를 잇대는 사랑이라는 말. 과거의 틈입에도 열려 있지만 가버릴 시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도 개방되어 있는 현재를 시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 처음의 굴절과 상실, 가지 못한 길의 회한, 현재의 누추와 불안, 기다림과 약속의 실패, 그래서는 이미 도래한 것들의 좌절 속에서 미래를 감싸는, 그 모든 시간의 성실한 누적과 포갬으로만 가능한 어떤 세계. 그런 시간의 연대 안에서라면 시인의 말대로 “모두가 다시 일어나 새로운 시작의 힘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까.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한 채로 그런 시작의 힘을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학을 읽고 문학에 대해 쓰는 시간이 그런 사랑으로 잇대어지기를 소망해보았다. _「책머리에」에서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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