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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교수·엄마’의 삶…‘열심히’가 아니라 ‘그냥’ 해라
‘의사·교수·엄마’의 삶…‘열심히’가 아니라 ‘그냥’ 해라
  • 김재호
  • 승인 2023.06.01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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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학기술인 이야기 ㉔ 김지은 이화여대 교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 여성과학인 소개 캠페인 ‘She Did it’을 펼치고 있다. <교수신문>은 여성과학기술인이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경력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동으로 소개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교수 사회에 진심을 담아 전달되길 기대한다. 스물네 번째는 김지은 이화여대 교수다.

인지과학은 주가변동부터 신경법학까지 일상과 맞닿아 있다. 김지은 이화여대 교수(뇌·인지과학과)는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드문 의사이자 과학자인 ‘의사과학자’이다. 김 교수는 정신의학 전문의 자격을 얻은 후에 의학박사를 땄다. 그는 중개연구·융합연구를 통해 뇌·인지과학을 질환치료 등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시켜 연구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 의학의 미래를 이끌고 세계 의학의 선두주자가 될 젊은 연구자로 인정받아 ‘LG미래의학자상’ 등을 수상했다.

중개연구는 기초과학의 연구 결과를 임상과학에서 사용하도록 연계해주는 연구를 뜻한다. 즉, 기초의과학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밝혀낸 기전·치료법 등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분야다. 실험 벤치에서 밝혀낸 것을 환자에게 가져온다고 해서 ‘Bench to bedside’라고도 부른다. 기초과학적 발견을 창의적으로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 바로 중개연구의 역할이다.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물에서 뇌의 특정 세포에 있는 특정 수용체를 차단했을 때 어떤 뇌기능이 소실되는 것을 관찰했다면, 이것이 사람에게는 어떤 질환이나 증상과 관계가 있겠는지, 어떤 방법으로 증명해 낼 수 있겠는지 등을 사람의 뇌와 임상 연구에 대한 노하우와 이해를 바탕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김지은 이화여대 교수(뇌·인지과학과)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정신과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 과에서 인턴, 정신과에서 레지던트를 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 문의, 임상연구소 뇌영상센터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2011년부터 이 화여대에서 연구하고 있다. 현재 이대목동병원·이화의료원 겸임교수이 기도 하다. 사진=WISET

 

신경경제학·신경법학 융합연구 조금씩 확대

김 교수는 중개연구를 넘어 융합연구도 하고 있다. 신경경제학·신경법학 분야로도 조금씩 연구를 확대하는 중이다. 예를 들면, 내가 대주주라고 가정했을 때 자식에게 주식을 증여하려면 증여세를 내야 한다. 증여세는 증여 시점 전후로 2개월 내의 주가를 평균해서 부과된다. 그렇다면 언제 증여를 하는 게 좋을까? 맞다. 주가가 가장 저점일 때이다. 그 시점을 데이터와 공시자료 등과 연동해 분석한다. 김 교수는 “스타트업 타키온뉴스와 협업해 사회로 이어지는 커뮤니티 연구를 하고 있다”라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것도 연구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예는 법심리학이나 신경법학이다. 사람이 어떤 폭력적인 행동을 한 후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거짓말이거나 약물의 부작용일 수 있다. 어떤 약물의 영향으로 그런 행동이 나타나는지를 밝혀내면 그 약물의 위험과 해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 교수는 법학자들과 함께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경제나 법과 융합된 연구는 짧은 집중력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나처럼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는 용이한 측면이 있다"라며 "중개연구·융합연구는 특정 질환만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방법론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목적에 따라, 융합 분야에 따라, 중개하고자 하는 발견에 따라, 질환과 대상과 방법이 유연하게 바뀐다. 이러한 유연성과 창의성이 김 교수 연구의 특장점이다.

정신건강·뇌과학 연구를 이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자폐장애와 관련된 연구를 책으로 펴냈던 것이다. 사실 자폐장애의 뇌이상 중 편도체,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세부구조 이상에 대한 연구였기에 원인 규명과 치료법 개발에 작은 퍼즐 하나를 해결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장 근치법(根治法)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계속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라던 말했던 이가 있다. 김 교수는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다면 난치병 환자들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얘기”라며 “이때 연구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라고 회상했다. “이 연구 하나로는 단정할 수 없지만 여러 연구를 종합해 볼 때, 자폐장애가 ‘발달 초기의 뇌염증’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에 대한 날것 상태의 가설을 갖고 있다. 이 방향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면 예방이나 치료법에도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교수는 세 아이의 엄마다. 그는 출산·육아를 통해 계획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특별한 계획이나 청사진보다 큰 방향을 따라서, 또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그날그날의 일을 해나가려 한다. 김 교수는 “후배들에게도 ‘그냥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열심히 하라’, ‘최선을 다해 하라’가 아니라 ‘그냥 하라’는 말이다”라며 “최고를 향해, 원대한 계획과 꿈을 가지고 시작하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고 지칠 수도 있는데, 그냥 하루하루 하다 보면 의미 있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당부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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