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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 없는데 ‘철학’ 교양교육은 늘었다
학문후속세대 없는데 ‘철학’ 교양교육은 늘었다
  • 김재호
  • 승인 2023.05.22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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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하 성균관대 교수, “인문학자 중심의 교양교육 전문가 집단 필요”

지금, 철학의 설자리는 과연 어디일까? 최근 경북대 철학과의 경우, 전공 수업 수강생의 절반 정도가 타학과 학생이다. 철학은 10여 년 사이 논리적·비판적 글쓰기로 각광을 받아 왔다. 특히 대학 입시나 공직적격성평가(PSAT), 법학적성시험(LEET) 등에서 유용한 사고력 교육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도 서울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가 로스쿨 진학을 위한 발판이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오늘날 우리 대학 교육에서 철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왼쪽부터 홍윤기 동국대 명예교수,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이다.

한국연구재단의 「변화와 위기의 인문학 연구와 교육의 역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공동연구진은 “교양 수업에 있어서도 철학과는 논리 관련 과목 및 기타 교양 과목에서 비교적 많은 수요를 누리고 있다”라며 “특히 교양 기초 수업에 해당하는 ‘논리와 비판적 사고’와 기초 논리학 교과목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양질의 교육을 담당할 학문후속세대가 지속적으로 양성돼야 하는 데 사정은 여의치 않다. “철학과의 경우 대학원 진학률이 상당히 낮고, 특히 동양 철학이나 고전 철학 분야는 미래에 학문 자체의 유지가 힘들어질 수 있을 정도로 재학생이 줄어들었다.”

철학이 교양교육으로서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역시 중요하다.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학부대학·철학)는 「대학교육을 배반하는 대학평가-인문교양교육을 중심으로」 발표에서 “인문교육으로서의 교양교육의 의미를 잘 이해하는 인문학자를 중심으로 하는 교양교육 전문가가 교양교육 평가의 기획과 시행에 핵심 주체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교양교육의 올바른 이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전문성을 갖춘 평가 주체가 확보되어야 비로소 바람직하고 전문적인 평가가 가능하므로 무엇보다 인문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교양교육 전문가 집단이 교양교육 평가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다”라고 제언했다. 

 

‘대학운영·교육·사회참여’에서 철학의 소외

홍윤기 동국대 명예교수(철학)는 세 가지 측면에서 철학의 소외를 분석했다. 첫째, 한국 대학의 철학과는 대학교 운영 면에서 학부생 취업 전망 확보의 압력 아래 지속적으로 학과 규모의 축소·합병이나 폐과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둘째, 국어-영어-수학-과학 중심의 교과체계에서 철학은 교양선택과목으로 방치돼 있다. 셋째, 사회적 문제에 대한 철학적 개입·참여가 철학과 연구진들에게는 거의 가동되지 않고 오랜 기간 무관심 속에 소외돼 있다. 

철학과의 축소는 교양교육의 외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는 “지난 약 15년 취직이 보장되지 않고, 그래서 입학생이 줄어들고, 대학의 재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 이유로 많은 대학에서 철학과를 비롯한 인문학 관련 학과를 줄지어 폐지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라며 “이는 교수와 학생 모두 철학과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 교양교육의 약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를 낳을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대학의 교양철학과 더불어 시민철학이 강조되기도 한다. 물론 철학의 사명은 이론 연구로서 기초를 포함한다. 조 대표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대학 교양 철학은 인문학적 삶의 동기를 부여하고, 이론 철학은 인문학적 영역에서 폭과 깊이를 더하는 기초로 작동하고, 시민 철학은 이들의 역할에 힘입어 시민이 평생 인문학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건강한 삶을 위해 셋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시대의 요구에 맞게 진화하는 철학

철학이 본질에서 벗어나 응용에 목매다는 현상은 중·고등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철학박사인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는 2023 한국철학자연합대회에서 「철학교육도 진화한다-삶 자체에로!-」를 발표했다. 그는 “현재 내가 알고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오로지 철학만 가르치는 정교사는 딱 한 명뿐”이라며 “대부분은 도덕‧윤리, 국어, 역사 등 다양한 과목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철학적 사고’의 대부분이 ‘과학적 사고’라는 명목으로 과학교육과정에 들어가버렸다. 

철학이 이 땅에서 확산되고 있는지, 도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안 교사는 오히려 “철학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진화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철학의 물음과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자기계발서, 기업경영의 HRD, 각 분과 학문의 철학 분야(교육철학, 정치외교학과의 정치철학, 과학 관련 학과들의 과학철학 등)으로 흩어져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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