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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기초가 사라진다...철학과 25% 줄었다
대학에서 기초가 사라진다...철학과 25% 줄었다
  • 김재호
  • 승인 2023.05.22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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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21 철학과 80 → 60개로
‘학과수·전임교원·입학정원’ 모두 감소세

“23년의 재직 기간 동안 철학과 수는 거의 3분의 1로 줄었다.” 홍윤기 동국대 명예교수(철학)는 지난 13일, 서울시립대에서 열린 2023 한국철학자연합대회에서 이같이 성토했다. 홍 교수는 「‘철학’ 수요와 ‘철학적 교육’의 보편화, 그리고 ‘철학교육’의 절멸」에서 “철학교육의 위기 담론은 2023년 5월 현재에도 아직 죽지 못한 유령처럼 한국철학계의 거실을 배회한다”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말 발표된 한국연구재단의 「변화와 위기의 인문학 연구와 교육의 역할에 대한 연구」를 보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 대학에 설치된 철학과 수는 80개에서 60개로 딱 4분의 1이 줄었다. 철학과 전임교원 수는 같은 기간 348명에서 269명으로 약 4분의 1(79명)이 감소했다. 입학정원 역시 하락세를 이어왔다. 1천490명에서 892명으로 약 40%(598명)나 축소됐다.

이번 연구는 경북대의 권홍우 교수(철학과), 윤영휘 교수(사학과), 서광진(노어노문학과), 김희진 교수(영어영문학과)가 진행했다. 공동연구진은 “일부 학과는 ‘철학상담학과’, ‘철학윤리학과’ 등으로 명칭과 정체성을 변경하여 취업률 제고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였으나, 실제로 실효성이 있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라며 “게다가 인문학으로서의 전통적인 철학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그련 시도를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학에 철학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전공 교육 수준의 철학 교육을 경험할 만한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은 중요한데, 많은 대학에서 그런 기회조차 점차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철학’이 제대로 서기 위해선 대학 교육에서 수요 확장을 통한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 학문후속세대 양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공동연구진은 “철학을 비롯한 순수 학문 분야에서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학문을 지속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대학원생의 대학원 등록금과 기본 생활비에 대해 대학 또는 국가 차원에서 과감한 보편적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대안으로 세 가지가 제시됐다. 첫째, 교육혁신을 통한 대학 교육에서 인문학의 입지 강화다. 둘째, 융합 연구·교육의 활성화다. 셋째, 인문학 분야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기초 재정 지원의 강화다. 융합 연구·교육의 예로는 서울대의 과학학과(STS)나 정치경제철학(PPE) 등과 국내 여러 대학의 철학상담 혹은 인문카운슬링이 있다. 실제로 영국의 리시 수낙 총리는 옥스퍼드대 PPE 과정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융합 전공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기초학문의 고강도 구조조정은 철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 기초학문의 가장 중요한 기둥인 국어국문학의 현실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국어국문학과가 폐지되거나 문예창작·디지털문학·한국어·한국어문학 등의 낯선 학과로 이름을 바꾸고 있다. 이공계의 기초학문 분야인 물리학·화학·지질학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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