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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철학으로”…편협한 이념 넘어 인류애 펼치자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철학으로”…편협한 이념 넘어 인류애 펼치자
  • 김재호
  • 승인 2023.05.15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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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한국철학자연합대회

2023년 한국철학자연합대회에는 대한철학회부터 한국환경철학회까지 27개 학회·연구회가 참여해 약 120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한국철학회는 「최근 한국철학계의 성과에 대한 조망」, 한국여성철학회는 「여성주의와 비폭력의 문제」, 한국철학교육학회는 「한국에서 철학교육의 발생과 발전」,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한국현대철학사의 몇 가지 지평들: 전통과 근대, 종교사상, 서구와 식민」, 한국포스트휴먼학회·경남대 교양교육연구소는 「챗지피티 스캔들」, 한국해석학회는 「우리 시대의 윤리적 이슈와 해석학」을 다뤘다.

지난 3월에 열린 한국철학회 70주년 학술대회에 이어 이번 한국철학자연합대회에서도 학문후속세대의 발표가 뜻깊다. 정세근 한국철학회 회장(충북대 철학과)은 “학자들만의 잔치가 아닌, 젊은 후학을 키우는 잔치가 되어야 한다”라며 “학생 없는 교수 없다. 후배 없는 선배 없다”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대학원생이 용기를 얻고, 동지애를 느끼고, 교수에게 감동받았다고 하는 것을 보고 이런 한국철학자연합대회가 장차 이들을 위한 마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교수와 학생이 연결되고, 학생끼리 연대가 되고, 마침내는 철학이 있는 대한민국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 회장은 박현주 씨(동국대 철학과 박사과정)의 「현대한국철학의 정체성 논의를 위한 소고」에 대해 논평자로 참여했다.

향후 한국철학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통합을 강조했다. “한국철학계는 이제 남북을 통합하는, 편협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통일을 넘어 인류애를 펼치는 사상적 작업을 해야 한다. 분과학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철학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 회장은 “철학사가, 분야전문가, 논리학자도 필요하지만 미래를 걱정하는, 평화를 꿈꾸는, 삶과 죽음을 묻는 철학자가 절실하다”라며 “철학자는 인류의 행복만이 아니라 불행에 대해서도 발언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아울러, 그는 “선의 윤리학만 점잖게 보아서는 안 되며, 악의 형이상학도 샅샅이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남북의 이데올로기도 뛰어넘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챗지피티·인공지능 비판적 논의

이번 한국철학자연합대회에서는 챗지피티나 인공지능 등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풍부했다. 한국포스트휴먼학회는 「챗지피티 스캔들」 세션에서 정원섭 경남대 교수(자유전공학부·윤리학)가 「챗지피티는 저자가 될 수 있는가?」를 발표했다. ‘챗지피티는 저자가 될 수 있는가?’를 챗지피티한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챗지피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인 저자로서 출판물을 작성하거나 출판물의 저작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챗지피티는 문장 및 단락 생성과 같은 자연어 처리 작업을 수행하는 데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정 교수는 “챗지피티의 답변은 일관성이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정 교수는 지난 1월 『사이언스』에 실린 「챗지피티는 재밌으나, 저자는 아니다(ChatGPT is fun, but not an author)」를 인용했다. 이에 따르면, 최근 연구에서 챗지피티로 만든 초록이 학술 리뷰어에게 제출됐는데, 그중 63%만 적발됐다. 『사이언스』 계열 저널의 저자들은 “저작물이 원본임”을 인증하는 라이센스에 서명하도록 돼 있다. 당연히 챗지피티나 다른 AI 도구로 생성된 텍스트, 이미지, 그래픽 등은 논문에 사용할 수 없다. 『사이언스』에 게재하고자 하는 저자는 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Medical Journal Editors, ICMJE)의 4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한국컴퓨터정보학회 연구윤리규정에도 제시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연구의 개념이나 설계, 연구 데이터의 획득, 분석, 또는 해석에 상당한 기여를 한 자 ②중요한 학술적 내용에 대해 초안 작업을 하거나 비판적으로 수정을 가한 자 ③출판될 버전에 최종적으로 승인을 한 자 ④연구의 어떤 부분의 정확성 또는 진실성과 관련된 질문이 적절히 조사되고 해결되도록 연구의 모든 측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에 동의하는 자. 정 교수는 챗지피티의 주요한 윤리적 이슈들로 △편견 △개인 정보 문제(privacy) △잘못된 정보 △의존성 △저작 권리 등 소유권 △사칭을 지적했다.

 

책임은 사용자인 인간에게 귀속

정성훈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챗지피티와 인공 소통의 문제-신뢰, 위험, 책임, 인격화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정 교수는 “챗지피티는 인간의 명령(prompt)에 따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언어를 조립해 생성하는 속도에서 거의 모든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빠르다”라며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인물, 책, 사건 등을 아무렇게나 조합해 문장을 만드는 등 속도와 양 이외의 어떤 우월성도 갖고 있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결정적으로 챗지피티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지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인간이 가진 약한 다맥락적 능력을 골고루 따라잡는 걸 목표로 설계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을 지배할 의지를 가질 리도 없다”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정 교수는 ‘인공 소통’의 대중화에 주목했다. 구글을 통해 이미 초보적 단계로 이뤄진 인공 소통은 알고리즘을 이용해 이뤄지는 사용자 자신 관점의 이중화(명령 입력의 관점과 그 결과물의 관점)이다. 정 교수는 챗지피티라는 대상에 대한 믿음이 우연적이며 위험을 감수하는 경우, 책임은 사용자인 인간 자신에게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뇌 연구 발전하며 신경윤리 분야 등장

한국윤리학회는 「한국 윤리학의 역할과 과제」를 다뤘다. 그중 최경석 이화여대 교수(법학과)는 「과학의 시대, 윤리학의 역할과 과제」를 통해 새로운 윤리의 등장을 설명했다. 최 교수는 “최근 뇌과학이나 신경과학,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 등은 그 자체로도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뿐만 아니라, 의학과 생물학과도 결합되면서 더 복잡한 문제 그리고 더 일상생활과 밀착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의학·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뇌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신경윤리’라는 새로운 분야가 개척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빅데이터 기술과 함께 더욱 발전함에 따라 인공지능·휴머노이드 로봇과 관련된 윤리적 쟁점들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발표에 따르면,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문제는 세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이전까지 이어온 근본적인 가치관이 변화하거나 이에 도전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삶의 방식을 지배하던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경과학은 인지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기존의 능력 평가, 인재 선발·양성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둘째, 세금으로 투입된 연구결과의 공유와 분배의 문제이다. “공적 자금으로부터 산출된 연구 결과는 어떻게 분배 또는 공유되어야 하는가? ‘공적’이란 것의 개념 정의 문제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시대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그 과학기술 성과의 공정한 분배일 것이다.” 셋째, 우리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새로운 윤리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 사회가 해당 과학기술을 활용한 행위를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최 교수는 윤리학의 역할에 대해서도 분명히 했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새롭게 허용되는 영역에서 윤리적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윤리학이 금지되거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행위에 집중했다면, 이제 다원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과학기술에 의해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넓게 해석되는 ‘허용된다’의 영역, 즉 ‘권장되지 않고, 허용되고, 권장되는’ 영역에 어떤 행동들이 포함되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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