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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나의 제자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제자들
  • 김혜영
  • 승인 2023.05.15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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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기고_ 김혜영 안동과학대 사회복지과 교수

 

김혜영 안동과학대 사회복지과 교수

연고가 없던 낯선 곳에서의 학교생활은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해 학생들에게 몇 번을 되묻기도 하면서 학생들과의 만남 또한 시작됐다. 

사회복지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학생들과 첫 대외활동은 ‘장애인 인식 개선 캠페인’을 경상북도 장애인종합복지관과 공동 개최하며, 장애인들과 안동 시내를 행진하는 행사였다. 그 행사에서는 학생들이 장애인들과 거리 행진 캠페인에 참여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생활했던 나에게 그때만 해도 한 자리에 많은 장애인들이 모여 있는 장면은 생소한 경험이었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냉철하게, 손과 발은 부지런히’라는 표현은 복지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말이다. 그때까지 나는 냉철한 이성과 판단을 갖추고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교육과 훈련에 더 무게를 뒀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따뜻한 마음과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니 예리한 통찰력을 갖추기를 강조했다. 그러기에 이제 갓 스무살 학생들의 부족한 부분이 더 많이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캠페인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학생들이 보여 준 광경은 나를 깊은 반성으로 이끌었고, 우리 학생들을 훌륭하게 바라보게 했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은 큰 보람이 되는 계기도 됐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캠페인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제자들은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자신을 소개하며, 휠체어 이동을 돕고, 나란히 옆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캠페인을 진행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3단 도시락에 한가득 김밥과 부침개, 과일을 담아 나를 찾아왔다. ‘한부모 가정, 수급자 가정, 장애 부모, 쉴 수 없는 아르바이트.’ 그 학생의 주변 환경은 녹록치 않았다. 나에게 도시락을 전하며, 들려준 이야기는 다시 한번 학생들과 따뜻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교육자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교수님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겠어요? 정부에서 저희 집을 지원하지 않았으면, 여러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지 않았으면 제가 이렇게 자랐겠어요? 제가 받았던 도움처럼, 그 도움이 너무 감사해서,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오늘은 우리에게 맛있는 거 많이 사주시고 또 항상 챙겨주시는 교수님이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하는 것 같아서, 비싼 거 사드릴 돈은 없어서 도시락 싸왔어요. 졸업하고 취업하면 더 맛난 것 사드릴게요.”

일반적으로 사회복지과는 늦은 나이에 또는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다. 야간에 수업하다 보면 밤 10시가 넘어가면서 눈이 스르륵 감기고 고개를 떨구는 학생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들 중에는 살아오면서 굴곡진 사연도 있고, 가슴 아픈 일들을 겪기도 했지만, 늦은 나이에 학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게 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일찍 혼자 되어 두 아들을 키우고 있던 만학도 학생은 자신과 남편이 자랐던 아동양육시설에서 근무했는데,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따고, 제대로 일을 하고 싶어서 입학했다. 늘 밝고 쾌활하고 학우들의 친근한 동료였던 그 학생은 학과 행사와 축제 때마다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자주 만났고, 학과 교수들이나 다른 학생들도 만학도 학생의 아이들이 마치 우리 과 학생들 같다고 말했다. 

그 학생의 자녀들도 추후 입학을 했다. 큰아들 2011학번, 작은아들 2013학번 그리고 큰 며느리는 2020학번이다. 며느리의 입학을 앞두고 유쾌한 그 학생의 전화가 걸려 왔다. “교수님! 이번에 우리 며느리 입학해요. 우리 집은 모두 우리 대학 사회복지과 동문이고 사회복지사 가족이예요. 작은 애도 사회복지사랑 결혼하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애들 착하고 현장에서 일 잘하고 있지, 저도 조금 있으면 정년퇴직하지, 먹고 살만하지, 보람된 직업 가졌지, 괜찮죠? 교수님 고마워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환경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살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래도 사회환경 중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결국 사람이다. 누가 내 가까이에 있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과 모습 또한 다양하다. 여전히 나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나의 제자들은 필자를 스스로 점검하고, 갈 곳을 확인하게 해주는 의미있고 중요한 지침이다.

김혜영 안동과학대 사회복지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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