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0:40 (금)
학생의 사고력을 퇴화시키는 챗GPT
학생의 사고력을 퇴화시키는 챗GPT
  • 이덕환
  • 승인 2023.05.15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_ 이덕환 편집인 /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편집인

작년 11월 말에 등장해서 2달 만에 사용자가 1억 명을 넘어서면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던 챗GPT가 요즘 들어 눈에 띄게 시들해지고 있다. 쉽게 달아오르는 양은 냄비는 쉽게 식는 법이라는 철칙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챗GPT의 사용 여부를 판별해주는 ‘AI 감지기’까지 등장했다. 프린스턴대 학생이 개발했다는 ‘GPT 제로’는 문장의 무작위성과 균일성을 분석해서 85%의 정확도로 판별해준다. 출시 4개월 만에 사용자가 12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우리 눈앞에 당장 메타버스의 꿈을 실현시켜줄 AI의 끝판왕처럼 등장한 챗GPT가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챗GPT의 말솜씨가 놀랍다. 노암 촘스키가 창시한 ‘생성형 문법’(generative grammar)의 기술을 인터넷의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한 딥러닝에 성공적으로 접목한 결과다. 챗GPT의 문장에서는 오탈자는 물론이고 비문(非文)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화려함과 유려함이 지나칠 정도가 아닌지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챗GPT의 능력과 열정도 놀랍다. 관심의 범위가 그야말로 광대(廣大)하다. 아무리 사소한 요구도 마다하지 않고, 순식간에 결과를 쏟아낸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가리지 않는다. 자료도 찾아주고, 시(詩)도 써주고, 논문과 보고서도 만들어준다. 일면식도 없는 사용자의 자기소개서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만물박사다.

물론 현재의 챗GPT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심심치 않게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물론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유치한 오류는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경험이 누적될수록 성능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 딥러닝의 중요한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다. 보안 문제가 그렇다. 자칫 절대 공개하지 말아야 할 속내를 함부로 털어놓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겪게 될 수도 있다. 특히 기업의 영업·개발 자료의 경우가 그렇다. 챗GPT를 고해성사를 받아주는 고고한 성직자로 착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챗GPT의 에너지 낭비도 만만치 않은 하자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챗GPT를 함부로 소개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챗GPT가 학생의 사고력(思考力)을 심각하게 퇴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데이터를 다양한 시각에서 평가·선별하는 학생의 능력은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챗GPT가 그런 과정을 통째로 대행해준다. 

결국 사용자는 챗GPT가 선택해준 데이터를 맹목적·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더욱이 선택의 범위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어떤 대안(對案)이 가능한지도 알 수 없다. 

사용자의 주관적·독자적인 자아(自我)를 통째로 무시하는 챗GPT를 학생들이 유용하고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인 궤변이다. 더욱이 챗GPT는 최소한의 윤리 의식도 갖추지 못한 ‘표절기’에 불과하다. 그런 챗GPT에게 굳이 대학에서 할 일을 찾아줘야 할 이유는 분명치 않다. 챗GPT가 곧 AI라는 인식도 섣부른 것이다.

이덕환 편집인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