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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거울이 되어 줄게
너의 거울이 되어 줄게
  • 최승우
  • 승인 2023.05.10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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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근 지음 | 다우출판 | 344쪽

만성적 공허와 자기혐오, 관계 맺기의 어려움 속 
자신을 찾고자 몸부림치며 노력한,
어느 젊은 ‘경계선 성격장애자’의 치열한 내면일기

“그건 여러 얼굴을 한 불안이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 가슴속 구덩이가 
언제 어떻게 나를 집어삼킬지 모른다는 불안. 
병든 닭 같은 과거 내 모습이 어쩌다 튀어나와 누군가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 
어쩌면 여기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을까. 누구에게나 삶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잠식해 가고, 모든 것이 물질적 가치로 치환되는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심화된 경쟁에 내몰린 채 하루하루를 버텨 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심리는 과연 안녕할까. 

특히 코로나19, 경제적 빈곤과 양극화, 학폭 경험 등의 트라우마를 겪은 요즘 젊은이들의 정신 건강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여기고 있다. 세대 갈등이 사회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세대 간 ‘심리 격차’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정부의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19~34살 청년 약 1만5천 명 중 최근 1년 동안 33.9%가 번아웃 경험이 있으며 우울증상 유병률은 6.1%(남 4.9%, 여 7.5%)에 달하는 등 발병률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다행이라면 이런 정신적 문제를 ‘우울증’ ‘공황장애’ ADHD’ 등 세분화하여 치료하고 있으며, 청년들도 자신의 심리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MZ세대 10명 중 7명이 스스로 “정신건강 관리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그 중 ‘인격장애’는 아직 대중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정신병증이다. 오래 전 20세 남성 44.7%가 인격장애 증상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화제의 뉴스가 되었으나(2006년, 서울대 의대 권도운 교수)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가, 최근 청년층을 중심으로 발병 반도가 높아져 정신의학계의 주목을 받는 이상 심리이기도 하다.

꿈꾸던 아이비리그 대학생이 되었지만 근거를 알 수 없는 마음의 고통,
스스로 심리치료사를 찾아가다 
               

여기 한 젊은이가 있다. 국내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 브라운 대학교에 진학한, 남부러울 것이 없을 듯한 청년. 그러나 예민하고 섬세한 그에게는 차마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이 있었다. 바로 학창 시절부터 줄곧 그를 집요하게 괴롭힌 ‘공허’였다.

그토록 꿈꾸던 명문 학교에 다니면서도 가슴속 공허가 채워지지 않았고, 남들에게 온전히 이해받거나 소통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닫고 스스로를 소외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끝 모를 공허와 까마득한 낭떠러지와도 같은 불안,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듯한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 세상에 오직 혼자만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지닌 채 널뛰기하는 감정, 마음속 구덩이와의 오랜 싸움을 해 나간다.

그러나 때로는 세상을, 때로는 주위 사람들을,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하루하루 속에서 대학 생활도 점점 힘겨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실존주의 심리치료학을 접하게 되고 고민하고 있던 많은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공부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경계선 성격장애에 가깝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차갑고 낯선 병명이 나와 나의 내면을 과연 얼마나 설명하고, 반영해줄 수 있을까?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저항하고, 뾰족하게 날 선 마음과 말들을 휘둘러 보기도 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다시 익숙한 방황의 늪에 빠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끝이 없는 터널 같은, 영원할 듯한 어둠 속에서 고통스러운 감정과 싸우면서도 저자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거나 방치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추하고, 직시하고자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특히 심리치료사인 브레넌 씨와의 심리 상담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심리를 되돌아보게 되고, 마치 거울처럼 조용히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브레넌 씨의 모습을 통해 서서히 자기 자신과, 또 세상과 화해하는 방법을 찾아 나간다.

또 학교 안팎에서 만난 진실하고 인간적인 사람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성장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단단한 자기를 되찾고, 타인의 존재를 긍정하며 세상 밖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오늘도 자신을 지켜 가고 있는 당신에게 

우리 사회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고 살피는 일에는 소홀하다. 그래서인지 종종 우리는 자기 마음도 이해하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이리저리 표류하게 된다. 여기에는 때로 ‘방황’이라는 이름표가, 때로는 ‘공황’이라는 병명이 꼬리표로 붙는다.

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둠 속에 홀로 갇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 불안과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이 급격히 증가한 현실도 우리 사회의 한 징후가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지켜 나가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자신답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는 것은 우리 마음이며, 마음이 이끄는 길을 무시한다면 결국 자신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라는 중심 없이 과연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제는 타인의 어둠을 밝혀 줄 거울이 되려는 한 예민한 영혼의 성장일기

이 책은 힘겹게 자신을 다시 찾아가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나’를 만나는 그 치열한 여정을 담은 한 청년의 분투기이다. 저자의 심리치료 에세이인 동시에 한 편의 성장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저자는 상담사 브레넌 씨가 자신에게 그랬듯, 이 순간에도 힘겹게 내면의 싸움을 해 나가고 있을 사람들에게 거울이 되어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마음을 담은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거울이 되겠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어 주겠다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헤쳐 나갈 용기, 타인에게 도움을 구할 용기,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도움을 받았듯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용기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 준다면 그것은 작지만 소중한 등불이 되어, 각자가 숨기고 있는 내면의 어둠을 비로소 환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저자의 바람처럼, 지금도 자신의 내면과 하루하루 힘겹게 싸우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거울이 되고 다시 시작하고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밖을 보는 자는 꿈을 꾸고, 안을 보는 자는 깨어난다.”라는 칼 융의 말처럼, 그렇게 얻게 된 용기로 자신의 내면을 또렷이 들여다보며 긴 방황에서 깨어나 조금 더 단단하고 건강한 자기를 다시 만나고,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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