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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의 ‘관태기’
교수들의 ‘관태기’
  • 김병희
  • 승인 2023.05.08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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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교수에 임용됐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신발 끈을 조여매던 첫 출근의 기쁨도 잠시, 해를 거듭할수록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교수들이 많다. 하기야 사람 사는 모든 곳에는 갈등 요소가 스며들 수밖에 없다. 관계가 유발하는 감정의 날씨를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항상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만 계속될 수는 없는 법이다. 흐린가 싶다가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올 때도 있으니 사람의 성격에 따라 피로감이나 상실감을 더 크게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관태기’라는 신조어가 나왔지 싶다. 권태기는 자주 쓰는 말이지만 관태기란 말은 생소할 수도 있겠다. 관태기는 ‘관계’(關係)와 ‘권태기’(倦怠期)의 합성어로, 사람과 관계 맺는 일에 권태를 느끼는 기간을 일컫는다. 결혼한 부부 사이에도 권태기가 있듯, 이미 알던 사람끼리의 관계에서도 권태기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맥을 쌓는 과정에서도 권태감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관태기라고 한다. 대면 소통을 꺼리던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관태기는 이제 보다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교수들의 전화나 회의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대면 소통을 꺼리는 심리를 넘어, 선뜻 전화 걸기를 망설이다가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소통을 대신하기도 한다. 회의하는 풍경도 달라졌다. 교수들은 직접 만나서 하는 대면 회의보다 각자의 공간에서 잠시 접속하는 화상 회의를 선호한다.

소통 방식을 바꾸면 시간이 절약된다는 효율적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관계의 회피를 효율성 향상으로 포장하는 측면도 강하다. 꼴도 보기 싫은 관계는 아닐지라도, 만나기 부담스러운 사람끼리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만나기에는 화상 회의처럼 편리한 시스템도 없으리라.

대학 사회에서 마주치는 교수들의 관계에서도 좋은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어떤 사안을 놓고 언쟁한 다음에 곧바로 화해하지 않고 나쁜 감정을 계속 쌓아두거나 다시는 마주치려 하지 않는 사례가 교수 사회에서 생각보다 많다. 어떤 경우에는 과도한 자존심 때문에 교수들이 마치 초등학생 같은 면모를 보일 때도 있다.

굳이 감정을 애써 만들어 관계를 좋게 회복하고 싶지 않다는 고집과 자존심이 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다른 교수와의 관계 맺기가 불편하거나 귀찮아졌다면 그 교수는 관태기를 겪고 있는 셈인데, 벌써 ‘관태족’이 되었을 수 있다. 

관태기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하면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하며,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기대하지 말아야 하며, 인간관계에서도 다이어트를 시도해야 하며, 한동안 소셜미디어 활동을 중단할 필요가 있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성찰하며 관계 일기를 써보라는 것이다.

댄싱스네일이 지은 『적당히 가까운 사이』(2020)라는 책에서는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너와 나의 거리두기를 강조한다.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안전하고 편안하게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을 ‘면역 공간’이라 명명하며, 관태기를 극복하라고 권고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교수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관태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에서 누구와도 서슴없이 친구를 맺는 ‘후렌드(Who+Friend)’ 세태에 공감하면서도, 정작 동료 교수끼리는 친구 되기를 꺼려하는 교수들도 늘고 있다. 이 또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직장에 다니는 일반 직장인들이 겪는 인간관계의 피로감은 교수들이 느끼는 피로감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교수들은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인간관계란 억지로 어찌할 수 없으니 교수들에게 하루 빨리 관태기에서 벗어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교수들은 상하관계에서 느끼는 피로감은 거의 없을 테니, 관태기에서 벗어날 속도 조절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만은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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