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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조선시대 산책
경주의 조선시대 산책
  • 최승우
  • 승인 2023.05.02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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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제 지음 | 오세윤 사진 | 학연문화사 | 344쪽

경주를 찾는 사람들은 사방 산천으로 둘러싸인 서라벌 분지를 보고 안온함을 느낀다. 지형은 사람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산길과 물길, 그 사이에 펼쳐진 크고 작은 들녘에서 사람들은 터전을 일구고 역사를 만들며 문화를 창조하였다.

역사와 문화는 사람들이 서로 모인 곳에서 일궈졌고, 오랜 세월 동안 머무른 곳일수록 더욱 발달하였다. 선인들의 축적된 삶의 바탕에서 새싹을 틔우고, 후세 사람들의 지혜가 응결되어 하나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된 산물이 역사가 아닌가. 이는 과거의 일뿐만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라 천년. 그리고 이후 천 년간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머물렀고, 이들이 남긴 발자취는 우리들의 주위에 켜켜이 쌓여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모르고 지나갈 뿐이다.

모두 우리의 문화이고, 경주의 재산이다. 일부는 온존하거나 퇴락한 것이 있는가 하면 진작 없어진 것도 비일비재하다. 이 땅에서 우리는 이와 더불어 명멸明滅했으며 깊은 애환을 간직한 채 말이 없다.

언제나 자신의 역량과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 문화의 창조보다 더욱 어렵고 값진 일은 이를 유지하는 데 있다. 신분은 시대 변천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문화 파수꾼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있다.

경주의 천년 고찰도, 수많은 문화 유적도 그러한 예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람과 문화, 사람과 사람이 얽힌 자취의 나이테는 세월의 흐름 속에 주름살만큼 깊게 파여 있었다. 필자는 불교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고, 글을 쓴 적도 없다. 조선 시대 여러 문헌을 뒤적이다 경주 사찰의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줄곧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섣불리 얘기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 이를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용은 따질 일이 아니며 사실대로 밝히면 될 터다. 과거는 미래의 척도가 아닌가. 그리하여 기림사 불국사 등 관련 문헌을 찾기 시작했다. 몇 번 읽은 자료이지만 정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물론 조선 시대 경주 불교란 불사佛事를 새로 일으키는 일, 경전을 대대적으로 간행하는 일, 고승들의 거룩한 자취 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찰의 잔재와 중건, 정청한 세계, 승려들의 애환 등이 주로 전한다. 지난날의 찬란한 사원 유적이기보다 오히려 깊은 상흔이 훨씬 많았다.

가능한 사실대로 밝히려 노력했다. 조선 시대의 인물과 유적 역시 곳곳에 산적해 있다. 경주 관아와 원사院祠, 정루에 이르기까지 존폐를 거듭하며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한다. 문화유산의 이해는 무엇보다 인물 탐구가 앞선다. 사람은 일생을 통해 수많은 언사를 남기지만 거의 지워져 버렸고, 남은 건 일부 문자가 전부일 뿐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사람의 특이한 삶을 규명하고, 비상한 사람의 질곡을 밝혀내는 일 역시 문화를 이해하는 지침이 될 것이다. 경주에서 출생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경주를 찾아온 사람이나 그들의 유적 또한 경주의 문화자산이다. 이들의 숨겨진 사실을 찾아 후세에 남기는 일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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