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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37] 노동절의 유래, 헤이마켓 사건의 아나키스트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37] 노동절의 유래, 헤이마켓 사건의 아나키스트들
  • 박홍규
  • 승인 2023.05.02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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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마켓 사건.
1886년 5월 4일 발생한 헤이마켓 사건. 노동절의 유래가 됐다. 출처=위키백과

“우리를 목매달음으로써 노동운동을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궁핍과 고통 속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해방을 고대하는 수백만 임금 노예의 노동운동을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릴 처형하라! 당신들은 지금 불꽃 하나를 밟아 끄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당신들 뒤와 앞에서 어디서든 불꽃은 다시 피어오를 것이다. 이것은 지하에서 타오르는 불길이다. 당신들은 그 불을 끌 수 없다. 당신들이 밟고 있는 대지 자체가 불탈 것이다.”

 

오거스트 스피스(August Spies)

오거스트 스피스.
오거스트 스피스(August Spies, 1855~1887) 출처=위키백과

32세의 실내 장식가이자 노동운동가이며 신문 편집자이자 아나키스트 청년인 오거스트 스피스가 처형당하기 직전 법정에서 한 말이다. 1855년 그는 독일 헤센 선제후국의 란데커베르크에 있는 정부 청사로 개조된 폐허가 된 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정부의 임업관리여서 스피스는 행복하게 자랐고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1871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스피스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친척들이 많은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17세에 미국으로 가서 뉴욕의 친척 집에 잠시 머물다가 실내장식을 배우다 시카고에서 1876년에 상점을 열고 독일의 가족을 불러들였다.

그 무렵부터 스피스는 사회주의에 대해 공부하고 1877년 사회주의노동자당에 가입했다. 스피스는 독일식의 군사문화적인 급진적 분파의 지도자로 떠올랐다. 그 분파는 군복을 입고 총을 어깨에 메고 거리를 행진했다. 그는 1880년 독일 노동자 신문인 <노동자신문Arbeiter-Zeitung>을 발간하여 당을 혁명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1883년에는 피츠버그에서 열린 국제노동자협회 미국 지부를 공식 출범시킨 혁명 회의의 지도자였다.

1880년대에는 수많은 산업노동자들이 미국 전역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8시간 노동시간제를 위해 파업을 벌였다. 아나키스트들은 임금 시스템 자체의 파괴를 원한 탓에 8시간 노동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1886년부터는 노동시간 단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카고는 그 운동의 중심지였다.

1886년 5월 3일, 집회에서 스피스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단결하고, 노조를 지지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잘 계획되고 조정된 총파업은 그때까지 대체로 비폭력적 이었다. 그러나 퇴근시간 종이 울리자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파업파괴자들과 맞서기 위해 문으로 몰려들었다. 노동자들에게 침착성을 유지하라는 스피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군중을 향해 총격을 가하자 총성이 터졌다. 결국 두 명의 회사 직원이 사망했다(일부 신문 기사에 의하면 6명이 사망했다). 뒤에 스피스는 “나는 매우 분개했다. 나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학살이 8시간 운동을 패배시키려는 명백한 목적을 위해 행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다음날인 5월 4일, 스피스는 헤이마켓 광장에서 연설했다. 폭력이 발생하고 폭탄이 투척되었다. 폭발과 이어진 총격으로 8명의 경찰관과 알려지지 않은 수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스피스를 포함해 7명이 체포됐고 뒤에 앨버트 파슨스가 자수했다. 목격자들은 기소된 8명 중 누구도 폭탄을 던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도 없이 8명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고 7명은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되었다. 교수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스피스는 “오늘 당신이 목을 졸라 죽이는 목소리보다 우리의 침묵이 더 강력해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외쳤다.

 

조지 엥겔(George Engel)

조지 엥겔(George Engel, 1836~1887) 출처=위키백과

스피스와 함께 처형된 조지 엥겔은 희생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스피스와 마찬가지로 독일 출신으로 1836년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아들이었다. 12세에 고아가 된 그는 제화공 등으로 살다가 1873년 미국으로 이주해 설탕 정제소에서 일하며 국제노동자협회를 통해 사회주의를 알았다. 1878년 국제노동자협회가 해산되자 북미 사회주의노동당을 결성했다. 1886년 5월 4일 그는 집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공모혐의로 기소되었다. 희생자 동료 중 새뮤얼 필든과 마이클 슈업이 주지사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는 주지사에게 어떤 사면도 고려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떤 죄의식도 없이 권력은 나를 죽일 수 있지만 법적으로 나를 처벌할 수는 없다. 나는 감형에 항의하고 자유 아니면 죽음을 요구한다.”

헤이마켓 사건 희생자 중에 23세의 나이로 처형 직전에 감방에서 자살한 루이스 링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살인 때문이 아니라 아나키스트이기 때문에 체포되었다며 “나는 당신들을 경멸한다. 나는 당신들의 질서, 당신들의 법, 당신들의 권위를 경멸한다. 그것을 이유로 나를 처형하라”고 외쳤다. 링그도 스피스처럼 독일 출신이었다. 1864년 바덴 대공국의 만하임에서 태어난 그는 제재소에서 일하다가 부상을 입어 죽은 아버지를 이어 목수가 되어 여러 곳을 떠돌았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사회주의 조직인 노동자 교육 협회에 가입하고 병역을 피하기 위해 스위스로 이주했지만 1885년 봄 취리히 경찰에 의해 스위스에서 추방되었다. 그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을 거쳐 시카고에서 일하며 ‘국제 목수 및 가구공 연합’에 가입했다.

이상 처형되거나 자살한 네 명 외에 새뮤얼 필든과 마이클 슈업은 종신형을, 그리고 오스카 니브는 15년 형을 받았다. 마이클 슈압은 독일에서 태어나 사회민주당 활동을 하다가 1879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도 사회주의노동당과 국제노동자협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주지사에게 사면을 요청하여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만년에는 아나짐을 포기하고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새뮤앨 필든은 영국 출신의 감리교 목사이자 아나키스트였다. 1847년 요크셔에서 노동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여덟 살 때 방적 공장에서 일하며 작업환경에 충격을 받았다. 미국으로 이주한 뒤 1869년에 시카고에 정착한 그는 노동자로 일하면서 신학을 공부해 노동자들을 위해 목회활동을 했고 국제노동자협회에서 활동했다. 1886년 5월 4일, 그는 집회에서 사회주의와 노동계급의 결합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감형되었다.    

오스카 니브는 1850년 뉴욕에서 독일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금은박 제조공, 술집 웨이터, 선박 요리사, 양철공 등으로 일한 듸 공산당 활동을 했다. 헤이마켓 사건에서 공모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고 증거가 거의 없었음에도 15년형을 받았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폭탄 투척과 관련이 있었다거나 그 근처에 있었다거나 하는 종류의 어떤 증거도 없다. 죄송하지만 재판장에게 부탁한다. 당신이 처형을 멈추거나 도울 수 있다면 목매달아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갑자기 죽는 것이 더 명예로운 줄로 생각한다. 내게는 가족도 있고 자식도 있는데 그들이 자기 아버지가 죽은 줄 안다면 묻어줄 것이다. 그들은 무덤에 가서 그 옆에 무릎을 꿇을 수는 있지만, 형무소에 가서 아무 상관도 없는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아버지를 볼 수는 없다. 그게 제가 드릴 말의 전부다 재판장,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지지 못해 유감이다.”

헤이마켓 순교자들이 묻힌 일리노이주 포레스트 파크의 포레스트 홈 묘지에 있는 헤이마켓 순교자 기념비에는 스피스의 말이 새겨져 있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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