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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이 사건을 아십니까…부산 학생들의 ‘상호주의’
노다이 사건을 아십니까…부산 학생들의 ‘상호주의’
  • 김경화
  • 승인 2023.05.01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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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를 표현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 혹여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맑은 눈의 광인’이라고. 본래 이것은 해맑은 표정과 똘망똘망한 눈을 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티 없이 맑은 눈빛으로 범상치 않은 행동을 하는 소위 ‘광기’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톰 크루즈가 분했던 영화 ‘탑건 메버릭’의 주인공 메버릭이 그 적확한 예시가 될 수 있겠다. 특히 Z세대는 ‘센 척하는 사람’보다는 이러한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의 편린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40대 이상 세대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청춘’이기도 할 것이다. 열정적이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체력도 온전히 정신을 받쳐 주던 인생의 황금기가 아닌가? 그래서 이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본원적이기 때문에 거짓을 거부한다. 많은 사람들이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 척’하는 것을 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센 척, 있는 척, 잘 난 척 등등. 

최근 세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1년 이상 지속되고 있고, 그 시야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최근 한미일 간에는 국가 정상 간의 회담이 연이어 계속되는 등 국가 간 국익을 위한 외교도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외교적 대응이나 성과에 대해 여야나 보수, 진보 간에 의견 차이 등이 너무나 커서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보이며 날 선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길이 옳은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본원적이고 순수한 시각 즉 ‘젊은이의 눈’으로 한 번 살펴보면 어떨까? 일본과의 관계로 범위를 한정하면,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민족적·국가적으로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하의 엄혹한 압제가 그리 먼 일이 아닌데다 그 시기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아직 살아 있는 ‘피해자 세대’가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젊은 세대의 시각을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시간을 거슬러 80여 년 전으로 돌아가서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1940년은 일제가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1941년 패망의 결정적 동인이 되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기 바로 전 해이다. 일제 식민지배 정책의 변화에 비추어보면, 무단통치기와 문화통치기를 거치고 난 이후인 ‘민족 말살’시기에 해당한다.

그해 11월 23일 발생한 것이 소위 ‘노다이(乃台) 사건’인데, 아마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사건’으로 격하되어 불릴 것이 아니라, ‘부산 항일학생의거’라고 적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당시 일제는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후 침략 전쟁 수행과 식민 통치 안정을 위해 전시 체제에 돌입하였고, 급기야 조선 학생들의 군사교련 훈련을 강화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1940년 11월 23일 부산·마산·진주 등 지역 학생들을 모집하여 제2회 ‘경남 학도 전력증강 국방 대회’가 개최된다.

제1회 대회에서는 조선인 학교인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가 우승하였기 때문에, 당시 일제는 “제2회 대회에서 반드시 일본인 학교를 우승시켜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차질이 빚어졌고, 대회 마지막 ‘장거리 구보행군’을 남겨둔 시점에서 동래중학교의 우승은 더욱 확실해졌다. 여기서 동래중학교가 실격하더라도 총점에서 부산중학교(당시 일본인 학교)를 0.5점 앞서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총점을 계산한 결과 뜻밖에 부산중학교가 1위가 되었다. 이에 동래중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조선인 학생에 대한 부당한 차별 대우라고 판단하고 항의하였다. 그러나 심판장 노다이(乃台)는 “심판의 판정은 신성하고 절대 불가하므로 판정을 따르라”며 교사와 학생들의 항의를 일축하였고, 일제가 내세웠던 ‘내선일체’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깨닫게 된 학생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한 동래중학교와 부산제2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 학생들은 함께 구덕운동장 밖으로 나가 정렬한 뒤 노래를 우렁차게 부르며 시가지로 행진을 하였고, 학생 안위를 우려한 교사의 해산 권유도 듣지 않고 운동장 근처에 있는 노다이의 집으로 몰려가 돌 세례를 퍼부었다.

이 때문에 일제는 각 경찰서에 지시를 내려 귀가하는 학생들을 대거 검거하게 되었고, 붙잡힌 학생들이 200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또한 일본 관헌의 압력에 못 이겨 두 학교는 자체적으로 학생 처벌을 실시하였는데, 그 숫자는 퇴학 총 21명, 정학 44명, 견책 10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노다이 사건’의 전말이다. 

1940년 ‘부산 항일학생의거’는 일제 식민지배하에서 차별받으면서 불만과 분노를 응축하고 있던 그때의 순수하고 맑았던 10대 중후반의 젊은이들이 분연히 압제에 항거하여 떨치고 일어났던 본원적인 행위이자 ‘순수함의 절정’이라고 할 것이다.

특히 이것은 ‘전시 체제’라는 엄혹한 시기에 일어났던 대규모 항일 학생운동으로 부산 시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의 민족적 자긍심의 원천이 되었다. 또한 당시 일제의 보도 통제로 다른 지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사실이 널리 알려졌으면 전국적으로 훨씬 큰 파급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두려움을 떨치고 분연히 일어났던 10대의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그 어린 학생들은 “어제의 우리였고, 오늘의 우리이며, 내일의 우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 동래구 소재 동래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항일 운동 기념탑’은 이러한 순수한 ‘항일정신’을 지금도 지속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역사 속 그날’의 그들은 이야기한다.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라고. 이것은 라틴어 격언 ‘도 우트 데스(Do ut Des)’를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기브 앤 테이크’라는 개념과 구분되는 것인데,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상호주의’라는 원칙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특히 국제관계와 조약에서 상대가 우호적이면 우호적으로 대응하고, 상대가 비우호적이면 역시 비우호적으로 대응한다는 상호원칙은 철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험적 사실에 따르면 우리는 일본을 병탄하고 말살하고자 한 역사적 사실이 없다.     

또 우리는 과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16세기 말 미증유·목불인견의 참화를 겪었던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도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영의정과 도체찰사로 군무와 국정 운영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 역할을 했던 류성룡은 자신이 겪은 전란의 원인과 7년간의 전황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징비록’이다.

이는 ‘시경 소비편(小毖篇)’에 적혀 있는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그는 아마 이 땅에 다시는 그러한 전쟁과 비극적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 책을 저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이러한 상황은 20세기 초 ‘일제 강점’이라는 역사적 사실로 더 처절하게 반복되었다. 

향후 우리나라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선택과 결정을 할 때 위정자는 “도 우트 데스(Do ut Des)”라는 법언과 국가 간 ‘상호주의’ 원칙을 가슴에 새기면서 임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이 있을 때는 반드시 ‘징비(懲毖)’하기를 국민이 명령하고 있음도 더불어 새겨야 한다.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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