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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과 국익
동맹과 국익
  • 신희선
  • 승인 2023.04.24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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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미국의 불법 감청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협의 말고 항의하라.”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한국청년연대 대표가 들었던 피켓 문구다. 미국이 한국 정부를 도·감청한 기밀문건이 유출된 사건에 대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미국이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정상회담을 더 성과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통령실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과장하거나 왜곡해 ‘동맹’을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며 국내 정치 문제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불법 도청에 대한 현 정부의 대처방식을 보며 불편한 생각이 든다. 과연 한미동맹이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동맹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국제정치의 냉혹성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요구한다.『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는 철저히 현실주의에 입각한 대외정책을 강조했다. 영국·프랑스·독일·스페인 등 열강이 이탈리아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투쟁했던 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동맹이 국가의 안전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고 보았다.

동맹은 상호 이익을 위해 맺은 외교 전략이므로 상대국의 신뢰도와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연약한’ 동맹은 언제든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에, 동맹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경고했다. 

올해로 70주년이 된 한미동맹은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반한다.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을 견제하는 지역안보 차원에서 한미동맹이 유지되어 왔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안정과 동북아 지역의 평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이해관계는 같을 수 없다. 미일동맹을 비롯해 복잡한 이슈들이 존재하고, 무역 문제 등 풀어야 할 경제 현안도 산적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도·감청 의혹을 외교적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는커녕 동맹이라는 ‘가치’에 집착해 비판 여론을 묵살하고 있다. 미국의 불법 도청 문제를 자세히 다루는 것은 “국익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언론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미국과의 관계가 과도하게 강조되고 있다. 비록 동맹이라고 해도 도청은 국가의 주권과 자주성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미국 안보국이 한국 정부를 도·감청한 사실이 ‘선의’로 해석되어도 이는 심각한 문제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우방 국가들을 상대로 미국이 광범위한 감청을 벌였다며 불법사찰을 폭로한 이후,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재발 방지를 약속한 바 있다. 독일을 비롯해 여러 나라가 미국에 강력하게 항의했던 것과 달리, 한국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2023년에 다시 불거진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감시와 첩보 의혹에 대해 현 정부 역시 공식적인 대응 없이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미국과 협상을 통해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조하고, ‘국익’을 위한 사이버 보안과 국가정보 보호 체계를 강화해가는 전략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군주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교활함을 지녀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언명은 지금도 유효하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의 이탈리아 상황은, 강대국의 위협과 침략 앞에 굴종하고 때로는 외세와 결탁하며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조국의 통일과 강력한 국가를 염원하며 “올가미를 분간하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쫓아버리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시대에 정보통신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대중을 조작하는 뉴스는 더욱더 교묘해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한미관계는 미국과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우리의 국익과 주체성을 지키겠다는 담대한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한미동맹도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과연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향적인 동맹관계를 위한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할 것인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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