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교수와 거지의 공통점을 풍자한 유머가 좌중을 웃기던 때가 있었다. 그 후 한동안 뜸했었는데 요즘 들어 교수가 다시 시중의 화제로 자주 등장한다. 거지 유머 때는 그저 웃자는 얘기이거니 하고 함께 웃을 수가 있었는데, 요즘 화제 거리엔 그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한 논문을 여러 학술지에 겹쳐서 발표하는 게 교수사회의 일반적인 관행이라는 데, 당신네 학교도 그러냐는 조롱조의 언급은 결코 유쾌한 화제 거리일 수 없다. 세계유명대학 100순위가 발표되었는데, 우리나라 대학은 하나도 못 끼었다는 데, 참 안되었다 하는 투의 위로 같지 않은 위로 역시 씁쓸하긴 마찬가지이다.
논문 중복발표가 결코 교수사회의 관행일 수가 없다는 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이 드러날 터이니 큰 염려가 안 되는 데, 대학순위 발표는 앞으로 매년마다 적어도 3-4차례 이상 반복되는 행사일 것이므로, 씁쓸한 화제는 계속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세계유명대학 순위에도 못 낀다는 이야기가 적어도 교수 당사자인 나에게 씁쓸한 화제로 여겨지는 까닭은 단지 듣기 싫은 소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교수사회에 대한 옳지 않은 비판이라서 씁쓸한 것이 아니라, 교수사회 또는 대학사회의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고려하지 못하는 비판이라는 점 때문에 씁쓸한 것이다.
세계의 여러 개별 대학에 대한 권위 있는 평가는 대체로 두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가 중국 상하이 교통대학 고등교육연구소이고, 두 번째가 영국의 더 타임즈(The Times)이다. 그 외에 미국의 US World Report도 권위 있는 대학평가기관이기는 하나, 미국 국내 대학만을 평가하고 있다.
2004년도에 우리나라 대학의 국제평가 수준은 가장 높다는 서울대가 상하이 대학 평가에서는 153-201위 급에, 더 타임즈 평가에서는 118위로 나타난다. 스위스의 IMD는 한국대학들의 총체적 경쟁력을 50개 국가 중에서 49위라는 최악의 순위를 매긴 바 있다. 그리고 2006년 8월에 접어들어 뉴스위크가 상하이대와 더 타임즈의 자료를 바탕으로 대학들의 세계화 경쟁력을 조사해서 100위까지의 대학순위를 발표했는데, 한국의 대학은 하나도 없었다. 뉴스위크의 100대학 순위가 도하의 모든 신문의 첫머리를 덮었다. “글로벌 100대학, 한국은 한곳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결과만을 놓고 선정적으로 우리나라 대학을 폄하할 필요가 있을까? 만약 우리나라 대학들이 세계의 변화에 오불관언하고 복지부동하고 움츠리고만 있다고 하면, 이런 자극적 회초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대학들은 지금 엄청난 변화의 와중에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대학변화의 열풍은 지금 한창 그 정점에 와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징표도 엄청나게 많다. 어느 언론 매체도 지금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대학의 모습은 비춰주지 않고 있다.
대학의 변화는 부분적으로 일어난다. 부분의 변화가 누적되어서 대학의 종합적인 경쟁력이 살아난다. 한국대학들은 벌써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대학경쟁력의 가장 핵심적 지표인 SCI 논문 게재율의 경우,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12위에 도달해있고, 그 증가 속도가 세계 3위에 이른다. 이 수치는 2년전인 2004년보다 20%가 증가한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 논문의 1편당 피인용 회수도 세계30위를 넘어서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건국대)의 경우 SCI논문 발표건수가 전년도 대비 71% 증가한 곳도 있다. 서울대의 자연과학분야의 경우 더 타임즈의 평가에서 세계순위 45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세계적 해외석학들로부터 미국대학의 20위권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과학논문 발표순위는 서울대 30위, 연세대 104위, 성균관대 159위 등으로 급속한 속도로 상층부로 향한 이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 대학의 모습은 뉴스위크의 100대 글로벌 대학순위를 에워싼 논란 속에서 전혀 읽혀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학의 변화를 위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한국의 대학교수들은 씁쓸해 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과 사회가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긍정적 변화에도 주목해 주길 바란다.
문용린/서울대·교육학